정직하며 적어도 사기는 아닌 영화 ‘봉이 김선달’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봉이 김선달>은 설화적 인물인 희대의 사기꾼 김선달을 영화화한 코믹 사극이다. <조선 명탐정><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을 비롯한 대개의 코믹 사극이 그러하듯이, 영화는 적절한 재미를 갖추고 있다. 유머나 시대적 문제의식에 있어서는 <조선 명탐정> 시리즈보다 약한 편이지만, 유승호, 고창석, 라미란의 연기 앙상블이 편안한 웃음을 유발한다. 유승호의 반듯한 얼굴이 한복과 꽤 잘 어울리는데다, <조선 마술사> 때보다 안정감이 붙은 사극 연기는 한결 흡족한 감상을 제공한다.

◆ 희대의 사기꾼을 어떻게 공감의 상대로 만들 것인가.

김선달은 희화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사기꾼이다. 피해자가 존재하는데다, 의적과는 달리 그의 사기행각은 순전히 자기 사욕을 위한 것이다. 가령 <허생전>의 허생은 매점매석을 저지른 경제 사범이지만, 양반들의 허세를 풍자한다는 시대적 명분을 지닌다. 그러나 닭을 봉이라고 속여 팔거나, 공공재인 대동강을 사유재산인양 속여 팔아 거액을 취한 행위는 대의를 갖지 못한다. 최대한 좋게 봐주어도 지역차별에 불만을 품은 서북민들이 담합하여 한양에서 온 외지인들을 혼내 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래봤자 본질이 사기이자 텃세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더욱이 사고 팔 수 없는 자연을 영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 탐욕의 최고봉이자 민영화의 본령을 드러내는 범죄라 볼 수 있다. 요컨대 죄질이 매우 나쁜 잡범이다.

따라서 김선달이라는 무도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관객이 편안히 감정이입하며 볼 수 있는 코믹 사극을 만들고자 할 때,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대목이 이 지점이다. 그의 사기를 유쾌하면서 악의적이지 않고, 심지어 악인을 골려주는 의로운 행위로 윤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영화 <봉이 김선달>은 이 점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다.



오프닝 시퀀스는 사기꾼이 되기 전의 그를 보여준다. 병자호란 때 청으로 끌려가 전쟁터에서 화살받이로 쓰인 평안도 청년 김인홍(유승호)은 살아남은 몇몇 조선인들과 의기투합하여 조선으로 돌아온다. 한번 죽었다 살아난 목숨이니, 기존 사회의 도덕이나 권위와 무관하게 살기로 결심한 그는 팔도를 돌아다니며 호방한 사기를 친다.

영화가 처음 보여주는 사기는 놀랍게도 온양별궁에 침입하여 왕실 금괴를 훔치는 것이다. 감히 왕의 옷을 입고 도망치는 그의 얼굴에 두려움이나 황송함은 찾아볼 수 없다.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웃음이 있을 뿐이다. 영화는 왕실 내탕금에 손을 대는 무엄함을 전면에 깔고 있다. 그러나 왕이나 조선이라는 나라를 그가 골려먹는 대상으로 삼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봉이 김선달은 기존 질서를 잠시 교란하는 존재이지 전복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 적당한 악인과 신선한 재해석

영화 <봉이 김선달>은 위험한 길을 가는 대신, 적당한 사이즈의 악인을 찾아낸다. 그는 권력과 부를 지닌 실력자로 왕의 위엄에 도전하는 자이다. 평안도 관찰사로 자신의 백성을 청나라에 팔아넘기고, 청나라와의 조공무역을 통해 이권을 챙기는 성대련(조재현)은 이를테면 지역토호의 성격을 띤 권력형 매판자본가이다. 영화는 그의 악행이 김선달과 마주치는 여러 접점을 만들어낸다. 청나라에서, 담배조공무역에서, 규영낭자(서예지)와의 연정에서, 그리고 대동 강변에서.

영화가 짠 얼개는 나쁘지 않다. 담배농사를 플랜테이션 농업의 폐해로 다룬 것도 재미있고, 특히 대동강 사기사건을 물 민영화 사업의 성격을 띤 원본설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 신선하다. 금맥은 매우 현실적인 상상이며, 실록의 위조 역시 그럴듯하다. 다만 사기행위에 왕을 너무 적극적으로 개입시킨 것은 무리해 보인다. 그밖에도 여러 무리함이 존재한다. 가령 견이의 죽음은 필연성이 부족하고, 마지막 제방 폭파도 스펙터클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영화에 여러 무리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흐름은 좋은 편이다. 마지막에 왕과 마주친 장면에서 영화는 성대련의 자멸을 극적으로 형상화해낸다. 그가 흉측한 얼굴로 역적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죽음으로써 사회적 파멸을 맞는 결말은 대단히 완결적이다.

<봉이 김선달>은 발상이 기발하다거나 만듦새가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관객이 영화의 제목과 포스터를 보고 기대하고 예상했던 것과 동일한 쾌감을 준다. 유승호, 고창석, 라미란이 뿜어내는 밝은 에너지나 서예지의 신비한 매력, 그리고 악역으로 최적화된 조재현의 집중력 등이 영화를 조화롭게 끌어간다. 관객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주었다는 점에서, 영화는 정직하며 적어도 사기가 아니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봉이 김선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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