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빨로맨스’의 ‘운빨’은 왜 이렇게 금방 시들해졌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꾸준히 시청률 1위를 유지하다 SBS <원티드>와 KBS <함부로 애틋하게>가 차례로 시작하면서 꼴찌로 추락한 MBC 수목드라마 <운빨로맨스>는 ‘대박’이라 말하기는 민망한 작품이다. 오히려 KBS와 SBS의 이전 수목드라마인 <국수의 신>이나 <딴따라>가 재미나 화제성 면에서 지지부진했기에 상대적으로 좋은 ‘운빨’을 타고났다. 그렇다고 모든 걸 운으로 돌리기는 아쉽다. 이 드라마에도 분명 흥미로운 지점은 있기 때문이다.

<운빨로맨스>는 프로그래머 심보늬(황정음)와 게임회사 대표 제수호(류준열) 사이에 사랑이 싹트는 이야기를 다룬 로맨틱코미디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트라우마를 지닌 채 살아가는 남녀다. 보늬는 자신의 불행한 액운 때문에 가족이 죽고 여동생이 큰 사고를 당했다고 믿는다. 반면 수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억지로 수영을 가르치려 바다에 던지는 바람에 물에 대한 공포를 지닌 인물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사랑에 있어서는 소극적이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살짝 핀트가 안 맞는 감이 있다. 문학적 감성 풍부한 문과형 남녀가 아닌 자기 분야에 있어서는 똑똑하지만 주변인이 보기엔 답답한 이과형 ‘너드’들의 로맨틱코미디인 셈이다.

사랑꾼이 아닌 이들이 게임회사 제제팩토리란 독특한 공간을 배경으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확인하며 사랑을 발전시키는 이야기는 꽤 귀여운 면이 있다. 다만 이 귀여운 소재를 16부작 드라마로 만드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2시간 안팎의 가벼운 로맨틱코미디 영화라면 괜찮았을 이 소재는 미니시리즈로 이어지면서 지루한 반복이 이어진다. 드라마는 몇몇 인상적이고 달콤한 장면이 분명 있지만 그 순간들을 위해 집중해서 보기는 좀 심심하다. 곁가지도 많고 이야기를 밀고 당기는 리듬감도 느슨하다. 착한데, 너무 착해 빠져서 어느 순간 속이 답답해지는 느낌?



<운빨로맨스>가 시시해진 이유는 모든 걸 운명 탓으로 믿는 착한 여자라는 설정 외에 특별한 매력이 없는 심보늬 탓도 있다. 가족을 잃은 이유로 미신에 빠져든 여주인공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여주인공에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감정이입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 미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계속해서 지루하게 이어진다면 더더욱. 아무리 <운빨로맨스>라지만 모든 걸 다 미신 중심으로 풀어버린다고 이야기가 능력 좋은 처녀보살님의 입담처럼 흥미진진해지는 것 또한 아니다.

아마 이 드라마를 통해 가장 손해를 본 배우는 여주인공 심보늬를 연기한 황정음이 아닐까 한다. 황정음은 <그녀는 예뻤다>에서 역변 아이콘 김혜진을 통해 본인의 매력을 가장 잘 살려주는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운빨로맨스>의 심보늬는 황정음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황정음은 너무 과하게 코믹하거나 너무 처절해서 극적이지만 현실감 없는 인물을 특유의 친근하면서도 몸 사리지 않는 연기로 편안하게 소화하는 게 장점이다.

반면 심보늬처럼 지극히 평면적이고 수동적인 인물에 개성적인 볼륨을 불어넣는 건 그녀의 특기가 아니다. 더구나 의도치 않게 극 초반부 <운빨로맨스>에서 보여준 이웃집 남자애가 잘생긴 어른으로 변해 나타나는 설정이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남자주인공 등의 설정이 의도치 않게 <그녀는 예뻤다>와 겹치면서 배우 황정음이 다소 식상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이래저래 <운빨로맨스>는 배우 황정음에겐 액운의 작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오히려 눈에 띄는 건 여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인 한설희(이청아)나 이달님(이초희)다. 한설희 역시 심보늬 못지않게 평면적인 성격의 악녀지만 배우 이청아는 기존의 그녀와는 다른 세련된 스타일의 패션과 화장법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으니 최소한 평타는 친다. 보늬의 ‘절친’이자 제수호를 열심히 ‘덕질’하는 달님 역의 이초희는 게임회사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여성 캐릭터다. 그리고 배우 이초희는 달님의 캐릭터가 지닌 귀여운 ‘여자덕후’ 성격을 꽤 잘 소화해 낸다.

이래저래 손해인 <그녀는 예뻤다>의 황정음과 달리 <응답하라 1988>의 류준열이 <운빨로맨스>를 선택한 건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그저 잘생기기만 한 재벌2세가 아닌 천재지만 소극적이고 어떤 면에서 아직 청소년기 소년 같은 괴짜 ‘너드’ 캐릭터는 그 자체로 차별성이 있다. 배우 류준열은 이 독특한 맛이 있는 남자주인공 제수호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데 본인이 지닌 장점을 충분히 살린다. 결국 드라마가 중반부가 넘어서면 어느새 류준열 아닌 제수호는 상상하기 힘들어진다. 기존의 익숙한 로코물의 전형적인 남자주인공과는 다른 연기, 다른 매력으로 승부를 본 셈이다.



다만 문제는 제수호의 매력을 알아차리려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 드라마를 봐야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초반부에 보여준 류준열의 어설퍼 보이는 말투나 표정, 움직임 등이 디테일한 설정이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 미묘한 부분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운빨로맨스>의 류준열은 로맨틱코미디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남자주인공으로 느껴지기 쉽다. 만약 <운빨 로맨스>가 좀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류준열의 선택은 ‘대박’이겠으나 제수호만 빛났으니 안타깝게도 ‘중박’.

물론 <운빨로맨스>는 특이하게도 드라마 초반보다 중반 이후가 흥미진진한 면이 있긴 하다. 7회와 8회에서 반짝 실낱같은 ‘대운’이 들고 이어 12화에서 보늬와 수호의 처음 시작한 귀여운 연애로 재미의 황금 대운을 맞는다. 류준열이 디테일하게 쌓아온 제수호의 매력이 팡 터지는 것도 그쯤이다. 안타깝게도 그 재미의 대운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특별히 재미있지도 않고 긴장감도 별반 없는 자잘한 사건들이 터지면서 <운빨로맨스>의 ‘운빨’은 금방 시들해진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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