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틋’, 아무리 사랑에 빠지면 미치기도 한다지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KBS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를 굳이 분석하고 꼼꼼하게 따질 필요는 없다.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대단한 수작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이 작품의 의도는 확실하다. 예쁘고 잘생긴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멜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멜로를 위해 다른 부분들은 그저 배경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히 드라마를 볼 수 있다. 혹은 스트레스 받지 않고 두 드라마를 즐길 수도 있다. 물론 당신의 심장과 두뇌가 멜로에 최적화되었다면. 아니면 수지의 해사한 얼굴과 김우빈 특유의 분위기만으로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다면.

하지만 그럼에도 <함틋>은 함부로 지나치기에는 무언가 껄끄러운 부분들이 있다. 그건 개연성 없는 전개나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격한 감정신 때문은 아니다. 그건 그냥 멜로물 특유의 블랙코미디라고 이해하면 마음 편하다. 사랑에 빠지면 원래 사람이 좀 미치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함틋>의 등장인물들은 너무 과하게 소리를 지르는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다. 하지만 단순히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이 드라마가 껄끄러워지는 건 아니다. <함틋>은 함부로 애틋함을 남발할 때 무언가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아직 애틋하지 않은데 자꾸만 애틋해지라고 일부러 애틋한 감정을 떠먹이려는 듯한 그런 순간에 말이다.

<함틋>은 모든 멜로물의 장치가 신파적 설정과 톱니바퀴를 이루며 맞물려 가는 드라마다. 주인공 신준영(김우빈)과 노을(배수지)은 고교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노을은 신준영을 짝사랑하는 자신의 친구를 도우려하지만 신준영은 노을에게 반한다. 거기에 대한민국 톱클래스 법조인 아버지의 버려진 자식이란 신준영의 운명은 그에게 무언가 엇나간 불량소년의 분위기를 감돌게 한다. 그리고 드라마 내에서 현재 두 사람은 몇 번의 우여곡절의 만남 끝에 인기스타와 다큐감독의 인연으로 로맨스의 순간에 가까워진다. 여전히 노을은 신준영의 마음을 흔드는 여자다. 반면 노을은 조금씩 신준영에게 흔들린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쁜 남자 신준영은 하필 시한부의 운명이다.



<함부로 애틋하게>는 젊은 남녀의 처절하고 슬프고 감동적인 멜로드라마를 꿈꾼다. 함부로. 그런데 이 드라마의 멜로에 감정을 이입하기란 어째 쉽지가 않다. 장면 장면은 예쁘지만 끌리지가 않는다. 오히려 해외시장에 잘 보이기 위해 무언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었던 한국 멜로물 특유의 예쁜 장면들을 조합한 듯한 느낌? 그렇기에 순간순간 기시감이 드는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그 장면이 굳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자꾸만 의문이 든다. 더구나 남녀주인공의 예쁜 장면을 위해 이야기는 얼기설기 이어진다. 두 남녀주인공의 장면에 공을 들인 것과 달리 조연들의 분량은 무미건조하고 별 의미 없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함틋>에서 보여주는 수지의 어금니 꽉 깨문 연기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1990년대 방송되었던 KBS의 간판예능프로그램 <슈퍼선데이>에서 아이돌들이 출연해 나름 재미난 연기를 보여준 꽁트 단막극 코너 <우리들의 이야기>였다면 수지의 연기에 불만은 없었을 것이다. 수지의 해사한 얼굴과 표정은 이 드라마에서 충분히 화면을 장악하고도 남으니까. 문제는 그녀가 보여주는 노을이란 인물이 어떠한 감정을 담고 있는지 수지의 연기를 통해서는 미묘한 지점들을 전혀 읽어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수지와 비타500을 들고 있는 수지 사이의 차이는 어떤 걸까?



수지의 연기가 단조롭다면 반대로 신준영 역의 김우빈은 과하게 와일드할 때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 김우빈 특유의 껄렁한 연기는 이경희 작가 드라마 특유의 불량한 남자주인공과 궁합은 잘 맞는 느낌이다. 다만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에 이르면 가끔은 이야기 자체가 김우빈의 강한 연기에 일그러지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럴 경우 드라마의 흐름은 찌그러지고 배우의 진지한 연기는 무언가 코믹하게 다가온다. 더구나 <함틋>은 감정선 면에서건 이야기의 구성 면에서건 그다지 매끄럽게 흘러가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럴 경우 배우의 과하거나 부족한 면들은 금방 도드라지기 마련이다.

하여간에 <함틋>은 여러 모로 아쉬운 작품이다. 더구나 <상두야, 학교가자>,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습니다> 등의 미니시리즈를 통해 이경희 작가는 상처 입은 인간 군상의 감정들을 끌어올리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대사는 종종 사납게 악악거려도 작품 자체를 포근히 감싸는 앙고라스웨터 같은 인간미도 장점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작가의 장점만 캐주얼하게 소비하면서 오히려 작가가 지닌 장점의 본질은 휘발된 것만 같은 인상이다. 지친 걸까? 아니면 더 넓은 중국 시장에 한국 드라마의 예쁜 장점들만 속속 골라 노출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걸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지 예쁜 한국드라마의 장면들만 모아놓은 캡처파일은 아닌데.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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