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예능국의 파일럿 퍼레이드 중에 잭팟이 터졌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예능국의 파일럿 퍼레이드 중에 잭팟이 터졌다. 그 주인공은 다시 쓰는 육아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미운우리새끼>다. 파일럿 예능임에도 평일 시청률 7.3%, 화제도 만발이다. 게다가 이 성적은 지난 수년 간 수요일의 터줏대감이자 최고의 토크쇼라는 <라디오스타>를 모든 면에서 납작하게 누르고 거둔 성과다. 다른 파일럿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기대치까지 반영하면 시청률 10%를 넘긴 것과 진배없는 대성공이다.

<미운우리새끼>는 엄마가 아들의 일상을 관찰한다는 콘셉트로 50대 김건모, 40대 김제동, 30대 후반 허지웅의 평소 일상을 담아와 세 분의 어머니와 신동엽, 한혜진, 서장훈이 스튜디오에 함께 모여 앉아 관찰카메라를 보면서 토크를 나누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아침상에 소주를 반주 삼고, 소개팅에 집중 못하고, 결벽증에 가깝게 청소를 하는 세 출연자의 일상을 구경하는 재미와 함께 아들의 일상을 처음으로 들여다보는 어머니들의 조마조마한 심정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하고 꾸밈없는 반응이 볼거리다.

특히 캐릭터 확실한 세 어머니의 아재 토크와는 또 결이 다른 아주머니 입담이 포인트였다. 가령 예를 들자면 신동엽을 옆에 놓고 진행을 하는 김건모의 어머니나 방송에 등장했던 두 소개팅녀보다 서장훈 씨 전 부인이 더 괜찮아 보인다는 허지웅 어머니의 직설화법 말이다.

이 쇼를 주목하는 건 파일럿임에도 불구하고 잘 계산된 기획과 완성도 높은 연출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미운우리새끼>는 나무못으로 조립한 원목 가구처럼 그냥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뜯어보면 구성부터 정서, 그리고 캐스팅까지 절묘하게 계산되어 있다. 먼저 구성부터 살펴보자. 연예인의 일상을 콘텐츠로 삼는 장면은 <나 혼자 산다>에서, 가족 간의 관계를 관찰카메라를 통해 공유하고 가까워진다는 콘셉트는 <동상이몽>을 통해 익숙해진 그림이다. 예측과 제어가 불가능해서 매력적인 아줌마 입담은 <백년 손님 자기야>에서 느꼈던 재미다. 토크쇼의 세트와 등장인물들은 왠지 JTBC의 어느 쇼가 연상 된다. 그런데 세상에 완벽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 레퍼런스를 새롭게 ‘조립’해 신선함을 창출한다.



조립의 설계도는 노총각(출연자분들에겐 미안한 표현이지만)을 지켜보는 노모의 ‘모성애’다. 사실 가족 관계를 다루는 예능은 많았다. 남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일상성, 그리고 행복을 담보하는 가족의 소중함과 소원해진 관계 회복은 우리 예능이 몇 년 전부터 주목하고 있는 키워드다. 그래서 연예인의 사는 모습을 바라봤고, 육아에서 사춘기 자녀와 부모의 갈등, 다 큰 아들과 아버지의 여행까지 이제 더 이상 다룰 가족 관계가 있나 싶을 정도로 천착하는 코드다.

그런데 <미운우리새끼>는 노총각과 노모의 모성애를 갖고 나타나 이야기를 이어간다. 모성애는 보편적인 감정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TV시청자의 주요 타겟과 부모 세대의 중장년층 시청자들 모두에게 공감할 수 있는 폭 넓은 ‘킬러’ 코드이니 이보다 더 좋은 설계는 없다.

캐스팅의 설계도 다이캐스팅 피규어 수준으로 정교하다. 출연진들은 모두 잘나가는 인물이지만 어딘가 한 쪽 귀퉁이가 깨지거나 모가 나 있다. 나이도 적지 않고 국민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지만 늘 철부지 같은 김건모, 의식과 지식이 넘쳐나는 독보적인 방송인이지만 왠지 가장 쓸쓸해 보이는 김제동, 날선 까칠한 매력이 양극의 평가를 받고 있으며 공중파 시청자들에겐 비교적 인지도가 약한 허지웅 등 세 인물은 전혀 겹치지 않지만 묘하게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누구나 다 아는 매력 포인트와 함께 또 한 번의 관심과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여지가 남겨진 인물들이다. 이런 출연자들을 아들을 보듬는 엄마의 시선이란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면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일상을 모성애라는 가늠쇠에 겨눠 보여주는 기획된 보여주기가 어느 정도 계산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것이 모성애 코드의 힘이다. 이제 남은 숙제는 일상 콘텐츠들이 직면하는 지속가능성 정도다.

<미운우리새끼>를 포함해 SBS 예능국이 융단 폭격 중인 파일럿들이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솔직히 기존 SBS 예능은 조롱과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오는 파일럿들은 SBS가 신개념, 새로운 예능이라고 내놓으면 아무런 기대 없이 축 늘어져서 ‘아, 이제 저 콘셉트의 예능이 한 사이클 돌았구나’라고 냉소를 머금던 자세를 다잡게 만든다. 절치부심이 느껴진 달까.

<미운우리새끼>는 정반합의 묘를 잘 살린 보기 드물게 잘 빠진 파일럿이다. 관찰형 예능을 바탕으로 일상, 가족, 소소한 행복 등의 정서를 담는 뻔할 것 같던 쇼를 똑같은 재료로 익숙하지만 조금 색다른, 그래서 신선하고 부담감이 없는 그림으로 만들어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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