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자’가 진짜 재미있는 예능이 되기 위해서는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흥미롭다’ 이상의 표현이 필요한 예능이 있다. SBS 파일럿 예능 <인생게임-상속자>는 사회의식에서 출발한 독특한 예능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풍경을 모형화한 가상공간에 아홉 명의 일반인 출연자들이 참여해 누가 가장 많은 가상화폐를 벌어가는 지를 놓고 게임을 벌이고 이를 관찰하는 리얼리티쇼다.

이 프로그램이 더욱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것이 알고 싶다> 출신의 제작진과 마스터(MC)역할을 맡은 김상중의 존재 때문이다. 조금 기대 섞인 비약을 하자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예능판 스핀오프다. ‘알고 싶은 그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취재정신을 바탕으로 집요하게 추적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인생게임-상속자>는 인간 본성과 사회관계에 대해 파헤치는 실험을 게임 리얼리티쇼의 형식을 풍자해 보여주고자 한다.

게임의 설정과 룰은 금수저와 흙수저, 갑을 관계, 불공정한 분배, 조세피난처, 노사분쟁, 전혀 튼튼하지 않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 1%와 나머지 99%의 승자독식 사회의 단면과 같은 우리네 현실을 축소해 반영했다. 그래서 상속자-집사-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계급이 존재하고, 최초의 상속자는 제비뽑기(금수저)를 통해 결정한다. 그 후 게임이 진행되는 3박4일간 하루에 한 번씩 투표로 통해 새로운 상속자를 선출한다.

상속자의 권한은 실로 막강하다. 나머지 참가자들의 계급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의식주를 가격으로 지배할 수 있다. 이들에게 목적이자 삶의 수단인 가상 화폐인 코인은 계급별로 차등 지급되고, 거래와 양도가 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최후에 가장 많은 코인을 보유한 참가자가 상금 1,000만원을 획득한다.

제비뽑기를 마치는 순간 참가자들은 계급이 나뉘고(금수저 흙수저), 한정된 제화의 분배를 놓고 방송임을 알면서도 각자의 욕망에 따라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 펼쳐진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단면들, 애써 외면하던 욕망이 겉으로 드러난다. 출연자들의 다양한 욕망 표출과 짧은 순간에 찾아온 깨달음은 우승이란 목적 앞에 수단과 사람이 덜 중요해지는 장면도 맞이하게 되고, 의리와 멋을 지키는 모습도 지켜보게 된다. 그러면서 반전과 반전이 거듭되는 한 편의 드라마가 끝을 맺는다.



그런데 사회의식을 가진 주제와 기획이 문제적이며, 흥미롭지만 예능이란 카테고리에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쇼의 무엇이 예능적 요소이고 재미인지는 조금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제작진이 이 게임 리얼리티쇼를 통해 알아보고자 했던 것은 시작부터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게임의 법칙 안에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제로섬 게임이란 법칙 자체를 과연 무너트릴 수 있을까였던 것 같다. 잠시 멀리 떨어져서 인간의 본성을 관찰하고, 시스템의 문제를 함께 발견하고 길을 찾아가는 그림이다.

시청자들은 게임 참가자들의 대략적인 이력을 알지만 출연자들은 게임 내에서 게임ID로만 서로를 대하고 판단한다. 방송에 나간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며 출연한 목적과 본능적인 욕망대로 행동하는 모습은 <짝>을, 각본 없이 각자가 캐릭터이자 스토리의 실마리가 되어 게임을 풀어간다는 것은 <더지니어스>를 닮았다. 다시 말해 예능적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의 풍자나, 옳은 길에 대한 고민과 성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을 엿보는 선정적인 재미가 이 리얼리티 쇼에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이 게임은 상금이 적었든지, 출연자들의 동기가 가벼웠든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상황이나 인간 본성을 다 보여주는 상황에 도달하지 못했다. 가장 절실함을 갖고 있던 ‘샤샤샤’나 인간성이 최대의 가치라는 ‘혹성거지’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본인의 욕망을 드러내거나 밑바닥까지 보이며 처절하게 맞붙지 않았다. 인생게임이지만 현실의 인생과 달리 여유를 부릴 수 여지가 있었다.



실제 1,000억대 부자로, 상금보다는 호기심과 재미가 동해 참여한 강남베이글은 남을 밟고서 올라서는 사람도 있지만 스스로 올라서는 사람도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 게임이 안타깝게 됐다고 했다. 그 외에 많은 출연자들이 아무 대가 없이 남는 것도 없는데 우승을 포기하고, 창피한 것 대신 멋있게 보이는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인생이었으면 그렇게 쉽게 포기하거나 신념을 지킬 수 있었을까. 다른 출연자들도 상금이나 우승에 대한 절실함이 샤샤샤처럼 깊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삶에 위로가 되는 결말을 맺었지만, 판타지로 보여지는 건 그 때문이다. 사회의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선한 시도가 돋보이는 최초의 예능이지만, 예능이 추구하는 ‘재미’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을 끌고 들어갈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더 알고 싶다. 더 알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보다 현실의 인생처럼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낭떠러지가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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