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돈 공식하차 ‘무도’, 새 멤버로 양세형이 적임인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정형돈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 공식 발표는 세월로 써내려간 역사의 페이지가 한 장 넘어갔음을, <무한도전>에는 극복해야 할 도전 과제가 하나 더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무한도전> 팬들이 삼삼오오 모여, 어제와 오늘을 소회하고 내일과 멤버들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이 밑에 깔린 감정은 행복했던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과 안타까움이다.

정형돈은 ‘무도’ 정신의 표본이었다. 평균 이하 남자들의 도전이라는 <무한도전>이 걸어온 발전과 성장이란 측면에서 가장 맞닿은 캐릭터였다. 늘 가장자리에 뚱하게 서 있었고, 한동안 웃기는 것 빼고 나머지를 맡았으며, 한 번도 튀거나 본인 위주로 방송이 꾸려지지도 않았다. 패션과 일상은 그냥 아저씨였다. 하지만 외모와 달리 코미디에서 ‘많이 본 티’가 났다. 멤버 중 가장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풍부했다. 이 때문에 한껏 분위기를 내서 ‘늪’을 부르고, GD와 패션을 논하는 등 그간의 캐릭터의 맥락을 비트는 코미디가 가능했다.

이런 성장 덕분인지 작년 한 해 <무도> 안팎에서 에너지 넘치게 활약하며 트렌드를 이끌었던 멤버는 정형돈이 유일했다. 그러니 그의 빈자리에 대한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건강상의 이유로 잠정 하차한 것이기에 언제나 열려 있던 복귀의 문은 팬들에게 일말의 기대와 같았다. 그런데 그 문을 스스로 닫고 말았다.

그러자 <무한도전>이 다시 이슈의 중심에 섰다. 정형돈이 복귀하면 나아질 거란 기대가 사라지자 그동안 미루고 있던 감정과 의견이 봇물 터지기 시작했다. 멤버들, 양세형에 대한 호불호, 내일에 대해 첨예하게 나뉘는 의견이 쏟아졌다. 우린 이해해야 한다. 11년 간 방송된 <무도>는 특정 세대의 시대정신과 추억을 담은 문화이자 일상이었다. 11년간 매주 토요일 저녁을 함께한 시청자 입장에선 예능과 시청자의 관계가 아니라 희로애락을 공유하면서 살아온 자기 자신이 속해 있는 세상이다. 이 주인의식이 <무도>가 그동안 정상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이자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높은 도덕적 잣대와 파급력을 갖는 이유다.



지금 <무한도전>에 위기란 말은 식상하다. 엔진이 노후했거나 연료가 고갈된 상태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색다른 캐릭터쇼의 가능성보다는 기존에 있던 아이템들을 거대한 스케일로 키우거나 대형 콜라보를 통해 이슈를 환기하는 상황이다. 한창 홍보중인 ‘무한상사’가 대표적이다. 기대가 얼마나 큰지 연출을 맡은 김은희 작가 부부부터 김혜수, 이제훈 등 함께하는 배우들의 면면까지 기사가 연일 터지고 있고, <무도>내에서도 한 회에도 수차례씩 언급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규모가 큰 이벤트는 목표 지점을 상정해 당장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는 있지만 안 그래도 고갈되어가는 에너지를 미리 당겨쓰는 행위일 수도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선 악영향을 끼칠 미봉책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주 끝난 ‘무도 웹툰’이 그런 경우다. 혹은 박명수의 말대로 짜여진 각본대로 하는 방식이 <무도>와 어울리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부쩍 늘어난 근황토크가 눈길을 끈다. 웹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라도 멤버들끼리 호흡을 주고받는 토크의 빈도가 늘어난 것을 비롯해 지난주 커플 선정을 위한 멤버들 간의 ‘궁합’을 찾는 시도 등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멤버들이 소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도 전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시청자들과 멤버들이 친근함을 끈끈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희를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유용한 시간이며 양세형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스며들게 하는 데도 적합하다.



<무도>는 든든했던 기둥을 하나 잃었지만 그만 둘 생각이 없다면 어쨌든 앞으로 가야 한다. 한 예로, 지난 달 NBA에서는 19년간 팀의 뿌리였던 팀 던컨이 은퇴했다. 그는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워포워드였고 그가 있었기 때문에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특유의 시스템을 갖추고 19년간 10번 경기하면 7번을 이기는 우승후보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빠졌음에도 스퍼스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내일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스페인 황금세대의 주역 파울 가솔을 비롯해 적재적소에 필요한 선수들을 수급하고 다시 우승경쟁에 나서고 있다.

<무도>와 시청자들도 정형돈의 복귀 불발이 아쉽겠지만, 멈출 생각이 없다면 다시 뛸 준비를 해야 한다. 이건 섭섭한 감정을 느낄만한 배신이 아니다. <무도>가 에너지 레벨을 높이기 위해선 멤버들 각자의 화력을 높여야 함은 물론, 캐릭터들 간에 주고받는 이른바 ‘캐미’가 살아나야 하는데 양세형은 그 역할에 매우 적합한 인물이다. 경력 자체부터 멤버들의 텃세에 눌릴 수준이 아니고, 귀여움과 얄미움 사이에서 깐족이는 순발력은 관객과 함께하는 무대를 짰던 <코빅>에서 이미 검증된 바 있다. 지금도 ‘맥 커터’들의 방해를 뚫고 토크 윤활제처럼 상황이 굴러가게 만든다. 이는 정형돈이 해주던 역할이었다. 다른 멤버들과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크게 자지러지는 리액션도 과거 하하를 떠올릴 만큼 극적이다.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캐릭터를 갖출 시간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즉시 전력감 영 입인데 그동안 주활동 무대가 공개 코미디와 케이블 위주여서 겹치는 이미지, 식상함에 대한 염려도 비교적 적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한 스토리라는 측면에서도 <무도>와 잘 맞는다.

물론 어두운 과거가 있다. <무도>가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긍정적인 여론이 우세한 지점을 찾을 때까지 지켜보면서 괜한 역풍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뻔히 보이는 길이 있어도 두드려보고 모두의 확인을 받은 다음 걸으려는 태도는 지금의 <무도>를 있게 만든 정도다.

시청자의 의견, 시청자의 지분은 인정해야 하고, 소중히 함께해야 <무한도전>이겠지만 가끔은 모두의 기대에 부흥하려고 애를 쓰기보단 내려놓는 모습도 필요하다. 어떤 ‘논란’을 만드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박명수처럼 일단 저지르고 볼 필요도 있다. 특히 지금처럼 에너지가 떨어지고 침체된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수습하고, 다시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또 하나의 동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눈치는 사람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법이다. 안 그래도 지친 상황에, 정형돈이 복귀하지 않는다는 아쉬운 소식이 들려온 마당에 지금은 그래도 앞으로 나가겠다는 선언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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