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모두가 전사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연상호 감독이 그의 첫 실사영화인 <부산행>에 출연한 배우들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을 때 잽싸게 멘션을 걸었던 적이 있다. “김수안 배우가 치어리딩 기술로 좀비들을 해치우는 걸 보고 싶습니다.” 진담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뜬금없는 소리도 아니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부산행>에서 공유의 딸로 나온 이 소녀는 <콩나물>, <피크닉>과 같은 영화에서 기가 막힌 연기를 보여준 아역배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긴 경력을 자랑하는 치어리더이기도 하다. 정말로 김수안의 캐릭터가 치어리딩으로 좀비들을 때려잡는다면 웃기고 이상하겠지만, 액션 영화를 찍으면서 출연 배우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영화 <부산행>에서 배우 김수안의 운동 능력이 얼마만큼 발휘되었는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대부분의 영화 속 장면들은 관객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찍고 연기하기 어려우며 그 속에서 배우들의 노력은 쉽게 묻힌다. 다들 최선을 다했고 고생도 많이 했을 것이며 그 안에 배우들의 숨은 능력이 발휘되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과연 이들 배우들과 이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의 가능성이 최대한 살아남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어린아이와 여자들이 그렇다.

많은 관객들이 지적했듯, <부산행>의 액션은 대부분 남성 위주로 진행된다. 그 중 가장 관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은 거의 좀비가 불쌍할 정도였던 마동석의 액션이었다. 이 캐릭터는 분명 영화 내내 자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앙상블 물이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역할이 필요하다. 모두가 액션 영웅이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영화 막판까지 살아남는 이유는 재미와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부산행>의 여성 캐릭터들은 그럴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좀비가 나오는 액션 영화에서 여전사가 아닌 여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의미 있는 질문이지만 비판을 막지는 못한다. 의미가 있다고 말한 이유는 바로 이 질문이야 말고 이야기 만들기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동석의 임신한 아내로 나오는 정유미 캐릭터를 보자. 임신한 상태라 몸도 무겁고 좀비들이 부글부글한 열차 안에 남편과 떨어져서 갇혀있다. 이건 분명히 핸디캡이다. 하지만 진짜로 재미있는 영화에서 핸디캡이란 오히려 주인공의 액션을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조건이다.

그리고 앞에서 한 질문에 대답하려면 최대한 이 인물에 맞추어 생각하고 이 캐릭터의 눈으로 열차를 보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이 임신한 여자의 눈에는 무엇이 보일까. 그 중 무엇이 이 여자에게 보이고 그 여자는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이 질문은 정유미의 캐릭터 뿐만 아니라 안소희와 김수안의 캐릭터에도 해당된다.



앞에서도 말했듯, 이들 모두가 전사가 될 필요는 없다. 모두가 문제풀이의 귀재일 필요도 없다. 이들 모두가 그냥 우왕좌왕하다 좀비가 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꾼이라면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각각 인물들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런 활용을 통해 영화는 더욱 재미있어지게 된다. <부산행>은 지금도 꽤 재미있는 영화지만 그런 상상력의 활용을 통해 더 재미있는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모든 건 타자에 대한 상상력의 문제로 귀결이 된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한국에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것을 자기가 속해있는 중년 아저씨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상상력의 범위를 그 영역에 제한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아저씨화가 지속되면서 결국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모든 게 지루해진다. 고개를 들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상상력의 영토에 무엇이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이미 밑천이 다 드러난 어른 남자들은 잠시 치우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보자.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부산행>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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