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N ‘원티드’보다 무서운 리얼리티쇼 KOR ‘헬조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정혜인이 진행하는 생방송 리얼리티쇼를 만들어라.” “매일 밤 10시 10회 방송 매회 미션이 주어진다.”

SBS 수목드라마 <원티드>는 여배우 정혜인(김아중)의 아들 송현우(박민수)가 납치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희한하게도 납치범은 혜인에게 그녀가 진행하는 미션 수행 리얼리티쇼를 만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모든 미션을 수행하고 10회의 방송을 채우면 현우를 무사히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단 미션 실패 시엔 현우의 생명이 위험하고 시청률 20퍼센트를 넘지 못하면 현우가 다칠 거라는 협박과 함께.

리얼리티쇼 <원티드>는 혜인의 남편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길쭉한 마네킹 같은 슬림 바디 소시오패스 송정호(박해준)가 대표로 있는 방송국 UCN에서 제작한다. 그리고 납치범은 첫 미션으로 검은 차의 트렁크가 찍힌 사진을 제작팀에 전달한다.

그리고 형사과 수사팀 차승인과 함께 검은 차가 있는 장소를 찾아 인천 부두로 가는 동안 어느새 <원티드>의 첫 방 시간이 닥친다. 정혜인은 스마트폰으로 직접 자신의 얼굴을 찍으면서 지금 그들이 범인의 미션을 수행 중임을 시청자들에게 알린다. 그렇게 SBS 수목드라마 <원티드>는 두 개의 세계를 지니게 된다. SBS 수목드라마인 <원티드>와 그 원티드 속의 UCN의 리얼리티쇼 <원티드>로 말이다.

그런데 <원티드>는 첫 회를 보고 짐작되는 것과 달리 엄마가 납치된 아들을 찾는 단순한 스토리는 아니다. 이 작품에 두 개의 다른 <원티드>가 있듯 등장인물 각각은 미스터리한 두 가지 얼굴을 지닌다. 마치 첫 미션 수행결과인 트렁크에서 발견된 아이가 현우가 아닌 현우 또래의 또 다른 납치된 아이인 것처럼 말이다.



리얼리티 쇼 원티드를 제작하는 PD 신동욱(엄태웅)은 그 두 가지 얼굴의 대표격이다. 그는 현우를 찾기 위해 방송을 만든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냉정한 시청률 사냥꾼의 얼굴을 종종 드러낸다. 그나마 신동욱은 처음부터 그 두 가지 얼굴의 차이가 뚜렷한 인물이다. 어떤 인물들은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본인의 숨겨진 얼굴을 드러낸다. 권경훈(배유람)은 정혜인의 수족 같은 매니저에서 혜인의 방에 몰카를 설치하고 매번 훔쳐보는 스토커로. 정혜인의 옛 시아주버니인 SG그룹 함태섭(박호산) 사장은 최고의 조력자에서 정혜인의 옛 남편이자 현우의 친부인 SG그룹 막내아들 함태영 사고사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로 달라진다. 그뿐이 아니다. 여주인공 정혜인마저 미션을 수행할 때면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픈 얼굴이 아닌 모든 것을 냉철하게 판단하는 이성적인 얼굴로 뒤바뀐다.

이처럼 납치범의 새로운 미션이 주어질 때마다 등장인물의 숨겨진 일면을 보는 건 <원티드>의 놓칠 수 없는 재미다. 더구나 <원티드>는 리얼리티쇼를 통해 우리가 사는 현실의 추악한 면들 또한 겉으로 드러낸다. 겉보기엔 번듯한 교수가 실은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자라는 것. 평생 선한 의사로 스스로를 포장한 사내가 실은 위험한 신약의 실험대상으로 가난한 소아암 환자들을 죽여 왔다는 사실. 더 나아가 정치와 재계의 수장들, 그리고 미디어와 권력자들이 결탁하면서 벌어지는 씁쓸한 상황들을 리얼리티쇼의 무대 위에 올린다.



그리고 리얼리티쇼가 진행되는 동안 현우의 납치범인 나수현(이재균)과 공범 이지은(심은우)이 숨겨진 권력의 추악한 힘에 가족을 잃은 힘없는 자들이란 사실 또한 밝혀진다. 그들이 희대의 여배우의 아이를 납치하고 리얼리티쇼를 만들라고 한 것 또한 그들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려는 측면 또한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들의 바탕이 된 더 커다란 사건이 배후에 존재한다.

바로 <원티드>의 작가가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듯한 SG그룹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7년 전 어떻게든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덮으려던 대기업과 그 사건의 피해자와 진실을 알리려던 이들이 억울하게 얽힌 사건이 실은 <원티드>가 보여주려는 숨겨진 사건인 셈이다.

단순한 유괴사건만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넓은 비판까지 담아낸 SBS 드라마 <원티드>는 리얼리티쇼 <원티드>와 닮은 점이 또 하나 있다. 사실 드라마 자체가 리얼리티쇼 <원티드>에 버금가는 촉박한 생방촬영 중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 드라마는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나 드라마의 이야기나 힘을 잃지 않고 촘촘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매번 20퍼센트의 시청률을 육박하는 UCN 리얼리티쇼 <원티드>와 달리 드라마 <원티드>는 이 쇼에 동참한 사람들만이 함께 달리고 있는 듯하다. 아마 매번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반전의 상황이 이어지는 드라마의 특성 상 처음에 빠져들지 못한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작품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면 어마어마하게 황당하지만 소름끼치는 KOR 리얼리티쇼 <헬조선> 세계에 있는 이들에게 UCN의 <원티드>는 너무 밋밋하게 여겨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KOR 리얼리티쇼 <헬조선>에는 뜬금없지만 소름끼치는 미션이 주어진다. 갑자기 조용한 시골마을에 레이더기지를 배치해야 한다거나, 남해의 도시에서 섬뜩한 가스 냄새가 감돌기도 한다. 물론 이 리얼리티쇼 <헬조선> 안에는 정혜인처럼 쇼를 이끌어가는 진행자가 없다. 해답을 찾는 이도 진실을 밝혀주는 이도 없다는 이야기다. 그저 대한뉴스처럼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녹음기에 녹음한 것 같은 대답이 전부이지만 누구도 그 말을 쉽게 믿지 못한다.

그러니 KOR 리얼리티쇼 <헬조선>을 지켜보는 우리는 그저 아찔한 불안 속에 살아갈 따름이다. 어쩌다 가끔 굴지의 대기업 회장의 은밀한 사생활이 담긴 ‘츱츱’ 동영상을 보며 혀나 끌끌 차면서. 아니면 공포감과 좌절감에 서로가 서로를 저주하고 미워하면서. 그리고 그게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리얼리티쇼 KOR <헬조선>의 제작진이 바라는 바일지도 모르겠다. 믿거나 말거나.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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