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가 던진 질문, 진정한 지도자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사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과 영화 <덕혜옹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어딘지 시원하고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영화들이 포진되는 시기가 바로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이기 때문이다. 이 시즌에 <부산행>과 <인천상륙작전>이 일찌감치 천만 관객과 5백만 관객을 넘긴 건 두 영화의 메시지를 차치하고 액션이나 볼거리 같은 여름 블록버스터에 걸맞은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그 소재부터가 무겁다. ‘일본으로 끌려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포스터의 문구만 봐도 이 영화가 가진 비장함과 비극적 정조를 읽어낼 수 있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보다는 추석 명절이나 연말 시장에 더 어울리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혜옹주>는 초반 소소했던 반응들이 차츰 입소문을 거쳐 점점 큰 반응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미 2백만 관객을 돌파했고 개봉 2주차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인천상륙작전>을 따돌리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놀라운 힘을 만들어냈을까.

<덕혜옹주>의 비장미가 현재에도 힘을 발휘하는 까닭은 그 실제 인물인 덕혜옹주가 살아왔던 삶의 지도자적인 면면들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옹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선택들을 요구한다.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살게 되는 그 운명도 그렇고 그 앞에서 조선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이런저런 압제를 버텨내며 끝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그 모습도 그렇다.

이 비극적인 인물을 통해 <덕혜옹주>가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지도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것이다. 영화는 덕혜옹주(손예진)의 삶이 옹주로서 권력과 지위를 누리는 길이 아니었고, 대신 그 지도자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해야만 했던 책무를 지켜나가는 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반대적 위치에 한택수(윤제문)라는 전형적인 친일파의 만행을 세워 놓는 건 그것이 실제 역사적 현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이 인물을 통해 그리려는 지도자의 모습으로서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한택수는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조선인들을 사지로 내보내고 심지어 옹주와 조선의 황가를 이용하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는 일본인보다 더 악독한 인물로 한택수를 그리고 있다.

즉 일제강점기란 상황에서 한택수 같은 친일파의 선택이란 지도자의 책무 따위는 던져버린 권력에만 눈이 먼 자들의 비열한 행태일 수밖에 없다. 그와 대항하다 끝내 비극적인 삶을 버텨내며 살게 되는 옹주의 삶은 그런 점에서 진정한 지도자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우리가 버텨내고 있는 힘겨운 현실 앞에서 지도자는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를 되묻고 있다. <덕혜옹주>가 입소문이 번지고 그 힘이 의외로 센 것은 바로 이 지점 때문이 아닐까.

영화는 허진호 감독에 의해 과장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담담하지도 않은 균형감각을 통해 훨씬 더 깊이 있는 울림을 전해준다. 끝내 한택수 같은 친일파가 처단되는 모습을 영화 속에 판타지로도 그려 넣지 않은 건 그렇게 이어진 역사가 지금까지도 흘러오고 있다는 걸 명시하기 위함일 게다. 현실을 직시하고 과장하지 않으며 굉장히 비장미를 가진 작품이지만, 또한 마음 한 구석에 이런 인물이 있어 그나마 우리가 살아낼 수 있었다는 뭉클함이 위로처럼 전해지는 영화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덕혜옹주>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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