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250’, 지금보다는 마땅히 더 큰 주목을 받아야하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비정상회담>의 인기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 재고의 일환으로 방송가에 등장하는 외국인들이 부쩍 늘었다. EBS의 다큐 프로그램들을 제외하더라도 <문제적 남자>에 출연 중인 타일러, <진짜사나이>에서 얼굴을 드러낸 줄리안, 한중을 넘나드는 방송인으로 활약 중인 장위안을 비롯해 KBS의 <이웃집 찰스> 등등 한국 사람보다 한국적이고, 우리나라 말을 기막히게 잘하는 외국인을 방송에서 만나기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 사랑이 넘치는 외국인 전성시대에 tvN <바벨250>은 한국이 처음이거나 낯선 6명의 외국인들만이 등장한다. 당연히 한국어는 서로 한마디도 모르는데다 심지어 영어까지 사용 금지다. 첫 번째 규칙이 각기 자신의 모국어로만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다보니 서로 의사소통을 돕기 위한 이들만의 세계 공용어인 바벨어를 만들어보자는 게 기획 의도다.

남해의 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자신들만의 언어를 만들어간다니, 마치 마이크로네이션을 만드는 듯한 모험의 공기가 일렁인다. 여기에 한국 대표로 배우 이기우까지 가세해 모두 7개 언어가 난무하고 6개 언어권의 동시통역사 군단이 등장하는 글로벌 예능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남해의 시골 마을에 위치한 숙소는 과거의 경력이나 경험이 어찌됐든 서로 말부터 안 통하니 모든 것이 리셋이 되는 공간이다. 늘 수행원과 함께하던 1조원 자산을 가진 태국의 타논은 짜장면도 파스타처럼 스푼을 대고 포크로 말아먹는 귀족처럼 사는 태국 0.1% 갑부지만 여기선 그냥 변비에 고생하는 투덜이 ‘아재’다. 5만원 권 현금 다발과 금고를 가져와봤자 쇼핑은커녕 슈퍼도 없고, 보테가베네타 가방은 생닭을 넣고 다니는 장바구니로나 쓰임이 있는 곳이다.



다른 캐릭터들도 자신만의 확실한 매력과 흥미로운 경험을 갖고 있다. 미남자로 이웃 어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니콜라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파리의 연극배우이고, 흥을 담당하는 마테우스는 브라질의 일류 삼바학교의 메인 댄서, 미모를 담당하는 안젤리나는 우리나라에서 인스타그램 스타로 먼저 뜬 러시아 대학생, 애교와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천린은 중국의 쇼비즈니스업계 종사자이다. 위풍당당한 미셸은 무려 미스베네수엘라 출신이다. 유일한 한국인 출연자인 이기우도 14년차 배우이자 연예인이지만 여기선 특별히 우대받는 게 없다. 마을 어르신들에겐 그냥 외국인 아니면 젊은이일 뿐이다.

이렇게 각기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말 한마디도 안 통하는 한국의 시골 마을에 모여서 함께 잠을 자고, 마당에 불을 지펴 물을 덥혀서 샤워를 하고, 마을 일거리를 도우러 논으로, 바다로, 닭장으로 다녀야 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일종의 세계판 <삼시세끼>다. 이런 특별한 모임에 속한 구성원들이 서로 가까워지고 함께 성장해가는 스토리는 늘 설렘과 재미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함께 잠을 자고 밥을 같이 해먹는 공동생활을 하는데 간단한 의사소통마저 안 된다. 필사의 바디랭귀지를 펼쳐보지만 오해와 엉망의 연속이다. 닭장을 만들자고 하는데 몇몇은 닭을 망치로 잡는 줄 알고 기겁을 하는 식의 상황이 이어진다. 초반엔 밥을 먹자, 가자, 이런 말조차 전달이 안 되니 예전 <가족오락관>의 헤드폰으로 두 귀를 막은 채 단어를 이어 맞추는 ‘고요속의 외침’이나 칸막이 사이에서 손짓 발짓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방과 방 사이’의 연속이다.

그러면서 간간히, 그러면서 조금씩 불통의 코미디는 소통의 환희로 바뀌면서 흐뭇하게 만든다. 곳곳에 피어나는 애정전선이나 나름 힘든 노동을 하면서 서로를 위하고 보듬는 장면들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래서 보고 있으면 웃음을 짓게 되고, 이들이 그 다음날은 어떤 삶을 살아갈지 궁금하게 만든다. 시청자들이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커뮤니티를 그리는 데 성공했다.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을 모아놓고 벌이는 이 독특한 예능 실험이 가장 흥미롭고 독보적인 지점은 외국인들이 등장하지만 ‘한국어 실력’과 ‘한국사랑’을 중심에 놓고 매개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지도 있는 인물도 이기우 외에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데, 그 또한 예능 선수는 아니다.

<바벨250>의 진정한 재미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말은 안 통해도 서로를 이해하고 다가서려는 마음이다. 한국, 한국 사랑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다. 지금 유행하는 외국인 방송들과는 기본 가치관에서부터 갈라서 있다. 다국적 출연자가 함께하면서 세계시민의 정서와 태도를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예능 콘텐츠다. 그래서 최근 새롭게 시작한 예능 중에 가장 신선한 예능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같은 이유로 인지도 낮은 출연진들이 등장하고, 한 단계 더 접근하기 쉬운 한국 사랑을 고취하는 정서적인 연결고리가 없다는 점이 <바벨250>의 대중화를 방해하는 한계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동안 외국 방송인과 콘텐츠에 접근했던 것과 달리 익숙하고 편한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나아가야 하는 법이고, 새로운 것은 곧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나름의 의미 있는 주제 의식을 예능의 틀로 품었다는 점에서, 그것도 우리나라 예능의 특화된 리얼리티 쇼와 결부했다는 점에서 <바벨250>은 지금보다는 마땅히 더 큰 주목을 받아야 할 예능 콘텐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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