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번성은 ‘신화’ 아닌 바늘·창 발명한 ‘기술력’ 덕분
인류 역사를 ‘허구 기반 협동시스템’으로 보는 건 단편적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들보다 7만 년 전에 유럽에서 태어났어. 때는 마지막 빙하기였고 매서운 추위가 일 년 중 8개월이나 이어졌지. 우리 선조는 따듯한 서남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겨왔어. 익숙하지 않은 혹독한 환경이었지만 우리 조상들은 잘 적응했어. 사냥한 동물의 뿔이나 뼈를 잘라내고 간 뒤 구멍을 뚫어 바늘을 만들었고, 짐승 털가죽을 바느질해 지은 옷을 입어 칼바람을 막고 몸의 온기를 유지했지.

우리가 전에 없던 문명의 이로움을 누리고 있는 그 시기를 우리 후예는 구석기시대라고 분류한다더군. 그냥 석기시대도 아니고 구석기시대라고 말이야.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불리게 된 우리 무리는 슬기로웠고 인류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어.

우리 선조는 창도 새로 발명하다시피 했어. 기존 창은 나뭇가지의 한쪽 끝을 뾰족하게 깎아 만들었지. 그런 창은 손에 쥐고 찌르는 도구였어. 우리는 끝에 뾰족하고 무거운 석촉을 매단 창을 만들었고 이 창을 던져 순록을 사냥했어. 사냥 성공률이 확 올라갔지.

우리 세대는 창을 더욱 가공할 무기로 변신시켰어. 팔뚝 남짓한 막대기에 창 끝을 건 뒤 막대기를 뿌리쳐 그 반동으로 창을 발사되게 했지. 발사된 창은 속도가 쏜 살처럼 빨랐고 무지하게 멀리 나갔어. 아, 우리는 사실 ‘쏜 살’이란 걸 몰랐지. 나중에 우리의 5만 년 후손들이 ‘활’이라는 신병기를 만들었다더군. 그러나 우리 투창기(일부 지역에서 아틀라틀(atlatl)이라고 불리게 된 기구)로 발사된 창도 화살에 가까운 속도를 낸다네.

털가죽 옷을 든든히 지어 입고 창과 투창기로 무장한 우리 무리는 보무도 당당하게 들판을 누볐어. 빈손으로 돌아올 때도 없진 않았지만, 나갔다 하면 대부분 포획물을 짊어지고 돌아왔어.

◆ 네안데르탈인 비중 줄어들며 사피엔스에 흡수돼

지혜로운 우리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 하나 있었어. 우리보다 전에 유럽에서 살아온 네안데르탈인의 생활방식이었어. 걔네는 몸이 우리보다 건장하고 힘이 훨씬 셌는데 도구를 만드는 일에 영 솜씨가 없었어. 무기라곤 나뭇가지 창과 몽둥이 뿐이었고, 옷도 말이 아니었어. 그들은 가죽을 어깨에 두른 뒤 앞에 한 부분만 가죽 끈으로 여며서 망토처럼 걸치고 다녔어. 우리는 나중에 네안데르탈인과 교류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는데, 걔네는 글쎄 바늘을 만들 줄도 쓸 줄도 모르더군. 희한하게도 걔들은 배울 생각도 하지 않았지.

우리는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배를 곯지는 않았거든. 사냥하는 틈틈이 열매를 따거나 캐와서 비축해놓고 먹었어. 사냥한 고기가 남을 때도 있었고. 그런데 네안데르탈네는 우리와 비교해 살림이 아주 형편없었지. 춥고 배고프게 지내 무리의 세를 유지하기도 힘겨워 보였어. 그쪽 아이가 우리 무리를 따라다니다 같이 살게 되는 일도 생겼어. 그러다 보니 살도 섞고 피도 나누게 된 거야. (인간의 유전체 전체가 2003년에 파악된 데 이어 2010년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 전체가 확인됐다. 양자를 비교한 결과 인간의 유전체에 4% 정도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정도 모르면서 우리가 네안데르탈네를 정복하고 멸종시켰다는 낭설을 만든 작자가 있다더군. 기가 막혀서. 우리 먹고 살기도 바쁜데, 뭣 땀시 네안데르탈네와 싸워. 네안데르탈 남정네들 처치하면, 딸린 아낙이며 애새끼가 다 군식구인데, 그 군식구는 누가 먹여살리고?

우리 시대는 말이야, 신석기시대 이후의 나중의 고정관념으로 상상하면 오해하기 십상이여. 신석기시대 이후에는 일정한 지역에 머물면서 농사를 지어서 토지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곡물과 재화를 축적해 놓잖아. 소며 말이며 가축도 있고. 그렇다면 공격해서 정복해 약탈한 뒤 지배 아래 두고 때마다 공물을 챙기면 되지. 그렇지만 그때그때 잡아먹고 채집해 사는 우리 구석기시대에는 전투와 정복에 무슨 실익이 있겠어. 공격을 받는 힘이 약한 무리 쪽에서도 그냥 내빼는 선택이 있어. 지킬 땅이나 재산이 없으니 도망쳐버리는 거지. 그럴 때에는 정복은커녕 전투가 성사조차 안 되는 거야.

물론 간혹 네안데르탈 놈들이 우리 영역으로 넘어와 다 된 사냥에 재를 뿌리는 일도 생기지. 우리가 좋게 타일러도 놈들이 제 힘을 과시하면서 뻗대면? 우리가 호군가? 그 땐 맞붙었지. 싸움은 근육 힘으로 하는 게 아녀. 좀 떨어진 거리에서 우리가 투창기로 창을 발사해 기선을 제압한 뒤 다가가면서 창을 던져 공격하면 육박전을 벌일 필요도 거의 없어.

듣자하니 신석기시대와 석기시대 이후 청동기를 거쳐 철기시대가 열렸고, 문명이 엄청나게 발전해 총과 대포, 미사일, 전투기, 핵폭탄이 만들어졌다며? 비행기로 대륙 너머를 이웃 동네 마실 가듯이 여행하고 큰 배로 어마어마하게 물자를 실어 나른다던데. 축적된 지력을 바탕으로 쌓아나가는 인간 능력의 한계가 어디인지 나도 궁금하네.



◆ 하라리는 전투와 정복의 일면만 부각

그런데 말이여, 그렇게 발달한 문명에서 지내도 인간 개개인은 우리 때와 비교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왜 유발 하라리라는 친구가 쓴 《사피엔스》라는 책 있잖어. 그 친구 아는 것도 많고 입심도 좋더구만. 그런데 팩트가 틀렸어, 팩트가. 하라리 갸는 우리 사피엔스랑 네안데르탈의 관계를 전투와 정복의 측면에서만 다뤘더군. 그렇지 않아. 우리는 싸우기도 했지만 교류도 했고 피까지 나눴어. 우리가 네안데르탈을 압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저 잘 살았기 때문이야. 우리는 잘 살았고, 2세를 더 많이 낳았고 수가 많아졌어. 알잖아, 인구가 일 년에 1%만 늘어도 몇 세대 지나면 숫자가 두 배가 되는 것. 우리는 숫자가 꾸준히 늘었고 그러면서 네안데르탈네는 점차 소수로 전락했어. 결국엔 우리한테 흡수됐지. 유전자는 남았지만 별개의 족속으로는 유지되지 못한 거지.

하라리는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을 정복해 멸종시켰다는 단순화의 오류를 저질러. 그는 이 오류에서 출발해 더 큰 오류로 나가는데. 뭐냐면 그걸 가능하게 한 우리와 네안데르탈의 결정적 차이를 허구를 창조하는 상상력의 차이라고 주장한 거지.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거야.

‘약한 사피엔스는 같은 숫자로는 강한 네안데르탈을 이기지 못한다. 그런데 사피엔스가 승리를 거둔 것이므로 사피엔스 무리의 구성원이 네안데르탈 집단의 구성원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을 것이다. 사피엔스 무리는 왜 네안데르탈 집단보다 컸을까? 아마 사피엔스한테는 공통의 신화나 토템이 있어 더 많은 사람이 결속하는 속성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 구석기시대엔 그런 거 없었어.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 따위의 원시적 종교도 아직 없었어. 그런 원시적 종교는 신석기시대에 등장하고, 우리 땐 벽에 들소 그려놓고 많이 잡기 바라는 정도였지. 이런 건 주술이라고 하더군. 주술은 결속력을 발휘하지 않지.

◆ 스스로도 인정한 ‘협동시스템’의 오류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네안데르탈 정복이라는 허구를 상상하더니, 그 승리의 요인을 ‘허구를 상정해 그 아래 뭉치고 협력하는 힘’으로 돌린 뒤 인류의 문명을 같은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사피엔스는 종교, 정치체제, 교역망, 법적 제도 등 지어낸 허구를 바탕으로 한 협동시스템을 통해 번성했다. 예를 들어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자 성공적 협력이 가능해졌다. 왕권신수설이라는 신화를 기반으로 왕조 정치체제 아래에서 대규모 협력이 이뤄졌고, 왕권신수설을 천부인권설이 대체하자 협력방식이 바뀌었다. 부족사회의 교역이 신화나 토템을 기반으로 한 반면 오늘날의 경제는 주식회사, 달러,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기업 상표 등의 허구 속에서 가동된다. 이 가운데 화폐는 순수한 정신적 혁명이었다.”

이게 참 황당하다고 아니 할 수 없어. 첫째 누구나 알다시피 신석기시대 이후 사회의 기본 구조는 지배와 피지배이고, 다른 큰 변수 중 하나는 전쟁이잖아. 둘 다 하라리가 강조한 ‘협동시스템’과 상충하지. 인류의 역사를 ‘협동시스템’이라는 한 가지 측면으로만 보는 게 스스로도 무리라는 점을 하라리는 책의 한 군데에서 다음과 같이 인정해.

“협력이라는 말은 매우 이타적으로 들리지만 항상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평등주의적인 경우는 드물었다. 인간의 협력망은 대부분 압제와 착취에 적합하도록 맞춰져 있었다.”

이 두 문장이 자신의 전체 논지를 산산조각 낸다는 점을 그도 알았어. 그는 그래서 둘째 문장을 모순되게 적었어. ‘압제와 착취에 적합하도록 맞춰진’ 것을 ‘협력망’이라고 표현한 것이지.

자, 이제 기억 속에서 역사를 조금만 들춰보며 상상해보자고. 다음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더 그럴듯하다고 생각해? 첫째, 어느 사회의 구성원들이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에서 새로운 종교를 수용하기로 결정한다. 둘째, 어느 왕조가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걸맞은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상상이 제도를 낳고 제도는 인간 사회를 만들었다는 하라리의 주장은 그야말로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네. 알다시피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생산관계와 이를 토대로 한 권력관계와 생활방식에서 나오는 것이잖아. 경제력을 가진 부르주아지 계급이 새로 등장해 이들이 정치체제를 바꾼 것이지, 반대로 천부인권설이 나오자 부르주아지 계급이 용기를 내고 움직여 왕조를 무너뜨린 게 아니잖어. 또 교역은 신뢰를 바탕으로 했지만 정신적인 무언가를 공유함으로써 가능해진 건 아니지. 그렇다면 고대 이래 종교가 다른 부족이나 나라 사이에 어떻게 무역이 이루어졌겠어.

우리 구석기시대에도 상상력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 있어. 하라리도 상상력이 대단하네. 상상은 자유고, 온갖 생각이 피어나고 시들면서 열매도 맺히는 것이니 상상 자체를 말릴 일은 아니라고 봐. 하지만 솔직히 말해 구석기 인간인 내가 보기엔 갸의 상상은 그럴듯하지도 영양가가 있지도 않아.

참, 내일 들소 사냥은 어떨까, 반복되는 일이지만 매번 다르고 늘 설렌단 말이야.

칼럼니스트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smitten@naver.com

[사진=서울시, 김영사]

(책 정보)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636쪽

(참고자료)
이정모, ‘절대 바늘’ 발명 덕에 지금까지 생존한 호모 사피엔스, 중앙SUNDAY, 2014.12.07
스반테 페보,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부키, 2014
이상희·윤신영, 인류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2015
브라이언 M. 페이건, 크로마뇽, 더숲, 2012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