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의 새로운 PD가 가져야 할 덕목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근 KBS2의 대표 주말예능 <1박2일>의 수장이 교체됐다. 지난 2년 6개월간 ‘가재 PD’라는 별칭으로 일약 스타PD의 반열에 올라선 유호진 PD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유일용 PD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유호진 PD의 병가로 발생한 2개월여의 임시 연출 대행 체제 시절까지 포함해 프로그램은 순항했지만 여론은 순탄치 않았다. 시청률은 오히려 평균적으로 올랐지만 단골 시청자들은 갑작스레 불거진 교체설과 유호진 PD의 이탈에 불만과 불안을 나타냈다.

심지어, 기존에 기획된 ‘이대 특집’과 관련된 논란의 책임소재를 묻거나 그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는(사실상 변하는 게 더 어려운) 편집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두고서 연출 교체가 가져온 빈자리라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지난 7월 31일, <1박2일>답게 시청자들 앞에서 ‘입수’로 환송과 환영 인사를 하며 공식적으로 연출 자리를 인계를 하자 신기하게도 PD 교체에 대한 불만과 설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1박2일>은 연출자의 색깔이 크게 두드러지는 예능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전통과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멤버 대 멤버, 제작진 대 멤버들의 관계망, 게임, 정서 모두 나영석 PD시절에 만들어진 유산이다. 야생과 고생에 방점이 찍혀 있던 게임쇼에다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지역 사람들과 주변의 풍경과 정서를 담아낸 지금의 <1박2일>은 이미 그 시절에 완성됐다. 시골 중심의 향토적이고, 가족적이며, 개구쟁이 소년의 짓궂은 동심을 간직한 정체성은 설명만 들으면 삭막하기 그지없는 복불복 게임을 하면서도 따뜻한 웃음을 추구하는 리얼버라이어티라 불리는 이유다.



아재들의 향연이 벌어진 이번 방송에서도 이러한 특유의 정서가 드러났다. KBS 올림픽 해설위원들이 출연한 제1회 <1박2일> ‘아육대’(아재 체육 대회)가 벌어졌는데 요즘 세대의 문화를 잘 모르는 아재들의 순수함과 아재 특유의 능글맞음이 큰 웃음을 자아냈다. 그런데 아육대는 새로운 형식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와 틀은 지역 특산품을 걸고 벌어지는 대표적인 복불복이었다. 청도 편이 마무리되고서도 자유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멤버들이 윤시윤에게 까나리액젓을 탄 아메리카노로 몰래카메라를 하고, 함께 여행을 떠날 게스트를 직접 섭외하기 등등 익숙한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제작진의 능력이 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1박2일> 연출자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무한도전>이나 JTBC예능처럼 번뜩이는 창의력과 두드러진 개성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익숙한 발걸음을 할 수 있도록 물려받은 유산을 잘 유지하면서,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거다. 분위기 조성이란 눈에는 잘 띄지 않으면서 가장 어려운 임무를 부여받는 것이다. 시즌2는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폐지 위기까지 갔었다.

이처럼 <1박2일>은 익숙함이 특징이다. 기대 또한 익숙함 속에서 나온다. 유명 셰프의 이름을 보고 찾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오랜 단골들이 찾는 밥집에 가깝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런 소식을 접하지 않고 봤다면 PD가 바뀌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이는 유일용 PD가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마디로 <1박2일>은 익숙함 속에서 조금 조금씩 새로움을 찾아가는 일종의 시스템에 가깝다.



유호진 PD가 2년 6개월 만에 사내 최고의 브랜드를 가진 스타PD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이유도 바로 이 시스템을 재가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스터키는 제작진과 출연진의 관계 형성, 그리고 함께 가는 분위기를 조성한 ‘가재’ 캐릭터였다. 그가 젊은 세대에게 지지 받는 제작자가 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 또한 번뜩이는 기획이나 시대정신이 아니라 <1박2일>이란 시스템을 복원하는 데 기여한 캐릭터였다.

그러니 새로 <1박2일>에 부임한 유일용 PD에게 지금 필요로 하는 덕목은 마찬가지로 친근한 캐릭터를 갖추는 거다. 멤버와 제작진간의 대결구도가 기본인 상황에서 지금처럼 융통성 없는 캐릭터를 밀어붙이든지, 허당 이미지를 만들어 시청자들이 품고 싶은 캐릭터를 선보여야 한다. 사람들이 제작진에게 바라는 것은 변화와 신선함이 아니라 믿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믿음이다.

오늘날 예능에서 제작진의 위상은 메인MC의 존재만큼 높아졌다. 시청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제작진, 특히 메인 PD의 인지도와 호감도는 검인증의 효과와 같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제작진 자체가 미덥지 못하다거나 별로 관심이 안 가면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성장하기 힘들다. 특히 함께 성장하고 함께 일상을 보낸다는 콘셉트의 리얼버라이어티 쇼에서 제작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출연자들에 대한 감정이입보다 더 중요하다. 어느 한 인물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를 포괄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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