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사랑스러움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된 박신혜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는 여주인공 유혜정(박신혜)을 중심으로 살피면 꽤 괜찮은 로맨스다. 연애 감정에 대한 환상과 함께 여주인공의 심리나 성격에 대한 묘사에도 충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빗속에서 춤추다 보여준 어설픈 키스신은 빼야 하겠지만.

더구나 유혜정은 남자주인공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거나 쓸데없이 간만 보는 여우같은 여주인공도 아니다. 그녀는 사랑에 있어 진지한 인물이다. 사랑에 흔들리고, 사랑 때문에 고민하지만, 차분히 자기감정을 찾아가고 결국 자신의 사랑을 믿으면 그대로 밀고나가는 여주인공이다. 그렇기에 드라마는 종종 가볍고 허무맹랑해지지만 유혜정이란 인물만 떼어놓고 보면 꽤 깊이가 있는 캐릭터로 다가온다.

어쩌면 배우 박신혜에게 <닥터스>의 유혜정은 중요한 반환점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녀는 SBS <천국의 계단>에서 태미라(이휘향)에게 뺨 맞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역으로 얼굴을 널리 알린 이후 어느새 로맨스 드라마의 세계에 익숙한 여주인공으로 자라왔다. 물론 짬짬이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나 주말드라마 <깍두기>에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나 역시나 그녀의 메인스테이지는 로맨스물이다.

<미남이시네요>의 고미남을 시작으로 <상속자들>의 차은상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로맨스물, 그것도 십 대 취향의 감성에 어울리는 로맨스의 인물들을 연기해 왔다. 이 여주인공들은 비록 현실에는 거의 없지만 로맨스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록스타나 상속자들의 사랑을 받는 인물들이다. 이런 드라마에서 박신혜의 연기는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상대 배역과 꽤 어울리는 호흡을 보여준다. 로맨스에서 남녀 배우간은 특히나 중요하다. 여자주인공이 독단적으로 독보적일 때, 혹은 남자주인공에 압도되어 수동적으로 끌려가기만 할 때 이야기는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없이 가벼운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에서 그녀는 큰 눈에 담긴 먹먹한 표정 하나로 드라마에 어떤 감정적인 깊이를 줄 줄 알았다. 다만 그녀의 이런 매력이 드러나기에는 그 동안 그녀의 드라마들이 많이 가벼웠던 게 사실이다. 더구나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는 여주인공의 매력보다는 매력적인 남자주인공들에게 여주인공이 사랑받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SBS의 <피노키오>는 아마 좀 더 새로운 세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박신혜는 이 드라마에서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고, 진실을 말하면 딸꾹질이 멈추는 희한한 피노키오증후군을 지닌 사회부기자 최인하를 연기한다. 사회부기자의 생활을 다소 동화적인 방식으로 보여준 이 드라마는 그녀가 기존에 연기했던 로맨스물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달콤한 거짓말을 로맨스의 방식으로 연기해야 했던 그녀가 이 드라마에서는 진실과 거짓말에 대한 감정들을 미묘하게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노키오>를 통해 박신혜의 배우로서의 가능성은 꽤 일취월장하지 않았나 싶다. 그 결과가 바로 <닥터스>의 신경외과 의사 유혜정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메디컬드라마의 옷을 입은 로맨스물 <닥터스>는 남자주인공보다 여주인공의 움직임에 더 중심을 둔 작품이다. 그렇기에 유혜정이 사랑을 시작하고, 떠밀고, 다시 그 감정에 고민하는 부분들이 섬세하게 잡혀 있다. 또한 자신은 재수 없는 아이라며 스스로 얼음철벽을 친 여주인공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서서히 마음을 여는 성장드라마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섬세한 연결고리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하면 유혜정은 그냥 남자에게 사랑 받는 예쁜 여주인공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다행히 박신혜는 작가가 여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려 한 감정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보여준다. 그렇기에 보는 이들에게 유혜정은 홍지홍(김래원)과 정윤도(윤균상)에게 사랑만 받는 여주인공으로 쉽게 읽히지 않는다. 홍지홍에 대한 유혜정의 감정과 유혜정이 그를 선택하게 된 마음의 흐름을 읽게 된다. 더불어 처연한 얼굴로 눈물 뚝뚝 흘리는 아역배우에서 과장된 표정이나 어처구니 없는 귀척 없이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여주인공의 사랑스러움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된 박신혜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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