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와 포켓몬 고, 이미 가상 깊숙이 들어온 우리들

[엔터미디어=정덕현] 오연주(한효주)는 현대판 피그말리온인가. MBC 수목드라마 ‘W’가 보여주는 웹툰 속 신세계는 자신이 만든 여인상을 사랑하게 된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오연주는 웹툰 속 가상인물인 강철(이종석)을 애초에 꿈꾸고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어느 날 웹툰 속으로 쑥 빨려들어 간 그녀가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러자 ‘W’의 가상과 현실이 혼재된 신세계가 펼쳐진다.

‘W’의 웹툰 속 가상 세계가 흥미로운 건 그것이 단지 현실을 모사했지만 허상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그 세계는 현실과는 다른 그 자체의 세계관과 동력이 작동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콘텐츠라 부르는 세계의 작동법이다. 캐릭터는 응당 어떤 목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목적이 다하는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이 웹툰의 세계에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오연주가 본래 여주인공이었던 윤소희(정유진)의 자리를 차지하자 윤소희는 존재 목적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 투명해지는 이상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윤소희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강철은 그녀가 자신과 평생해야 할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함으로써 존재 목적을 다시 만들어준다. 이 웹툰의 세계 속 인물들은 이처럼 강철이라는 주인공과 연인이든 친구든 적이든 관계를 맺고 어떤 목적성을 갖게 되어야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W’의 웹툰 속 가상 세계에서 강철의 가족을 모두 총으로 쏴 죽인 의문의 인물은 어떤 삶에 대한 총체적 목적을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작가인 오성무(김의성)에 의해 강철이 의문의 사건을 조사하고 추적하는 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맥락 없이 탄생한 인물이다. 그러니 어느 날 강철이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하자 이 의문의 인물은 자신의 존재 목적이 사라져버린다. 그가 강철을 다시 살려내고 또 위협하고 그 주변인물인 오연주나 오성무를 죽이려 하는 건 스스로의 존재 목적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W’라는 드라마가 흥미로운 건, 단지 웹툰과 인물과 사랑에 빠졌다는 그 참신한 설정 때문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 현실이 관여했을 때 웹툰 속 인물의 입장이라면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까지 상상하고 있다. 그것은 웹툰이라는 가상 공간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우리네 인간의 존재 목적과는 사뭇 다르다. ‘W’는 그래서 오연주라는 사람이 강철이라는 웹툰 속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가상에 몰입하고 빠지는 우리네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물론 실제를 사랑하는 것과 가상을 사랑하는 건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이 가상에 빠져드는 ‘W’의 세계에 쉽게 몰입하고 심지어 강철이 모든 걸 꿈으로 지워버리자며 오연주를 현실로 되돌리는 장면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건 왜일까. 그것은 어쩌면 이미 우리가 이 가상이라는 공간 깊숙이 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매일 매일 방영되는 드라마에 빠져들고 어찌 보면 허구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깊게 몰입하며 때로는 내 맘 같지 않은 그들의 행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두 사람 제발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는 그런 모습들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우리네 삶의 하나가 되고 있다.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잡기 위해 속초까지 달려가는 일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고, 그런 가상이 현실의 속초를 바꾸고 있는 건 실제 상황이다.

신화의 세계는 이제 웹툰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가상의 세계와 대치되고, 우리는 그 가상을 마치 실제처럼 사랑하는 시대에 들어와 있다. 우리는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건 하나의 신화라고 배우며 자라왔지만 어느새 우리가 피그말리온이 되어가고 있다. 가상과 현실이 혼재된 세계, ‘W’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우리가 흥미로워하는 건 거기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캐릭터와 콘텐츠의 세계는 그렇게 성큼 현실 속으로 튀어나오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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