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화신’ 기상캐스터들이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해 볼 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번 주 시작한 SBS 새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은 아무래도 편성 타이밍을 잘못 잡은 것 같다. 편성표만 놓고 보면 동시간대는 이미 <함부로 애틋하게>라는 기억상실에 신음하는 전통 로맨스물과 진부함을 놓고 대결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이슈, 여론의 관점으로 보자면 작년부터 격화되어온 페미니즘 논의가 가장 뜨겁고 첨예한 오늘날, 불패의 로코 여신 공효진이 맡은 기상캐스터 표나리와 그를 둘러싼 캐릭터들의 스테레오타입화된 성역할은 걱정되는 지점이 있다.

<질투의 화신>은 <파스타>로 공전의 히트를 친 서숙향 작가와 공효진이 다시 손잡은 전형적인 ‘공블리’한 로맨틱 코미디다. 배역 이름이나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여주인공은 가난하고 이른바 스펙도 낮지만 씩씩하고 착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하여, 일반적으로는 쉽게 맺어질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재벌이나 방송국 최고의 스타 기자 이화신(조정석)처럼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자 주인공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여기서 문제는 보통 둘 이상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데 있다. 따라서 본의 아니게 삼각관계에 빠졌다가 결국 행복을 찾는다는 일종의 캔디 계열의 스토리다. 늘 공효진이 잘 해내온 역할과 이야기인 만큼 익숙하긴 하지만 이 익숙함이 문제 자체는 아니다.

다만, 성장할 수 있는 출발선이 낮아야 로맨스와 판타지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공효진이 맡은 생계형 기상캐스터 표나리를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인물로 그리고, 여성들이 주 타깃인 로코물임에도 아나운서국을 포함한 방송국 내 여직원들을 이기적이고 유아적이며 여유 없는 사람들로 묘사하는 장면들은 코미디를 위한 극적장치라고 해도 진부함을 넘어선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표나리는 그래도 후배들이 시기할 정도로 나름 메인 기상캐스터인데 직원들에게 ‘뽕’이나 몸매에 관한 성희롱성 발언에 노출되어야 하고, 이화신은 직장 상사로서는 용인되는 정도를 넘어선 무례한 반말과 하대를 계속한다. 이런저런 ‘정’직원들은 커피 심부름을 비롯해 온갖 잡심부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킨다.

기상캐스터의 현실을 왜곡하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작가가 계약직이라고 이렇게 묘사했는지, 계약직 여직원이라서 이렇게 묘사했는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아나운서 시험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뒤 절박한 생계를 위해 계약직 기상캐스터가 되어 열심히 뛰는 굳센 표나리를 보여주기 위함은 알겠지만 그녀를 둘러싼 안하무인의 상사들과, 남자 몸 들여다보고, 더듬고 웃통을 까게 만드는 남성 유방암 설정은 오늘날 더욱 발전한 시민의식과 성역할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마당에 딱히 좋아 보이지 않은 코미디다.

트렌디 드라마인 만큼 방송국을 그리는 방식과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담아낸 현실감은 있지만, 로코물의 핵심인 남녀 캐릭터 성역할이 너무 올드하다는 점이 눈에 걸린다. 순정만화에서 이어진 여성이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것으로 이어지는 수동적 성공기는 6년 전 <파스타>에서 직종만 바뀌었지 전혀 달라지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기상캐스터들이 <질투의 화신> 1회가 끝나자마자 불쾌감을 드러냈다. 직종에 대한 묘사차원의 문제도 문제지만, 순정만화풍의 로맨틱코미디가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에서 활용하는 남녀 성역할 인식이 진부한 것을 넘어 불편한 것이 더욱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어쨌든 2회 만에 삼각관계가 성립됐다. 표나리에 대한 고정원(고경표)의 마음은 다 드러났고, 2회 막바지에 어떤 이유인지는 시청자들도 짐작으로밖에 알 수 없지만 질투라곤 몰랐던 마초기자 이화신이 표나리에게 갑자기 반한다. 전개될 방향은 한 곳인데 멜로라인은 덜컹이며 시작됐지만, 그다지 걱정되지 않은 건 공효진에 대한 믿음, 로코물로 다져진 작가의 감각, 조정석의 능글한 연기라는 믿을만한 보증수표가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점은 사실 표피에 가깝다. <질투의 화신>은 그 자체로 기대가 되는 훌륭한 재료를 갖고 있는 로코물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속살을 만나기도 전에 이 껍데기가 두드러져 보이는 게 문제라는 말이다.

모든 드라마가 [W]처럼 완전히 새로울 순 없다. [W]도 설정이 특이해서 그렇지 안에서 그리는 멜로 자체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원형을 그대로 담고 있다. 펑크락의 3코드처럼 로코물의 기존 구도가 뻔하다고 한들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담는 노력을 하지 않고, 도식화된 구도를 그대로 반복하는 건, 트렌디해야 하는 로코물을 빛바래게 만드는 일이다. 현실감은 방송국 분위기를 취재하는 것만으로, 판타지는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찾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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