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미소 뒤 감춰진 진짜 표정들을 공들여 보여준 ‘청춘시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아직도 나 좋아해요? 좋아하지 마요. 누가 나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약해져요. 여기서 약해지면 진짜 끝장이에요.” (윤진명)

JTBC 드라마 <청춘시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윤선배 윤진명(한예리)은 한 달에 세 가지 아르바이트를 뛰는 스물여덟의 대학 졸업반이다. 그녀의 청춘은 연애나 젊음,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를 평범함 이하라 말하는 20대의 그녀가 또래의 평범함에 도달하기 위해 살아가기란 벅차기 때문이다. 그녀가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가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듯.

그런 진명에게도 사랑은 찾아온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조차 없는 그녀를 잠시 쉴 수 있게 만든 남자는 바로 같은 레스토랑의 쉐프 박재완(윤박)이다. 재완은 신데렐라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재벌 왕자님이 아니다. 그저 마음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남자다. 그는 서빙 일에 지친 진명을 잠시 불러내 쉬면서 먹으라고 간식을 내준다. 오토바이 뒤에 그녀를 태우고 집으로 데려다 준다. 편의점에서 야간근무를 하는 진명을 찾아와 그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다.

진명은 지친 일상 틈틈이 재완과의 달콤한 연애를 꿈꾼다. 하지만 진명은 재완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언제 깨어날 지 모르는 식물인간 남동생과 딸을 의지하고 딸의 이름으로 돈을 빌리면서도 딸을 타박하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진명은 늘 돈에 허덕이며 20대를 보낸다. 그런 그녀는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쉴 여유가 없다.

반면 평범한 20대와는 전혀 다른 화려한 삶을 사는 여주인공도 <청춘시대>에는 등장한다. 바로 진명과 함께 쉐어하우스 벨에포크에 함께 거주하는 강언니, 강이나(류화영)다. 진명이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과 달리 이나에겐 세 명의 애인이 있다. 아름답고 젊은 그녀가 신용카드를 내주는 스폰서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부자 남자들은 그녀와 잠자리를 하고, 친구들에게 그녀를 자랑하고, 대신 그녀가 쓰는 카드비용을 감당한다. 늘 당당한 이나지만 그녀는 벨에포크에 들어올 때 자신을 부자 아빠를 둔 금수저 여대생으로 포장한다. 물론 이나는 벨에포크에서 함께 사는 또래들에게 진짜 삶을 들킨다.



<청춘시대>는 극단적인 대비를 보여주는 진명과 이나를 양축으로 그 사이에 평범한 여대생 셋을 보여준다. 스물 두 살인 동갑친구 정예은(한승연)과 송지원(박은빈) 그리고 이제 갓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이자 벨에포크에 처음 들어온 유은재(박혜수)다. 물론 평범해 보이는 이들 또한 각자의 비밀이나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예은은 친구들에겐 제멋대로지만 이기적인 남자친구에겐 늘 사랑을 구걸하며 끌려 다닌다. 남자의 신체와 섹스에 대해 책과 동영상으로 박학다식한 지식을 쌓은 생기발랄한 지원은 모태솔로다. 소심한 성격의 은재는 소심한만이 아니라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가족의 비밀이 있다.

<청춘시대>는 벨에포크에서 함께 사는 이 다섯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간다. 뜨개질처럼 한 코 한 코 작은 걸음으로 떠가는 이야기는 점점 회차가 진행될수록 음영이 뚜렷하고 다양한 색감을 지닌다. 감각적이면서 깊이까지 있다는 뜻이다.



<청춘시대>의 뼈대는 20대의 현실적인 삶이다. 하지만 감각적인 CF가 떠오르는 연출기법과 깜찍한 ‘깨방정’ 유머코드, 배우들의 발랄하고 또래의 나이에 딱 맞는 생생한 연기로 지루할 틈이 없다. 거기에 지원이 자신이 귀신을 볼 줄 알며 벨에포크에 귀신이 하나 숨어 있다고 말을 하는 바람에 은근히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풍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 귀신 이야기가 등장할 때마다 이나와 은재는 누군가를 죽였다는 독백을 종종 내뱉는다(물론 종반부에 이르러 귀신 운운은 지원의 거짓말로 밝혀지지만).

드라마는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 살인과 연관된 이나의 과거를 보여준다. 고교시절 그녀는 여객선 침몰 사고로 익사 직전 살기 위해 물 위에 뜬 트렁크를 붙잡으며 한 소녀를 물속으로 떠민다. 결국 살아났지만 누군가를 죽였다는 이나의 죄책감은 삶이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으로 느끼게끔 만든다. 아무리 대단한 액수라도 한 번 긁으면 쉽게 끝나는 신용카드 결제처럼. 겉은 화려하지만 종종 텅 빈 공허를 느끼는 이나는 돈 많은 애인과 물 쓰듯 써 버리는 돈으로 그 감정을 채워보려 한다. 물론 그 방법은 성공적이지 않다.

이나는 오히려 벨에포크에서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청춘들과 마음을 트며 공허감을 채워간다. 하지만 공허감을 채우는 건 이나만이 아니다. 벨에포크는 <청춘시대>에서 단순한 쉐어하우스가 아니라 일종의 치유공간의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다섯 명의 여주인공들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또래와 갈등을 겪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질질 끌려 다니는 연애를 하던 예은은 그녀가 경멸하던 이나의 도움과 날카로운 충고 덕에 연애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심한 은재는 벨에포크의 언니들을 통해 점점 다른 사람과 마음에게 여는 방법을 익혀간다. 그리고 언니들의 도움으로 풋풋한 연애도 시작한다.



쉐어하우스 벨에포크는 현실적인 공간이기보다 소녀들의 어린 시절 돌하우스처럼 행복한 판타지에 가깝다. 하지만 이 자그마한 판타지를 통해 드라마는 퍽퍽한 현실의 20대를 위로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물론 벨에포크에서 늘 행운만 따르는 건 아니다. 입사시험 최종면접까지 갔던 진명은 탈락한다. 카메라는 이때 진명이 신은 발가락이 드러날 듯 말 듯한 낡은 구두를 비춘다. 그녀의 성실과는 상관없이 세상은 ‘블링블링’하고 자신감 넘치는 신입사원만을 바란다는 듯. 그리고 탈락 통보를 받은 날에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레스토랑에서 매니저에게 도둑으로 몰린다. 자신의 가방 속 볼품없는 물건들을 탈탈 털어내며 수색한 매니저에게 진명은 “사과하라”고 울부짖는다. 진명의 이 장면은 보는 이를 먹먹하게 한다. 그게 지금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고개 숙인 진짜 20대의 맨 얼굴이기에.

시청률과는 상관없이 JTBC <청춘시대>는 반짝반짝 빛나는 드라마다. 그건 여주인공들이 예쁜 얼굴로 ‘블링블링’하게 미소 지어서가 아니다. 예쁜 미소 뒤에 감춰진 진짜 표정들을 공들여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그 표정은 이미 청춘을 지난 이들에게는 아련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어느덧 포장지 같은 생계용 표정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젊은 날의 감정이 날 것으로 드러나는 표정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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