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나영석 PD는 어떻게 위기론을 잠재웠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예능 <삼시세끼> 고창 편은 나영석 사단에게는 최초였을 위기 징후 속에서 시작됐다.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급감한 두 편의 <꽃보다 청춘> 시리즈, 호평만큼 시청률이 올라오지 않았던 <신서유기2>, 나영석 사단의 외연을 확장한 <아버지와 나> 등등 내놓는 콘텐츠들이 특별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면서 변화의 필요성이 언급되는 위기론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영석 사단 최고 시청률 프로젝트인 <삼시세끼> 어촌편 멤버들을 풍요로운 농촌으로 옮겨온 고창편은 마지막 회를 앞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 자릿수 시청률로 떨어지지 않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나영석 사단이 택한 방식은 정공법이다. 출연자들과 모종의 각을 세우며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온갖 미물도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는 재능을 뽐내는 대신 보다 본연의 슬로라이프를 지향하는 힐링 콘텐츠에 방점을 뒀다. 별다른 게 없다. 그냥 만나서 밥을 하고, 일을 하고, 친한 사람들끼리 수다를 떨며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를 ‘함께’ 보내는 거다. 이런 일종의 가족이 보내는 일상과 살아가는 이야기, 오리가 성장함에 따라 유해진의 반려견 겨울이 같은 또 다른 귀여운 동물의 등장으로 슬픔과 아픔은 제거된 행복한 풍경들을 별다른 감정의 고조 없이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풍요로운 땅에 터전을 잡고 식구를 늘렸다. 미션과 게스트로 스토리텔링을 하던 방식도 버리고 노동과 밥 짓기가 볼거리의 전부다. 만재도에서 어렵게 식빵을 만들어낸 만큼의 놀라움도 아니고, 침이 꼴깍 넘어가는 기막힌 요리솜씨를 뽐낼 만한 메뉴도 아닌데, 김치 수제비를 만들어 먹는 장면이 분당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 말은 함께 농사를 짓고 밥을 해먹는 단지 이것만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는 이야기다. 예능이라기보다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드라마에 가까운 형태로 시청자들에겐 일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풍요로움과 함께 이번 고창 편의 또 하나의 특징은 게스트의 제외다. 게스트의 투입이나 이런저런 미션들로 조금씩 가려졌던 함께 자급자족하며 밥을 해먹는다는 ‘식구’라는 정서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다. 조건은 풍요롭게, 예능적인 설정은 최소화했다. 그러자 네 남자가 식구로 뭉쳐가는 이야기가 더욱 선명히 보이고, 그 관계에서 피어나는 소소하고 따스한 이야기들이 피식하며 보게 만드는 매력이 느껴진다. 세월이 지나며 쌓인 익숙한 캐릭터에게서는 편안함이 느껴지고, 새로운 캐릭터와 관계는 설렘과 기대를 품고 있다. 화제성은 예전만 못해도 이 심심한 매력은 변함없다.

그러자 그 어느 때보다 개별 캐릭터의 존재감과 색깔이 두드러졌다. 다소 예민한 차승원과 좋은 사람이지만 마냥 편해 보이지만은 않은 유해진, 그리고 이들을 중화시키는 손호준과 새롭게 합류한 남주혁이 하나로 뭉치는 과정을 관찰한다. 요리부, 시설부로 나누는 것들이나 아재 개그의 계승과정, 윤활유 역할을 하는 손호준, 푸근함을 만드는 유해진과, 이 가족의 뼈대인 차승원이 각자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고, 함께하는 데 있어서 어떤 역할과 배려를 하는지 보여준다. 게스트를 없애면서 화제성이란 살을 내준 대신 가족주의를 내세우며 시청률, 충성도, 힐링이라는 뼈를 취한 거다.



사실 되찾아보면 3~4회 정도까지 게시판이나 기사 등에서 이번엔 어떤 게스트가 등장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컸다. 지난 <삼시세끼> 시리즈는 누가 오느냐가 화제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구도 늘어났고, 먹을거리도 풍족하고 주방도 좋아졌다는 것부터가 또 다른 포부와 기획이었다. 그 포부에 걸맞은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게스트 없이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어도 찾아보고 힐링이 되는 <삼시세끼>만의 콘텐츠로 승부를 보는 데 성공했다.

그런 이유로 <삼시세끼>에 대한 글을 쓰기가, 동료, 이웃, 친구들하고 ‘어제 그거 봤어?’라고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 우리 일상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가운데 조금씩 자신의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이 프로그램도 반복되는 일상을 별다른 장치 없이 그냥 보여주기 때문에 각자 느끼는 감상에 가까운 정서적 경험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카메라로 담아와 편집한 영상이지만 정말 이웃 같고, 그들과 함께 둘러앉아 밥을 한 끼 해먹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촬영하며 SNS에 올리는 사진들은 더욱 더 실제 같은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삼시세끼> 고창편은 게스트를 제외하고 이런저런 스토리텔링이나 과도한 의미부여를 빼면서 잔잔해지고 담백해졌다. 그 대신 요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결핍을 느낄만한 요소를 모아서 한데 어우러지게 구수한 찌개를 끓였다. 노동을 경쾌하게, 밥 짓기를 행복하게 보여줬다. 그러면서 웃음 혹은 정보, 혹은 이야기라는 차원을 넘어선 정서적 만족감이란 재미의 영역을 개척했다. <삼시세끼> 고창편에 이르러 드디어 나영석 사단은 예능이긴 하지만 예능의 문법이 전혀 없는, 드라마 같기도 하고 다큐 같기도 한 기존 예능 장르로 분류하기 어려운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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