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 이젠 신기하고 잘생긴 외국인들의 모임이 아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사람의 취향이란 매우 개별적인 것 같지만 보는 눈은 비슷한가 보다. 지난 6월 개편을 단행한 <비정상회담> 시즌2가 훈풍에 돛을 단 듯 순항하고 있다. 주변의 반응도 호평 일색이다. 2014년 7월 시작한 <비정상회담>은 방송가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JTBC예능의 선봉이었다. 장위안, 타일러, 샘 오취리, 줄리안, 알베르토 등 외국인 방송스타를 여럿 배출하고 스핀오프 프로그램까지 히트시켰다. 하지만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들의 대화라는 한계와 이런저런 스캔들, 캐릭터의 소비가 가속화되면서 화제성이 급강하했다. 추락을 막기 위해 멤버 교체라는 처방을 단행했지만, 인적 쇄신 끝에 문을 닫은 숱한 예능의 전철을 걷는 중이었다.

지난 6월 매우 짧은 휴식 이후 돌아온 시즌2도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겉으로 봐서는 기본 콘셉트와 MC진을 그대로 유지하고, 결과적으로 멤버 교체만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마치 시름시름 앓고 있는 화분의 시든 잎과 줄기를 과감히 손보자 다시 새잎이 나고 새순이 돋는 것처럼 확실하고 과감한 진단으로 문제가 됐던 부분을 도려내니 되살아났다. 시청률도 3%대를 회복했고 화제성 조사회사의 자료에 따르면 월요일 비드라마영역 화제성은 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개편 전후를 비교해보면 가장 큰 변화는 토론의 질적 향상이다. 예능적 장치, 멤버 개개인의 캐릭터를 살리기 이전에 토론을 프로그램의 중심에 놓고 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선택이 이어졌다. 12명에서 8명으로 멤버를 줄이고, 어린 백인 남성 위주에서 파키스탄, 인도, 멕시코 등 다양성을 확보하고, 직장생활을 비롯한 사회경험이 많은 연령대가 높은 멤버들을 포진시켜 사회 전반에 관해 심층적이고 폭넓은 견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 덕분에 자국에 대한 디스는 기본이고, 인도와 파키스탄, 미국과 멕시코 간의 갈등 등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의 지형과 역사를 폭 넓게 접하게 됐다.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보다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각국의 주거문화에 관해 나눈 이번 토론에서는 유럽과 크게 비교되는 우리 도시계획과 문화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가 있었다. 동네나 환경, 후대에 남길 역사보단 일단 나만 잘 살면 된다는 풍토가 빚어낸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바라보는, 김현주가 부끄럽다고 말한 한국 사회의 민낯의 상징인 아파트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지만 정확하게 느낀 바를 짚는다.

돌이켜보면 <비정상회담>의 첫 세팅은 백인 미남자와 장위안, 타쿠야 같은 미남들을 중심으로 샘 오취리, 줄리안 같은 방송을 아는 선수들로 구성했다. 새로 들어온 멤버들도 주로 여성 시청자를 유인할 수 있는 백인 미남자들이었다. 전형적인 방송 마케팅이 깃든 기획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외국 미남들이 한국말을 잘한다는 게 신기했고 외국인의 시선에서 우리를 바라본다는 견해가 신선했다. 하지만 한국 사랑이란 울타리, 그리고 경험의 폭에서 오는 한계에 봉착하면서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 제작진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한다는 사이먼 페그도 감탄한 기획을 보다 선명하게 하기 위해 진지함을 택했다. 기존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급 반열에 올라선 멤버들의 인지도에 기대는 대신, 여성 시청자들을 쉽게 유입할 수 있는 조건들을 생각하는 대신, 능숙한 한국어보다 삶과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외국인 패널을 섭외해 유익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재건했다. 여성 패널을 적극 초대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전 세계 어디에도 영국 배우가 영화를 홍보하러 나와 브렉시트 개그를 던질 쇼는 없다.



더욱이 출연진 대부분이 방송 활동과 관련 없는 인물이라 한국 방송 문화의 틀과 법칙에서 자유롭고, 제작진도 그 틀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다보니 주제 선정도 과감해졌다. 예능이지만 <썰전>처럼 들어볼 가치가 있는 이야기들, 늘 조롱받는 트럼프를 비롯해, 피아가 첨예하게 나뉘는 식민지배와 같은 무거운 이야기도 나눈다. 광복절을 맞이해 영국과 인도, 프랑스와 기니, 미국과 멕시코, 일본과 중국, 한국, 이탈리아와 리비아 등 과거 서구 열강시대에 지배국과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가 출신의 패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역사의 아픔과 현재에 관한 토론을 나눈 ‘식민 역사와 독립 특집’은 글로벌시티즌십에 걸맞은 의미와 호평을 동시에 거머쥔 기획이었다.

이제 <비정상회담>은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어를 잘하는 신기하고 잘생긴 외국인들의 모임이 아니다. 전세자금 대출, 한옥 사랑과 인테리어,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아 집을 살지, 전세를 살지를 고민하는 글로벌 ‘아재’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다룰 수 있는 주제의 폭을 넓히며 토론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TV를 누구보다도 많이 보는 시청자지만 배우 김현주가 그렇게 논리정연하게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인 줄 몰랐다. 자신의 생각을 나눌 기회가 우리 방송환경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비정상회담>은 이제 외국인 출연자가 방점이 아니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고 한국 문화를 사랑한다는 걸 넘어섰다. 다양한 입장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우리의 이야기, 그리고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토론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이들의 토론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