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에 캔디’, 모르는 목소리가 날 움직이고 뒤흔들고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교석·이승한 세 명의 TV 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로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가 선보이는 새 코너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영화 <그녀>와 세이클럽 랜덤채팅 사이의 그 어딘가. tvN 새 예능 <내 귀에 캔디>가 겨냥하는 지점이다. 제작진이 건넨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다 닳을 때까지만, 누군지도 알 수 없지만 종일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누군가와 통화한다는 설정은 큰 장치 없이도 금방 사람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통화 당사자들이 이렇게 설레는데 그 내밀한 대화에 초대받은 시청자들은 어떠랴. [TV삼분지계]의 세 사람 또한 첫 통화를 함께 엿들었다. 정석희 평론가는 지수와 이세영의 통화를, 김교석 평론가는 장근석과 유인나의 통화를, 이승한 평론가는 서장훈과 안문숙의 통화에 주목했다.



◆ 지수와 이세영 -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줄 친구

“사실 제가 개그우먼이고 늘 어느 곳에서든 진심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과장을 하거나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었거든요. 하다 보니까 그냥 내가 나오더라고요. 남들이 잘 모르는 이세영이.”

지수와의 짧은 인연을 마무리 한 뒤 아쉬움이 가득한 어조로 ‘열아홉 순정’ 이세영이 말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얄궂은 일이다. 배터리가 다 소진될 때까지만 허락된 시한부 인연이라니. 물론 두 사람 모두 연예인인 만큼 또 다른 자리에서 만날 수는 있겠지만 설레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속내를 내보였던 지난 시간과 같은 감정일 수는 없으리라. 아무 것도 없는, 모든 걸 내려놓은 공간에서 얻은 평화임을 잘 알기에 울컥했던 것이 아닐까?



<내 귀에 캔디>라는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편견이 있었다. 그래서 삐딱하니 바라봤다. 연애 리얼리티의 단골인 설정과 가식, 거기에 언제나 양념처럼 등장하는 악마의 편집까지 보태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웠던 것. 하지만 이세영의 눈빛과 표정을 접하는 순간 편견은 사라졌다. <내 귀에 캔디>는 연애 리얼리티가 아니라 친구와의 소통을 주선해주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 말이다.

물론 연애 감정으로 발전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거기에 마치 MBC <복면가왕>처럼 목소리 맞추기라는 색다른 재미도 생겼다. 앞으로 누가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올지, 누가 받을지 기대가 된다. 이제 ‘내 귀에 캔디’라는 암호가 널리 알려졌으니 깜짝 선물처럼 캔디폰이 배달되어 오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안녕하십니까? 달콤한 비밀통화 내 귀에 캔디입니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장근석과 유인나 - 강력한 러브 바이러스

<내 귀의 캔디>의 메인은 오글거리는 멘트가 펀치라인이라 할 만한 장근석과 사근사근 속삭이는 유인나 커플이다. 유인나가 이 새로운 예능이 레퍼런스 삼은 영화 <그녀>의 촬영지인 상하이에 머물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너가 누구여도 상관없어’ ‘너 목소리 듣고 싶고 하루 종일 기다리게 돼’ 따위의 여심을 녹이는 멘트를 장근석이 넘기면, 유인나는 라디오를 통해 증명해 보인 적 있는 목소리와 말투만으로도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사랑스런 속삭임으로 대화를 이끌어 간다.

이 둘의 전화통화를 엿듣고 있자니 마치 타인의 연애를 지켜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청자들에게 달달함과 설렘의 러브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인데, 상황에 따라서 방송을 보는 순간만큼은 전혀 외롭지 않고 연애를 하고 싶게 만드는 매우 신기한 경험을 할 수가 있다. 왠지 사랑의 첫 걸음을 나도 함께 떼는 것 같다.



관찰형 예능 시대에 접어든 이후 수많은 예능 중 청소, 밥짓기, 친구 만나기까지는 많이 봤지만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 끌림, 호기심 등등의 감정까지 이토록 카메라 앞에 가져와 보여준 적은 없었다. 일상을 파고들던 예능이 드디어 연애의 순간과 감정까지 카메라 앞으로 끌고 나왔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귀의 캔디>의 설렘은 특정 세대의 잊혀진 추억과 만나면서 더욱 커진다. 영화 <그녀>는 가까운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내 귀의 캔디>는 사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인 폰팅과 채팅 사이트였던 세이클럽 시대의 감성과 문화를 소환한다. 상대에 대한 기본 정보도 없이 낯선 이성과 설렘을 주고받았던 대화는 10여 년 전 젊은이들의 트렌드였다. 금세 사랑에 빠진 장근석의 느끼한 멘트와 촉촉함을 유지하는 유인나의 능수능란함은 그 시절 기억을 소환하게 한다. 캔디가 바뀔 때마다 이 설렘의 크기가 지속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내 귀의 캔디>는 관찰형 예능 시대에, 지금처럼 빅데이터 운운 하는 시대에 새로운 감성과 시도가 돋보이는 콘텐츠임은 확실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 서장훈과 안문숙 – 소통의 여러 얼굴

“남자와 여자 사이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일일 캔디 ‘순정’이었던 이세영이 지수에게 던진 질문이지만, 답은 서장훈과 ‘나타샤’ 안문숙 사이에서 엿볼 수 있었다. 장근석-유인나의 능란한 밀고 당기기와 지수-이세영의 서툴고 풋풋한 썸의 기운 사이에서, 서장훈-안문숙은 좀처럼 이성애의 자장에 포섭되지 않는 대화를 나눴다. 로맨스에 관심이 있기는커녕 집밖으로도 잘 안 나가는 심드렁한 장훈과, 그런 서장훈에게 “너의 눈높이로” 집을 둘러보고 싶다며 영상통화를 요구하는가 하면 시장까지 이끌어 내 끝내 서장훈을 움직이게 만든 안문숙과 서장훈 사이에 흐르던 기류는 건강한 우정이었다. 애초에 피차 통화에서 로맨스 비슷한 무언가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상대 자체에 집중했기에 가능했던 관계다.



<내 귀에 캔디>의 룰은 몇 가지 영리한 제약을 걸어 둔다. 상대의 정체에 대해서 알 수 없고, 누군지 몰라도 일단 상호 반말을 해야 하며, 배터리가 소진될 때까지만 소통이 가능하다. 선후배라는 위계, 나이 차이라는 질서와 같은 군더더기를 다 떼고 나누는 소통은 보다 더 본질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그 본질적인 소통을 나눌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제약은 대화 자체에 집중하고 더 빨리 솔직해지게 만든다.

그러니 이 흥미로운 소통이 꼭 이성애적인 형태로만 이루어 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소통 자체인 거니까. 서장훈과의 통화에서 ‘아니 아니’라는 특유의 말버릇이 몇 번이나 나오는지 체크해가면서 그의 삶이 부정보단 긍정의 수식으로 채워지길 바랐던 안문숙처럼, 안문숙의 채근에 난생 처음 직접 콩국수를 해먹어 본 서장훈처럼.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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