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W’ 작가가 진짜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었을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에는 ‘W’라는 프로그램이 두 개 존재한다. 첫 번째는 2010년 여배우 김혜수로 진행자가 바뀐 뒤 2개월여 만에 종영한 시사프로그램 ‘W’,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방영중인 MBC 수목드라마 ‘W’다.

시사프로그램 ‘W’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뤘던 흔치 않은 국제시사프로그램이었다. 드라마 ‘W’에는 이곳의 세계와 이곳과 똑같지만 이곳이 아닌 웹툰의 세계가 존재한다. MBC는 시청률을 이유로 2010년에 ‘W’를 폐지했다. 그리고 2016년 현재 웹툰 속 남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 ‘W’를 방영 중이다.

한편 드라마 ‘W’의 웹툰 속 세계에는 사설 방송국 W도 존재한다. 살인자에 의해 온 가족이 몰살당하고 살인누명까지 쓴 만화 속 주인공 강철(이종석)이 진범을 찾는 것이 웹툰 W의 줄거리다. 그리고 강철은 얼굴 없는 범인을 찾아내려 사설방송국 W를 세울 만큼 대단한 녀석이다. 재력, 외모, 사격솜씨, 싸움능력, 거기에 이성적인 판단능력까지 갖춘 정말 만화에나 등장할 법한 슈퍼히어로인 셈이다.

웹툰 W속 만화주인공 강철과 W를 그린 만화가 오성무(김의성)의 딸 오연주(한효주)의 로맨스를 그린 이 드라마는 만화처럼 가볍다. 여주인공 오연주는 만화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며 만화주인공과 달달한 사랑을 하고 가슴 아픈 이별도 겪는다. 그런데 현실과 웹툰을 오간다는 설정에는 생각보다 많은 부유물이 떠다닌다. 가끔은 그 부유물이 단순한 로맨스보다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토록 가벼운 이야기에 철학적, 문학적으로 곱씹을 만한 다양한 메타포들이 넘실거린다. 그리고 그 반짝이는 부유물들은 정작 로맨스에 시큰둥한 이들에게 드라마를 따라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아마 그런 메타포 중에서 가장 직접적인 건 만화가 오성무와 강철, 그리고 살인 진범인 한상훈(김의성)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잡아먹히느니 잡아먹겠다.” (오성무)

만화가 오성무는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그림 뒤에 자신의 다짐을 적는다. 아들에게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아들을 잡아먹는 이 괴물의 모습은 만화가 오성무, 더 나아가 자신의 창조물 때문에 스스로 ‘멘붕’되는 예술가의 모습을 은유한다. 처음에 그는 자기 자신이 만화 속의 인물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신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마음대로 W의 세계를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만화가는 결국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강철의 총에 맞는 지경에 이른다. 그 후 강철과 힘을 합쳐 만화를 해피엔딩으로 끝내기 위해 새로운 판을 짠다. 그 작전을 위해 오성무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바로 자신의 얼굴을 만화 속 얼굴 없는 진범으로 그리는 것이다.



하지만 해피엔딩의 신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은 만화가는 어이없이 만화 속 또 다른 인물인 얼굴 없는 진범에게 당한다. 강철 못지않은 자각 능력을 지닌 얼굴 없는 진범 한상훈이 아예 만화 밖 만화가 오성무의 얼굴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얼굴을 잃은, 더 정확히 눈과 입이 없는 존재로 변한 만화가 오성무는 신에서 힘없는 좀비 같은 괴물로 전락한다. 그러니까 그저 만화 속 절대자가 된 진범 한상훈의 명령에 따라 그림을 그리고 대사를 쓰는 영혼 없는 좀비 같은 괴물.

한편 W 속 인물인 강철과 얼굴 없는 진범 한상훈을 통해 자각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도 있다. 웹툰 W 속 인물들은 자신들이 웹툰 속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리고 줄거리 상 그들이 태어난 목적이 사라지면 그 인물은 웹툰 속 세계에서 사라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강철이나 진범 한상훈처럼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부조리함을 자각하면 그 뒤로 그들은 또 다른 힘을 지니게 된다. 그러니까 만들어진 개, 돼지처럼 살아가는 만화 속 세상 밖으로 뛰어나갈 수 있는 자유의지를 지니게 된다는 뜻이다.

이 외에도 ‘W’는 드라마의 진행 맥락과는 상관없이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며 즐길 거리가 많다. 만화와 현실을 오가는 오연주를 보며 장자의 ‘호접몽’을, 가상의 세계인 웹툰 W에 열광하며 지루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에선 21세기의 실존주의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한편 두 개의 ‘W’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상파 MBC의 현실을 떠올려 보게 되기도 한다. 웹툰 W에는 가상세계를 창조한 만화가의 얼굴을 훔친 진범 한상훈이 사설방송국 W에 테러를 가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진범을 찾기 위한 방송국 W의 대표시사프로그램 ‘W’를 진행하던 아나운서도, 방송 스텝도, 심지어 방송 카메라마저 총으로 쏴 버린다.

이건 어딘지 시청률을 핑계로 시사프로그램 ‘W’와 ‘후 플러스’를 없애고 시사교양국 PD들을 징계하고 인사 조치하던 당시의 MBC를 떠오르게 한다. ‘위대한 탄생’을 꿈꾼다는 명분이었지만 과연 MBC는 그 후에 위대해졌을까, 아님 뻔뻔해졌을까? 알다시피 2014년 MBC 시사교양국은 해체되었다.

“지금 이곳은 진범의 의지로 움직이는 세상이다. 악당이 지배하는 세상.” (강철)



한편 진범 한상훈에게 얼굴을 빼앗긴 현실의 만화가 오성무는 괴물이 된다. 그는 진범이 불러주는 대로 대사를 적고, 그가 바라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눈이 없고 귀가 없고 입이 없이 손만 있는 징그러운 괴물의 모습으로. 이것도 어째 지금 현재의 MBC와 비슷하다. 길고양이가 살인진드기를 퍼뜨린다는 괴담성 기사나 내보내는 MBC뉴스데스크는 지금 이 순간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시집살이하던 조선시대 며느리처럼 눈 닫고, 귀 닫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 보도는 하나 그 보도의 내용은 어딘지 그 태도는 ‘W’ 속 괴물이 된 만화가와 별로 다르지 않다.

상황이 이러하니 보도기능의 신뢰를 상실한 공영방송 MBC는 드라마 ‘W’보다도 매력이 없다. 과연 MBC는 달라질 수 있을까? 변수가 있으면 달라지는 웹툰 W의 줄거리처럼 MBC에도 무언가 변수의 여지가 있을까? MBC의 M을 뒤집으면 W다. ‘W’는 로맨스로 위장한 채 어쩌면 그를 방송해주는 MBC에 자각의 총구를 들이대는 스파이 같은 드라마는 아니었을까? 눈멀고, 귀 닫고, 말을 잃은 채 문화방송에서 거대한 화석방송으로 변해가는 괴물에게 찾아온 강철의 모습으로.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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