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의 영화낙서판] 토요일 밤에 EBS에서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한단다. 오래간만에 데보라 카와 버트 랭커스터가 해변에서 뒹구는 거나 보자하고 텔레비전을 켰다. HD로 보니 그림도 더 좋아 보이는 것 같다. 한참 기분 좋게 보고 있는데... 아, 익숙한 장애물이 나타나고 만다. 데보라 카와 버트 랭커스터가 사이좋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그만 랭커스터가 물고 있는 담배 위에 블러 동그라미가 뜨는 거다.

여기서부터 내 생각은 이들의 불륜을 넘어 산으로 산으로 간다. 두 사람 모두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왜 동그라미는 랭커스터의 것에만 뜨나? 랭커스터가 더 노골적으로 담배를 피우나? 아니면 입으로 빠는 장면이 나와야만 담배를 가리는 건가? 이제 더 이상 이 장면의 주인공은 카와 랭커스터가 아니라 그들이 물고 있는 담배다.

동그라미는 사라진다. 이제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연기에 빠져볼까. 하지만 편안한 영화 감상은 다시 중단된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유리병을 깨고 어네스트 보그나인 앞에서 고함을 질러대고 있는데, 이 사람들 이번에는 유리병을 블러 처리해버렸다! 여기서 끝인가? 아니, 영화 끝 부분에 클리프트와 보그나인이 칼을 들고 싸우는 장면을 봐야 한다. 블러 처리가 된 작은 칼 두 개가 마치 미니 광선검 같다. 난 [지상에서 영원으로]가 제다이 아카데미에 대한 영화인지 미처 몰랐다.

어이가 없다. 10여년전까지만 해도 [지상으로 영원으로]는 잘리거나 가릴 이유가 없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몇 차례 공중파로 봤지만 검열이나 삭제 때문에 신경 쓰였던 적은 없다. 사실 영화판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검열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제임스 존스의 원작 소설을 읽어보셨는지? 한 번 읽어보시라. 폭력과 섹스와 온갖 비속어들로 범벅이 된 이 소설이 당시 할리우드 기준에 맞는 깔끔한 영화로 만들어진 것 자체가 기적이다. 이미 프레드 진네만은 그 영화가 텔레비전으로 옮겨지기 전에 자기 검열의 기적을 이루었던 거다. 그나마 남아있는 건 담배와 칼, 깨진 유리병뿐인데, 텔레비전은 기어이 이 나머지 것들을 지워버린다. 이제 영화가 불쌍해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무슨 도움이 되나. 블러 처리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는 옛날 사람을 본다. 하지만 블러 처리를 하면 사람들은 동그라미 뒤에 있는 담배를 상상하고 거기에 집중한다. 소품에 불과했던 작은 물건이 어느 순간부터 영화의 주연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칼은 더 웃긴다. 이미 텔레비전은 저보다 더 큰 흉기들과 그로 인한 폭력을 사극 시리즈에서는 허용한다. 그런데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는 왜 안 되는 걸까. 음, 이 영화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무대로 하고 있으니 사극으로 봐주면 안 될까.

이와 같은 바보짓을 하나 더 안다. 직배사의 블록버스터 언론시사회를 할 때 회사에서는 커다란 금속 탐지기를 상영관 앞에 세워놓고 들어가는 사람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휴대전화를 빼앗는다. 기자들 중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영화를 녹화해 인터넷에 올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맨눈으로 보면 이중으로 겹쳐 보이는 3-D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어이가 없다고? 물론 어이가 없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이들의 검사가 건성 중 건성이라는 거다. 아무도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실수로 가방에 디카를 넣고 신고를 안 했다고 해서 제재가 가해지는 일은 없다. 그들은 그냥 디카가 든 가방을 나에게 준다. 하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이게 본사에서 내려온 지시 사항을 따르는 것일 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시간 낭비/돈 낭비라는 걸 안다. 이 역시 담배 검열과 마찬가지로 하라니까 그냥 하는 것일 뿐, 전혀 실효성이 없다. 짜증나는 사람들만 늘어날 뿐이다.

아마 시사회 소지품 검사를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다. 내 목소리가 영화사 본사의 귀에 들어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이 어이가 없는 방송국 블러 처리에 대한 불평이 담당자들의 귀에 들어갈 가능성은 그보다 가능성이 조금 높으니 한 마디 해야겠다. 제발 이런 건 하지 말라. 새로 만드는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흡연 장면을 제한하는 것은 대환영이다. 하지만 제발 옛날 것들은 그대로 남겨두시라. 과거의 바보짓은 바보짓으로 보존되어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을 존재하지 않았다고 우기며 지우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흡연은 예외가 되어야 하나. 이 주장에 당신들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오히려 지워서 주목을 끌 일이라면 처음부터 안 하는 게 낫다는 건 인정할 것이다. 무언가를 할 힘이 있다면 역효과를 내는 일 대신 다른 걸 하라. 이보다 더 상식적인 말이 있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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