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설.리’, 도전적인 시도가 만든 의도치 않은 가능성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번 추석 연휴 파일럿 예능의 핵심 키워드는 소통인 듯하다.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시청자들이 직접 관여하는 실험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공감, 교감 등을 내세운 주제와 형식의 예능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타임슬립 콘셉트로 과거로 날아간 KBS2 <구라차차 타임슬립 새소년>, 국내최초 리플 드라마 MBC <상상극장 우.설.리(우리를 설레게 하는 리플)>, 고향을 찾은 스타들이 실시간 SNS를 통해 지령을 수행하는 시청자 참여 버라이어티 MBC <톡 쏘는 사이>, 나이와 세대 차이를 허무는 교감 토크쇼 KBS2 <헬로 프렌즈> 등이 그 예다.

그중에서 <우.설.리>는 이번 추석 연휴에 방영된 파일럿 중 가장 눈여겨본, 소개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다. 참패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긴 했지만 소통을 기반으로 극화한 신선한 형식의 예능이었다. 점차 극의 형태로 진화하는 예능의 변화상을 보여준 사례인 동시에 작년 설 특집 파일럿에서 이제는 MBC 간판 예능으로 자리매김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를 잇는 시청자 참여형 예능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정작 가능성은 의외 곳에서 나타났다.

가능성을 언급하기 전에 실패 이유를 먼저 진단해보기로 하자. 이 프로그램의 기본 구조는 시청자들이 남긴 댓글을 바탕으로 짧은 드라마를 만든다는 거다. 시청자들이 써놓은 리플을 반영해 대본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드라마가 된다’가 캐치프레이즈인 이유다. 그런데 <우.설.리>가 2%대와 1%대를 오가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이유는 완성된 드라마의 낮은 완성도에 있다. 출연진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탓에 기대치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결과물은 그 수준에조차 도달하지 못했다.



완성된 극은 드라마가 아니라 콩트에 가까웠다. 이해는 간다. 중구난방의 리플들을 상당히 잘 수습한 대본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짧은 시간에 저예산으로 예능 제작진이 기획부터 촬영과 편집까지 도맡아 제작하다보니 극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예능 작가와 PD가 만든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다고 하지만, <우.설.리>가 그와 비슷한 완성품을 만들어내기엔 제작 여건 자체가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사실상 출연진 구성이 한마디로 설명될 수 있다거나, 특정 집단이나 타겟 시청자들에게 소구될만한 콘셉트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 작용했다. 그래서 완성된 3편의 드라마를 함께 시청한 2부는 말 그대로 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 외의의 가능성은, 드라마나 리플로 만든 극본 밖에 있었다. 은우와 다현, 우재와 지인, 민우와 경환이 짝을 이루고 본격적으로 촬영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드라마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풋풋함과 설렘이 흩날렸다. 리얼은 리플이 아니라, 단둘이서 해쳐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생성됐다. 함께 해쳐나가야 하는 숙제를 받아든 커플은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면서 가까워졌다. 그런 가운데 예능 차원의 캐미와 캐릭터 만들기는 순식간에 완성됐다.



특히 막내 커플인 은우와 다현이 통성명 과정에서부터 촬영 중 보여준 알콩달콩한 모습은 굳이 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가 풋풋한 청춘 로맨스물이였다. 연기 경력 8년차의 전문 연기자와 모델 출신의 연기 생초보인 동갑내기 콤비 지인과 우재 커플은 보다 편하고 친근한 커플의 모습을 보여줬다. 우재가 지인의 연기 지도를 받으며 장난치듯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다시 편안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장면들은 또 다른 색깔의 웃음을 짓게 했다.

비록 남남 커플이었지만 순정만화 속 주인공을 표방하는 인위적이어서 웃기는 노민우와 허경환 콤비는 이러한 달달함과 상큼함에 쉬이 지루해지지 않도록 톡 쏘는 재미를 더했다. 커플들이 호흡을 맞춰가는 장면들을 보면서 드디어 MBC 예능국이 <우결>을 내려놓을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찾은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들 정도였다.

<우.설.리>에 등장하는 커플은 당면 과제가 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아는 가상 커플의 상황극이 아닌, 실제 상황 속에서 둘이서 함께 힘을 합쳐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내밀한 매력과 달달하면서도 풋풋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출연자들이 일정 기간 고정 출연하면서 점점 관계와 감정이 쌓이게 된다면 양성화된 팬 소설이 실제와 극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긴가민가하게 펼쳐질 것이다. <우.설.리>가 추구하던 시청자 참여형 예능이 목표했던 방향은 아마도 아니겠지만, 의도치 않은 곳에서 또 다른 리얼리티가 발화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도전적인 시도가 만든 얼떨결한 발명품이랄까. <우.설.리>는 모처럼 꾸며내지 않은 풋풋하면서 달달한 설렘이 깃든 예능이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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