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의 도약, 웃음과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엔터미디어=정덕현] 최근 KBS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코너들이 주목된다. 지난 4일 새롭게 등장한 ‘세젤예’와 이어서 지난 18일 새로 시작한 ‘나가거든’이 그 주목되는 코너들이다.

‘세젤예’는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사람들’을 내세워 밀도 높은 웃음을 만들었다. 이 코너의 특징은 유민상이 하는 이야기마다 사사건건 예민하게 반응하는 손님들을 내세워 쉴 새 없이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손님으로 등장하는 네 사람은 각각 특정하게 예민한 상황들을 갖고 이 가게를 찾는다. 그 상황들은 각양각색이다. 여자 친구와 헤어졌거나 시골출신이거나 취직시험에 연달아 떨어진 상황들도 있고, 여러 차례 성형을 했거나 핵존심이거나 뚱뚱하다는 것 때문에 예민한 상황들도 있으며, 외국인처럼 생겼거나 거지 차림을 해 오해를 받는 상황들도 있다. 이런 상황들이 서로 겹쳐지며 딴 이야기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들을 통해 주인인 유민상을 몰아세우는 과정은 큰 웃음을 연달아 터트린다.

하지만 이 코너는 단지 웃음을 위한 웃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예민한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오는 상황들은 사실상 우리네 현실의 풍경들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시골 출신이면 받기 마련인 소외감도 있고, 취업문제도 있으며, 성형공화국과 다이어트에 민감한 우리네 세태도 깔려 있다. 그러니 웃음 뒤에 남는 현실적 공감대가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새로 등장한 ‘나가거든’은 영화 <터널>을 <개그콘서트> 식으로 제대로 패러디함으로써 웃음에 풍자를 더했다. 재난상황에 빠진 홍현호가 전화를 걸어 구조요청을 하려 하는데 그의 위급한 상황과는 딴판으로 여유를 부리는 바깥세상의 사람들과 대비를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특유의 황당하고 억울한 표정 연기가 압권인 홍현호가 그 중심점을 잘 잡고 있고, 판넬로 가려져 그가 통화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한 명씩 등장하는 구성도 괜찮다.



특히 재난 상황에 관련부처에 전화를 걸지만 시설과와 산림과가 저마다 그게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며 외면하는 상황은 톡 쏘는 현실 풍자를 담아냈다. 본래 <터널>이라는 영화가 건드린 부분이기는 하지만 역시 이를 취재하려는 언론의 선정성 또한 ‘나가거든’이 보여주는 풍자적인 웃음의 핵심적인 소재로 등장했다.

<개그콘서트>가 과거와 비교해 위기상황에 몰리게 된 건 웃음과 의미 사이에 균형을 잘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그 코너는 웃음이 빵빵 터져야 그 개그로서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와 맥락을 갖지 못할 때는 그저 휘발되어 버리는 속성이 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의미와 맥락만을 찾다가 정작 웃음을 잃어버리면 그건 개그 코너라고 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이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는가가 관건이 되는 것.

적어도 최근 새롭게 등장한 두 코너, ‘세젤예’와 ‘나가거든’은 이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균형이 잘 잡힌 개그 코너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물론 지금도 <개그콘서트>의 코너들은 전체적으로 보면 이 균형이 깨진 것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세젤예’나 ‘나가거든’ 같은 신규 코너들이 조금씩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면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도약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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