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없다는 제작진이나 덥석 받는 다작 방송인이나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이번 추석 다음 날, 그득히 남아있는 명절 음식을 두고 식구들이 햄버거를 사러 나서지 뭔가. 무슨 가당치 않은 소리냐며 극구 만류했지만 속으로는 나도 은근히 햄버거 생각이 났다. 그게 그렇다. 아무리 천하일미라 해도 입에 당기는 건 하루 이틀인 법이고 듣기 좋은 꽃노래도 계속 이어지면 질리기 마련이 아니겠나. 음식 하나만 봐도 그럴진대 사람인들 오죽하랴. 그렇지 않아도 한 주일 내내 보고 또 보는 이들을 왜 굳이 명절 특집에서까지 봐야 하느냔 말이다.

특히나 일 많이 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세 MC들. 전현무는 KBS 2TV 추석 파일럿 <트릭 앤 트루-사라진 스푼>과 MBC <아이돌 스타 육상선수권대회>를, 김구라는 KBS 2TV <구라차차 타임슬립-새소년>을, 그리고 김성주는 MBC <아이돌 요리왕>, <닥터고>, <머니룸>, 세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했다. 한 사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투덜댔고, 한 사람은 변함없이 깐족댔고, 한 사람은 늘 그렇듯이 스포츠 중계식 멘트를 쏟아냈다. 아니 이렇게 사람이 없나. 그릇은 신선로인데 담겨 있는 건 평소 자주 끓이는 미역국인 셈이다.

아마 제작진들은 달리 믿고 맡길 인물이 없었다며 이해를 구할 것이다. 적어도 기본은 해내는 이들이긴 하니까. 그리고 프로그램 콘셉트와 어긋난다 싶어도 딱히 대안이 없는 걸 어쩌느냐고, 설 특집 파일럿 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변명을 하겠지. 원하는 진행자는 사양을 했거나 아니면 같은 시간대에 이미 방송이 잡혀있었을 테고. 물어보나 마나다. 어쨌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보여주는 대로 봐야하는 시청자의 따분한 심경은 안중에도 없는 것을.



이건 일종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늘 새롭고 반전이 있는 콘텐츠에 목마른 시청자들을 위해 명절 특집, 딱 한번만이라도 마음을 써줄 수는 없느냐는 말이다. 그나마 KBS 2TV <노래싸움-승부>가 배우 남궁민을 단독 MC로 섭외하는 모험에 나섰고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결과 앞으로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남궁민과 만나게 되지 싶은데 왜 이처럼 신선한 인물을 발굴하기 위한 도전과 노력에 다들 인색한 건지 모르겠다. 명절을 코앞에 두고야 허둥지둥 섭외에 나설 것이 아니라 설 특집을 마치고 난 뒤 다가올 추석을 위해, 새로운 포맷의 파일럿을 위해 새 얼굴을 키웠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드라마들도 사전 제작을 하는 마당에 예능 프로그램도 미리미리 준비를 하면 좀 좋은가.

뿐만 아니라 제각기 사정은 있겠으나 부른다고 덜컥 응하는 진행자들도 문제다. 흔히들 위안 삼아 하는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는 말, 과연 그게 정답일까? 세상만사 예습과 복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건 초등학생만 되어도 아는 이치가 아닌가. 모니터링을 할 시간도 없고 대본 숙지는 물론 출연자에 대한 정보도 어두운 상황에 방송 숫자만 늘이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전현무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결코 돈 때문이 아니라 일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으면 한다. 현재 그 좋아하는 일을 잘 하고 있는 것인지.



과거 진행에 있어 최고를 달린 바 있는 주병진이 얼마 전 채널A <개밥 주는 남자>에서 강남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나는 방송을 많이 안 한 사람이야. 하나나 두 개 하면 최고로 많이 한 거였지.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마음을 담아서 하는 것이 중요해.” 그리고 이어서 인기에 눈이 멀면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는지 망각할 수 있다며 절대 조명에 눈을 가리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했다. 한 때 프로그램을 여덟 개씩이나 섭렵하는 통에 심신이 다 피폐해졌었다는 강남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될 조언이었으리라. 어쩌면 힘에 부치도록 다작을 해온 몇몇 인물들을 향한 뼈있는 일침인지도 모르겠고.

‘시청자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진행자들의 단골 멘트다. 진심으로 시청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잠시 잠깐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하기는 도무지 그럴 여유가 생길 것 같지는 않지만.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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