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추석 특집, 당신은 어떤 프로그램을 보셨습니까?
올해 주목할 파일럿 ‘아이돌 요리왕’, ‘씬 스틸러’, ‘노래싸움 – 승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어느 순간부터 명절은 단순히 특집 에피소드를 편성하는 시즌이 아니라 각 방송사 예능국의 한 해 농사를 가늠해 볼 테스트 베드가 된 듯하다. MBC <복면가왕>과 <마이 리틀 텔레비전>, SBS <썸남썸녀>와 <아빠를 부탁해>,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명절 특집 파일럿으로 선보인 후 정규편성 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올해 추석은 어땠을까? [TV삼분지계]가 각각 한 방송사, 한 프로그램을 맡아 살펴봤다. 이 중 최소한 하나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정규로 만나게 될 것이다. 명절 파일럿으로 시작해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복면가왕’처럼 될 가능성이 높은 파일럿의 장점에 대한 칭찬과 더불어 고쳐야할 점에 대한 쓴소리도 함께 들어보자.



◆ 배려를 기반으로 한 대결, KBS <노래싸움 - 승부>

요 며칠 새 이번 추석 특집 파일럿 중 어느 프로그램이 생존하겠느냐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 그때마다 KBS 2TV <노래싸움 - 승부>를 꼽곤 했는데 그 이유가 시청률 1위라는 사실 때문은 아니다. 물론 방송사 입장에서야 시청률이 정규 편성 조건의 우선순위겠지만. 솔직히 처음엔 왜 하필 진부하게 또 듀엣 대결인가 싶어 심드렁한 시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SBS에는 <판타스틱 듀오>가 있고 MBC에는 <듀엣 가요제>에다가 <복면가왕>조차 1라운드는 듀엣 대결이 아닌가.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선입견을 버리고 오롯이 노래에 빠져들 수 있었던 건 <노래싸움 - 승부>가 배려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호전적인 제목과는 달리 음악감독 김형석-윤종신-정재형-윤도현-이상민부터 노래 대결에 나선 연예인들까지, 어떻게든 이기고 말겠다는 자세가 아닌 함께 웃고 공감하며 즐기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노래 실력이 다소 부족할지라도 국내 톱클래스 가수와 당당히 입을 맞출 수 있는 자리, 상대팀일지라도 기꺼이 진심 어린 격려와 성원의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였으니까.

또 하나 지금껏 자신의 직업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출연자들의 새로운 매력이 보였다는 것도 칭찬할 점이다. 히든 가수 알리와의 겨룸에 있어 결코 밀리지 않았던 개그맨 김희원도, 아침마다 <생방송 아침이 좋다>를 통해 만나온 한상헌 아나운서도 달리 다가왔고 문지애가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인 것도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면 MC 남궁민을 시작으로 적재적소에 배치한 안정된 인재 등용이 성공의 비결이지 싶다. 마지막으로 굳이 아쉬웠던 걸 얘기하자면 여러 세대가 어우러진 판정단이었으면, 명확한 판단 기준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으리라는 것. 꼼꼼히 보강해서 진일보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정석희 soyow59@daum.net



◆ SBS <씬스틸러>가 얼결에 포착한 여배우들의 고충

<씬스틸러>는 대본연기와 즉흥연기의 대결을 그린 드라마예능이다. 당초 이 포맷의 의도는 캐릭터 뚜렷하고 애드리브 연기에 능한 연기자를 섭외해 드라마와 예능의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이는 오광록, 황석정, 김정태, 박해미 같은 전문배우뿐 아니라 정준하, 김신영처럼 연기력 뛰어난 예능인의 캐스팅에도 잘 드러난다. 그런데 정작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묘미는 제작진이 의도치 않았을 지점에서 발생한다. 장르의 온갖 클리셰를 종합한 대본과 그 진부함 속에서도 열연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뜻밖에도 한국 상업장르물의 현주소에 대한 풍자효과가 발휘되기 때문이다.



가령 첫 코너 ‘개 같은 날의 오후’는 현재 한국영화계를 지배하는 전형적인 남성 중심 스릴러장르다. 부패재벌권력과 거래하는 비리형사로 출연한 김정태의 신들린 연기는 애드리브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능숙해서 오히려 그 장르의 전형성에 대한 정밀한 패러디처럼 보인다. 더 흥미로운 건 ‘여배우 둘’ 코너였다. 두 여배우가 로맨스 영화의 배역 한자리를 놓고 갈등하는 이 코미디 장르에서 꼰대 감독의 터무니없는 요구에도 최선을 다해 열연하는 황석정, 박해미의 모습은 은연 중 한국 여배우들의 척박한 현실을 절묘하게 반영한다.

“그래도 우리가 연기잔데 연기를 막할 수는 없잖아.” 촬영 막간에 잠시 배역의 옷을 벗고 허심탄회하게 주고받던 황석정과 박해미의 여배우로서 고충은 제작진 대본으로는 결코 담아내지 못했을 이 프로그램 최고의 신이었다. <씬스틸러>는 흥미로운 포맷, 새로운 배우의 발견 등 많은 잠재력을 지닌 프로그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규편성으로 돌아올 생각이라면 제작진의 카메라와 그 바깥의 괴리에 대해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김선영 herland@naver.com



◆ MBC <아이돌 요리왕> 아이돌이 아니라 요리사로 대접해주는 것의 두 얼굴

<아이돌 요리왕>은 “그럼 그렇지”로 시작해 “세상에 이렇게까지”로 끝나는 쇼였다. 지단과 수란 중 하나를 만들어 제출하라는 예선에서 우후죽순 탈락하는 아이돌 멤버들을 먼저 보여줄 때만 해도 어설픔을 귀여움으로 치환해 소비하는 흔한 아이돌 명절 프로그램 같았던 <아이돌 요리왕>은, 광희가 자로 잰 듯 만든 계란 지단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부터 갑자기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끌어올린다. 올리브 <한식대첩>과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MC인 김성주가 주는 기시감이나 오랜 시간 올리브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심사석을 지킨 김소희 셰프의 존재를 감안하더라도, <아이돌 요리왕>은 나름 훌륭하게 요리에 대한 진지함과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진지하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줘 연예인 평가단과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은 광희는, 아이돌이 아니라 온전히 요리하는 사람으로 경쟁하고 평가받는 지금의 포맷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 매력을 뽐낼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돌 요리왕>의 진지함은 정확히 그 지점에서 양날의 칼이 된다. 우리는 MBC 예능국이 명절 때마다 <아이돌 육상선수권 대회>를 편성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상자들이 속출했고 팬들의 항의를 사는 광경을 지켜봤다. 파일럿부터 어지간한 요리로는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와 버린 <아이돌 요리왕>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아이돌들이 불에 데이고 칼로 제 손을 썰 것인가를 생각하면 조금은 불안해진다. INX의 멤버 윈이 기름을 잔뜩 두른 달군 팬 위에 물을 부으려 드는 걸 보고도 말리지 않는 제작진에게서, 참가자의 안전보다 ‘짤방’으로 남겨져 인구에 회자될 명장면을 우선시 하는 욕망을 봤다고 하면 내가 너무 근심이 많은 건가.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KBS, 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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