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남녀’, 카톡 이모티콘처럼 친숙한 젊은 배우들의 생활연기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tvN 월화드라마 <혼술남녀>는 노량진 고시촌의 공시생과 학원 강사들의 삶을 배경으로 한 청춘드라마다. 그렇다고 <혼술남녀>가 팍팍한 현실을 얇게 회로 떠 날 것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은 아니다. 이 드라마는 영리하게도 발랄한 코믹함을 푸짐한 안주로 삼고 독한 현실을 한 잔의 쓴 술처럼 살짝 곁들인다.

특히 <혼술남녀>의 재미 중 하나는 젊은 배우들의 부담 없는 생활연기다. 그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서 무한 대사량에 치여 기름기 없이 너무 팍팍하게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 하석진이 특히 그렇다. 유명 한국사 강사 진정석을 연기하는 하석진은 <혼술남녀>에서 꽤 매력적인 나레이터이다. 이 배우가 이렇게 대사의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배우였나 신기할 정도다. 술에 대한 애정 없이는 묻어나오기 힘든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각 회차가 끝날 때마다 이 남자가 혼자 마시는 술과 술 마시는 감정에 대해 읊조리는 독백들은 이 발랄한 드라마를 달곰씁쓸하면서도 의미 있게 마무리해 준다.

나름 금수저인 9급공무원 준비생 기범을 연기하는 샤이니의 키 또한 드라마의 잔재미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대구 사투리를 ‘씨부리며’ 비슷한 또래의 공시생 친구들과 뒤섞이는 데 전혀 이질감이 없다. 셀프 머리 염색에만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개성연기에도 재능이 있다는 걸 이 드라마를 통해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혼술남녀> 웃음의 중심축은 여주인공 박하나를 연기하는 박하선에 있다. 진정석에 비해 스펙도 밀리고 가정형편 또한 어려운 학원강사 박하나는 <혼술남녀>의 노량진 고시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기도하다. 그녀는 가난 때문에 억척스럽게 살았지만 동시에 늘 남들 앞에 납작 엎드리고 살 수 밖에 없는 이 시대 청춘의 초상이다.



드라마는 이 박하나가 노량진 공시학원의 강사로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자잘한 사건들을 위주로 진행된다. 드라마는 박하나의 소심한 성격과 그 소심한 성격이 폭발하는 술주정, 그리고 그 때문에 벌어지는 슬프지만 코믹한 상황들을 보여준다. 진지하거나 어두운 드라마에서는 당최 힘을 못 쓰는 이 배우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처럼 어수룩하고 뻣뻣한 코믹함을 온몸으로 불사르며 연기하는 데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특히 <혼술남녀>에서 박하선이 연기하는 박하나는 종종 그 표정만으로 코믹연기에서 더 나아가 우리에게 친숙한 이모티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울상을 짓거나 좌절할 때 그녀는 카카오톡 프렌즈의 복숭아 어피치와 닮아 보인다.

사실 박하선만이 아니라 <혼술남녀>의 각각의 캐릭터들을 보노라면 우리에게 친숙한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알다시피 배우 하석진은 강아지상이나 고양이상이 아닌 악어상 미남 배우다. 그리고 카카오톡에는 악어 캐릭터인 콘이 있다. 더구나 강사 진정석이 박하나의 가능성을 보고 그녀를 종합반에 넣어 지켜보는 것처럼, 카카오톡의 콘은 복숭아를 통해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보려고 어피치를 따라다니는 희한한 캐릭터다. 특히 회전의자에 앉은 콘의 이모티콘을 보노라면, 학원 교무실 회전의자에 앉아 ‘퀄리티’ 운운하며 다른 학원강사를 빈정거리는 진정석의 표정이 그대로 떠오를 정도다.

박하나의 학원 동료인 황진이(황우슬혜)에겐 카카오톡 단무지의 느낌이 있다. <혼술남녀>에서 그녀는 학생들에게 섹시한 외모로 인기를 끄는 학원강사로 등장한다. 하지만 황우슬혜가 연기하는 황진이를 보노라면 섹시함보다는 잔머리를 굴려도 제대로 굴리지 못하는 이 캐릭터가 지닌 맹탕의 해맑은 코믹함에 더 웃음 짓게 된다.

반면 겉으로 툴툴거려도 마음씨 고운 기범은 갑자기 한 번씩 폭발할 때가 있다. 이런 기범에게서는 카카오톡의 하얀 오리 튜브가 초록 오리로 변하며 불을 뿜는 이모티콘과 닮아 보인다.

한편 기범과 짝을 이루며 돌아다니는 공시생 친구들 공명(공명)과 동영(동영)에게서는 그 외모와 분위기 때문인지 새침한 고양이 네오와 잡종견 프로도의 잔상이 스쳐갈 때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이모티콘의 귀여움처럼 <혼술남녀>는 소소한 귀여움을 과장하고 요약해서 보여줄 줄 아는 드라마인 건 틀림없다. 그리고 딱 그 일상의 귀여움에 가볍게 취할 만큼 기분 좋게 웃겨 주는 것이 바로 <혼술남녀>가 지닌 힘이다. 알고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무거운 일상이란 독주가 우리의 속을 뒤집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만 딱 알맞게 몇 잔.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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