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비슷비슷한 욕설 난무에 사라진 주제의식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김성수 감독의 신작 영화 <아수라>의 처음 10분을 보고 “아, 이건 양아치들의 이빨까기 같은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아치들의 이빨까기’ 자체는 욕이 아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폭력적인 밑바닥 세계 사람들은 컬러풀하고 난폭한 어휘로 특징되는 자기들만의 표현 체계를 갖고 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만날 주먹과 칼을 휘두르며 싸울 수는 없으니 그 전에 상황을 정리할 언어의 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언어는 빅토르 위고에서부터 대실 해밋에 이르는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보다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다른 장르도 있는데 그건 여러분이 나보다 더 잘 알 것이고.

하지만 ‘양아치들의 이빨까기’를 소재로 삼는 것과 ‘양아치들의 이빨까기’ 같은 작품을 쓰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하세계의 컴컴한 은어가 난무하긴 하지만 <레미제라블>이나 <사형수 최후의 날>은 ‘양아치들의 이빨까기’가 아니다. 빅토르 위고에게 그건 연구대상과 표현 확장의 도구일 뿐이고 그가 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다.

<아수라> 같은 영화들은 ‘양아치들의 이빨까기’와 목적을 같이 한다. ‘양아치들 이빨까기’의 목표는 무엇인가? 내가 너보다 센 놈일 뿐만 아니라 이 동네에서 제일 센 놈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리고 <아수라>는 진심으로 센 놈이 되고 싶어한다.

물론 <아수라>도 하고 싶은 말과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을 것이다. 폭력적인 한국 사회의 고발이라거나 그 비슷한 것. <아수라>의 세계는 사실적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형사에서부터 시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깡패 같다고 비판했는데, 그건 비판이 못 되는 것 같다. 원래 대한민국 남성 위주 시스템 속에서 순응하고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태도와 언어 모두가 깡패 같기 때문이다. 수위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주제나 사실성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쎈 놈’이 되겠다는 목표 밑에서 빛을 잃는다. ‘제일 쎈 놈'’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의 단점은 모든 걸 단순화한다는 것이다. 이야기, 주제, 표현방식 모두 센 놈이 되겠다는 욕구 아래 일원화되고 밋밋해진다. 오로지 장르 표현의 강도를 높이는 것만이 중요해진다.

비슷하지만 더 선명한 예로 호러 영화를 들 수 있다. <할로윈>이나 <13일의 금요일>과 같은 원조 슬래셔 영화들은 지금 보면 온화해 보인다. 그 동안 ‘센 영화’를 추구하느라 폭력과 표현의 강도가 엄청나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그 장르가 예술적으로 발전했다는 뜻이 될까? 어림없는 소리다.



<아수라>가 바로 ‘동네에서 가장 센 놈’이 되겠다는 욕망의 결과물이다. 모두가 깡패 같은 건 이해한다. 하지만 모두가 비슷비슷한 깡패 같다는 건 문제다. 말이 험한 것 역시 이해한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서너 개의 부사를 끝도 없이 돌려쓰면서 비슷비슷한 대사를 으르렁거리기만 한다면 사정은 다르다. 폭력적인 한국사회를 비판한다면서 결과물이 습관적인 ‘싸나이의 멋’을 찾는 데에 집착한다면 그 주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주제도, 내용도, 캐릭터도 없어지고 센 척하며 우쭐거리는 양아치의 허세만 남는 것이다.

더 아찔한 건 이런 종류의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며 대기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미리 하품 좀 해도 될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아수라>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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