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미’ 박보검·김유정 매력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엔터미디어=정덕현] KBS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힘이 박보검과 김유정이라는 두 배우에서 비롯된다는 건 누구나 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왕세자 이영(박보검)과 남장여자 내시 홍라온(김유정)이라는 캐릭터는 이 두 배우의 아우라가 덧입혀지지 않았다면 이만큼 몰입도를 높이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에서 한 발 물러나 왕세자와 남장여자 내시의 사랑이야기를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금세 드러난다. 제아무리 판타지에 장르 사극이라고 해도 왕세자가 남장여자 내시와 사랑에 빠지고, 그 내시를 위해 왕세자가 ‘뭐든 다 해줄 것’이라 말하며, 나아가 내시가 왕세자를 등 뒤에서 껴안는 그런 장면들은 몰입하기가 어려운 비현실적 상황들이다.

그런데 이런 비현실적 상황들을 그러려니 하고 바라보게 만드는 건 박보검과 김유정, 이 두 배우의 독특한 연기 이미지 덕분이다. 아이 같은 외모지만 어른스러운 내면을 갖춘 배우들. 어찌 보면 이들이 입은 왕세자 복장이나 내시 복장은 마치 아이가 입은 것처럼 그들에게 잘 맞지 않아 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순수함으로 느껴짐으로써 이 비현실적 상황들이 용인되게 해주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의 선은 있다. 이 사극의 힘이 두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이고, 왕세자와 내시라는 관계를 넘어 왕권을 유지해야 하는 이와 역적의 딸이라는 관계의 불안함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그 불안감을 제시하고 그만큼 애틋해지는 두 사람의 멜로만 반복해서 보여주는 건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르미 그린 달빛>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주제가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라고 해도 그 과정들에는 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구르미 그린 달빛>은 아주 천천히 아끼고 아껴 곶감을 하나씩 꺼내 먹듯 이야기를 전개한다. 남장여자 코드를 가지고 몇 회를 보내고, 이제는 홍경래의 딸이라는 홍라온의 출생의 비밀을 갖고 몇 회를 보낸다. 이미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지만 결국은 떠날 수밖에 없는 홍라온의 이야기 하나로 한 회를 채운다.

물론 드라마를 보는 포인트가 꼭 다채로운 이야기일 필요는 없을 게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이미 박보검이나 김유정처럼 그 어떤 이야기를 전개하더라도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매력을 가진 연기자들을 포진시켰다면 그들의 어깨 위에 모든 짐을 얹어 무겁게 만들기보다는 그들이 더 훨훨 뛰어다닐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펼쳐 놓는 게 그들을 위해서도 또 시청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구르미 그린 달빛>은 시청률도 높고 화제성도 최고지만 그것이 온전히 작품의 힘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신 그 힘은 박보검과 김유정이라는 배우에게서 나온다. 따라서 이 작품은 박보검과 김유정의 어깨가 너무 무겁다. 물론 이들의 매력을 충분히 드러내준 것은 이 작품의 성과일 수 있을 게다. 하지만 그래도 드라마가 고유의 가치를 가지려면 캐스팅의 힘만이 아니라 그 자체의 이야기가 가진 매력 또한 충분히 느끼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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