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분기 신규 드라마들, 무슨 재미로 보십니까?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솔직히 말하자. 칼럼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다룰지 세 평론가가 매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지만, 이렇게 원만하게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는 주도 있다. 이럴 때는 보통 두 가지 경우인데, 첫째는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는 경우요 둘째는 한 가지만 다루기엔 언급해야 할 작품이 제법 많은 경우다. 이번 주는 다행히 후자다. 2016년 4/4분기 방영 중인 지상파 채널의 신규 드라마들을 놓고 세 평론가가 각자의 선택을 설명한다. 가장 뜨거운 화제작 KBS <공항 가는 길>은 김선영 평론가가, 서인국과 남지현 주연의 코미디 MBC <쇼핑왕 루이>는 이승한 평론가가, 최지우의 ‘새로운 초석’이 될 MBC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정석희 평론가가 소개하기로 했다.



◆ <캐리어를 끄는 여자>, 좋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좋은 사람들

최지우는 지난 해 가을 tvN <두 번째 스무 살>의 ‘하노라’ 역으로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리고 이번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차금주’는 새로운 초석이 될 전망이다. 그만큼 ‘차금주’가 그의 몸에 딱 맞는 인물이라는 얘기. 맞춤 캐릭터를 얻은 건 다른 출연자들도 마찬가지다. 주진모는 JTBC <사랑하는 은동아>의 순애보 연기에 이어 ‘함복거’라는 속을 알 수 없는 나쁜 남자를 연기하고 있고, 전혜빈도 tvN <또 오해영>의 ‘예쁜 오해영’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복잡미묘한 내면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열등감과 자존감이 뒤엉킨, 딱하게도 늘 수가 읽히는 여자.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박혜주’라는 인물에 어찌나 잘 맞는지.



가장 주목이 되는 건 변호사 ‘마석우’ 역의 이준이다. 사실 그간 연차 어린 연기자의 변호사 역할 도전에 반대를 해온 입장인데 이번 이준의 경우는 괜한 우려였지 뭔가. 남편을 살해한 가정 폭력 피해자가 그 앞에서도 솔직하지 못하자 ‘믿는 만큼 변호할 수 있고 믿어야 변호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갈등하는 마 변호사. 그리고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실을 알게 됐을 때에도 피고인의 이익에 우선해야 한다’며 변호사의 윤리를 들어 맞서는 사무장 차금주. 그러나 ‘남편으로부터 도망치는 이성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에게 이번 판례가 또 다른 족쇄가 되지 않게 해달라’는 진솔한 변론이 배심원단의 가슴을 울려 의뢰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얻어내고 차금주는 그의 순수함을 높이 사 함께 일하길 바라게 된다.

마 변호사가 결국 속물의 전형인 로펌 골든트리에 합류하게 될까? 그래서 닳고 닳은 구지현(진경) 대표 변호사와 사사건건 부딪히게 될까? 차금주는 함복거(주진모) K-fact 대표의 요구대로 또 다시 사법고시에 도전하게 될까? 궁금한 것들이 참 많다. 하지만 차금주와 마 변호사가 지금처럼 그냥 그대로 지낸들 어떠랴. 지금도 충분히 매력적인, 좋은 사람들인 것을. <캐리어를 끄는 여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좋은 드라마다.

정석희 soyow59@daum.net



◆ <쇼핑왕 루이>, 대놓고 만화이기를 자처한 작품의 영악한 신선함

클리셰는 남발할수록 식상해지지만, 아예 작정하고 클리셰로만 채운 작품은 역설적으로 키치적인 신선함을 획득한다. 자신을 위해 선뜻 돈벌레를 손으로 잡아 창 밖으로 쫓아 준 복실(남지현)이, 기억상실 철부지 청년 루이(서인국)의 눈에는 천사처럼 보인다. 단순히 비유가 아니다. 배경음악으로는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가 깔리고, 복실의 머릿결은 강풍기의 힘을 빌어 꿈결처럼 흩날리고, 조명은 한껏 강조되어 복실의 머리 뒤에 후광을 만들어준다.



<쇼핑왕 루이>는 최소한의 개연성을 망설임 없이 벗어 던진 채 과장과 농담으로 가득 찬 만화적 시공간을 지향하고, 덕분에 서민적 삶을 처음 접하고 매료되는 재벌 3세, 기업의 후계구도를 놓고 벌어지는 암투, 해리성 기억상실, 갓 상경해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자랑하는 강원도 산골 처녀 따위의 뻔하디 뻔한 클리셰를 다 긁어와서 뻔뻔스레 한 그릇에 비벼내는 스토리 전개를 밀어 붙일 수 있게 됐다. 어차피 대놓고 동화고 대놓고 만화인데, 여기서 상투성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겠는가!

명품의 가치를 귀신 같이 알아보는 것을 자부심으로 삼던 ‘쇼핑왕’ 루이가, 우여곡절을 거치며 산골 처녀 복실에게서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는 법을 익힌다는 내용은 2016년에 나온 드라마라고 믿기엔 지나치게 순진하다. 하지만 애초에 대놓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표방하기에 이 대책 없이 낙관적이고 교훈적인 주제의식도 납득이 된다. 능청스러운 연기가 물이 오른 서인국과 시골 처녀 연기에 도가 튼 남지현의 호흡은 이 뻔하고 허무맹랑한 세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방송콘텐츠진흥재단 드라마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라더니, 그 솜씨가 과연 영악하다.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공항 가는 길>이 ‘불륜’을 사랑으로 설득하는 법

‘온 몸이 타들어갈 것 같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공항 가는 길> 3회 엔딩신에서 수아(김하늘)가 독한 위스키를 마신 뒤 속으로 토해내는 대사는 너무도 절묘하게 그녀의 상황을 압축한다. 베테랑 승무원으로서 밤낮 없는 업무 스케줄과 고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와중에도 육아와 가사를 모두 챙겨야 하는 강행군이 벌써 12년째. 상사처럼 명령만 내릴 뿐 공감 능력은 전혀 없는 남편, 워킹맘 직원들에게 은근히 퇴사 압력을 주는 회사 관행까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 속에서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 수아의 일상은 폭발 직전의 위험수위에 이른다.

따뜻한 위로로 다가오는 도우(이상윤)와의 관계가 단지 몇 번의 만남만으로도 수아의 삶을 온통 뒤흔드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 강렬한 감정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다. “어떤 식으로건 관계를 정의하지 말자”는 서로의 다짐과는 상관없이, 그들의 사이는 이미 ‘불륜’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공항 가는 길>의 미덕은 불륜이라는 자극적 소재를 지극히 섬세한 심리묘사로 풀어낸다는 데 있다. 불륜드라마라는 외피에서 흔히 예상되는 극적인 사건은 별로 없다. 남편 진석(신성록)은 후배 직원들과 유사연애관계를 오가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명확한 선을 그으며 ‘배신의 드라마’를 피해가고, 수아와 도우의 관계는 아이의 안부를 묻는 소소한 일상적 문자교환에서부터 시작된다. 수아의 내레이션처럼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조용하다.

극적인 사건은 모두 내면에서 일어난다. 승무원 제복에 감싸인 단아한 외모처럼 빈틈 없어 보이는 일상 안에 매 순간 격렬하게 요동치는 속마음이 숨겨져 있다. 그동안 많은 드라마들이 이 내면의 갈등보다 외적인 사건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해왔다. <공항 가는 길>은 기존의 드라마들이 꾸준히 축소해왔던 인간의 내면에 현미경을 들이댐으로써, 어떻게 해도 ‘불륜’으로밖에 치부될 수 없는 이들의 감정을 놀랍도록 풍부하게 묘사해 끝내 설득시킨다. 이것은 불륜드라마 이전에 너무도 아름다운 멜로드라마다.

김선영 herland@naver.com

[사진=MBC, 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