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 해프닝서 드러난 선동의 시대와 자기검열의 공포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6일 오전 실시간 검색어를 슬쩍 봤을 땐 김제동이 사드 발언 2탄 정도는 한 줄 알았다. 오후에 조금 여유가 생겨 살펴보니 새누리당 백승주 의원이 진통 끝에 정상화된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난해 7월 JTBC 예능 프로그램 <김제동의 톡투유 - 걱정말아요 그대>의 한 장면을 문제 삼으면서 시작된 촌극이었다. 요즘 새로 시작한 예능들이 대부분 새롭지 않거나 아이돌 콘텐츠여서 무료한 참에 이번 국회방송 영상은 꽤 신선했다.

여전히 냉전 시대가 진행 중인 현실, 강대강으로 치닫는 남북 관계, 북핵 위협이 도사린 안보 현실에서 국방위 소속 새누리당의 한 국회의원이 국방부 장관에게 매우 준엄하게 질의한 내용은 김제동이 작년 여름 자신이 진행하는 한 TV예능에서 말했던 에피소드의 진위여부였다. 문제를 삼는 측에서는 이 발언이 군 장성을 희롱하고 군을 조롱해 신뢰와 명예에 손상을 입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니 이미지 실추를 위해 지어낸 에피소드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즉 구체적으로 1990년대 복무한 한 방위병이 영창을 실제로 갔다 왔는지 파악해 마지막 국방위 종합감사 때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김제동을 일반증인으로 신청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일종의 돌발 발언에 장내는 진도 5.6 이상으로 흔들리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 장면이 만약 정말 예능이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예측불가의 상황과 전개마저 리얼리티가 생명인 오늘날 예능 흐름에도 잘 부합한 진정한 하이코미디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2016년 오늘날 우리 국회에서 벌어진 현실이다. 김제동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시작해 세월호, 사드 문제 등 보수 정권에 대한 문제제기와 사회적 발언과 행동을 소신 있게 해온 유일한 예능인이다. 그런 그의 이름을 국감에 등장한 것은 최근 SBS에서 모처럼 나온 히트작 <미운우리새끼>에서 의문의 하차를 한 사실 등등 최근 행보와 결부해봤을 때 단지 우연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특정한 의심을 해볼 만한 추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이쯤에서 환기를 한번 하자. 이 글은 예능 칼럼이다. 김제동의 정치 성향이나 국감을 다루기에 적합한 자리가 아니다. 문제시하는 건 김제동에게 쏟아진 관심이 매우 가혹하다는 데 있다. 철저히 시청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1년 전에 했던 이 정도 발언에 국가차원의 권력이 발동되는 것은 우리 방송에서 다룰 수 있는 폭, 그러니까 다양성을 가로막고 일상과 더욱 가까워지려는 오늘날 예능 및 방송 문화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일이다. 시청자, 대중의 판단 능력, 자정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다. 즉, 방송을 즐기는 오늘날 대중의 상식과 수준에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방송뿐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에서 정치적 발언은 고사하고 개인의 견해를 밝히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편이다. 그러니 대중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방송과 방송인들에게는 마치 기름장어나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것처럼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철저히 감추고 잘 피해가는 것이 장려되는 덕목이었다.

코미디는 현실의 맥락을 비틀 수 있을 때 의미가 깃든 웃음이 된다. 영화 홍보차 방한한 영국의 코미디 배우 사이먼 페그는 <비정상회담>에 들어서자마자 시작한 블랙시트 코미디를 끝까지 유지했고, 최근 잠시 연기 활동을 쉬고 싶다고 선언한 할리우드의 당찬 10대 배우 클레이 모레츠는 tvN의 <문제적 남자>에 출연해 힐러리를 지지하는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역만리나 떨어진 우리나라에 와서도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떳떳하게 밝히거나 웃음으로 희화화하는데 우리 방송에서는 이런 장면을 볼 수가 없다.

매주 각 사회의 이슈,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비정상회담>에서는 정작 우리 사회의 이슈나 국내 정치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 정치 풍자를 시도했던 tvN [SNL코리아]시리즈는 총수와 함께 관련 코드가 사라졌다. 그리고 유일하게 정치적 견해를 밝혔던 예능인은 국회에 출석할지도 모를 상황에 놓였다.



만약 정말 김제동의 에피소드가 군 명예를 그렇게 심각하게 실추했을까. 비공개 단식 등의 진통을 겪고 시작한 국감에서 빙산만한 방산비리와 각종 사건사고, 그리고 정부의 강경 대북기조 속에 안보 문제 같은 사안들을 제쳐두고 심각하게 질의할 이야기인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군 이미지를 너무 포장한 나머지 반감을 산 국방부 지원 하에 제작되는 <진짜사나이>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하며 방송, 혹은 예능에서 나타나는 군 신뢰도와 이미지 하락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어야 했다.

할 말을 못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 자체가 문제가 되어선 안 된다. 투표권을 가진 국민이 정당 활동을 하는 것도 당연한데 국민의 한 사람인 방송인이 예외여야 할 이유가 없다. 물론, 정치적 성향이나 의견이 대립하는 대중들도 있을 수 있으니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원래 민주사회 국가에서 사는 방식이다. 연예인이 인형도 아니고 우리 사회 구성원을 넘어선 별개의 존재도 아니다. 요즘 가장 중시되는 덕목인 공감은 오늘날을 함께 살아간다는 생활 감각을 교감하는 데서 나타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불편할까봐 싫어할까봐 금기를 만들고 피해가고 모른척하면 사회의 발전은 더디다. 그런 방송은 재미가 없다. 점점 고립되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그 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우리는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민주 국가임에도 정치와 사회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역시 불편한 일이라는 학습을 또 한 번 하게 됐다. 방송은 다시 한 번 몸을 사리게 됐고, 방송인들은 머릿속의 일반 필터를 헤파필터 수준으로 상향 교체하게 된다. 이런 배움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교훈일까? 미국 [SNL]팀에 제보하면 쾌재를 부를 만한 상황극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좌절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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