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남녀’ 하석진·박하나 못지않게 주목받는 공명·기범·채연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월화드라마 <혼술남녀>에는 노량진 학원가라는 공간을 두고 두 부류의 인물군들이 등장한다. 그 하나는 노량진 학원의 강사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학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이다. 물론 이 드라마의 주요 스토리는 스타강사인 진정석(하석진)과 열정 넘치지만 현실의 높은 벽을 느끼는 풋내기 강사 박하나(박하선)의 일과 사랑으로 얽히는 로맨틱 코미디다. 하지만 강사들의 이야기에 조금씩 양념처럼 들어가던 공시생들의 이야기에 점점 마음이 끌린다. 이 청춘들 왜 이리 짠한 걸까.

이 공시생들의 이야기에는 진정석의 동생인 공명(공명)과 그의 절친인 기범(김기범), 동영(김동영)이 중심에 서 있다. 노량진 학원가의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둘도 없는 친구들로서 공부보다는 같이 노는 데 시간을 더 보내고 있었지만 한 사람씩 저 마다의 이유로 현실을 인식하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동영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공부를 해야겠다 결심하고 그러기 위해서 친구들인 공명, 기범을 멀리한다. 공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 박하나가 시험에 합격하면 자신과 사귈 것을 고려해보겠다는 말에 공부를 시작한다. 기범은 자신만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가족 때문에 공부를 하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공부를 위해 우정을 포기하는 상황이지만 그들을 공부하게 만든 이들이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건 이 청춘들이 얼마나 순진하고 순수한가를 잘 말해준다. 미래의 거창한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참 친구들을 만나고 연인을 만나 사랑할 때지만 당장의 현실을 위해 모든 걸 접어야 하는 청춘.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들 나름대로 사랑하고 아파하며 질투하는 그들의 모습은 짠하면서도 풋풋하다.



공명이 이 학원에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채연(정채연)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그녀를 스승으로 모시자, 예전부터 그녀를 좋아했지만 거부당했던 기범은 괜스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되도록 빨리 시험에 합격해 이 노량진을 벗어나려는 채연은 사방에 벽을 세워둔 철벽녀. 그런 그녀지만 공명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조금씩 그에게 마음이 움직인다. 나타날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그만 만나겠다고 메시지를 남긴 그녀는 공명이 사실 길거리에서 걸어 다니면서도 암기를 하라고 했던 자신의 말 때문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는 걸 알고는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쏟아낸다.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채연이 그 무표정한 얼굴 이면의 가녀린 심성을 드러내는 이 장면은 공시생들의 짠할 수밖에 없는 청춘의 민낯을 드러낸다. 같이 놀다가 이젠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 잘 만나주지 않는 친구에 대해 ‘배신자’라며 툭탁대지만 이 청춘들은 그들이 다치거나 아픈 일을 당했을 때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그들의 순수한 진면목이지만 그들은 공시생이라는 현실의 가면을 쓴 채 어떻게든 공부를 통해 이 노량진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려 한다.



그런데 그렇게 벗어난다고 해도 그들에게 지금과는 다른 장밋빛 미래는 존재하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에둘러 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원의 강사들을 통해 그려진다. 잘 나가는 스타 강사 진정석은 혼자 ‘퀄리티 있는’ 삶을 구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쓰레기’라고 부른다. 어떻게 현실에 적응해 잘 살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남기게 만드는 인물이다.

박하나는 가정형편 때문에 알바로 학원 강사를 하다가 어찌 어찌 해 노량진까지 흘러 들어온 인물이다. 그녀는 ‘노그래’라고 불릴 정도로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황진이(황우슬혜)는 학원 강사지만 남자친구와 혼전임신을 해서라도 결혼해 살아갈 꿈을 꾸는 인물. 그녀에게 일에 있어서의 성취감 같은 걸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민진웅(민진웅)은 연예인 패러디를 하며 학원생들에게 웃음을 주는 인물이지만 정작 자신은 이혼하고 홀로 노모를 모시며 살아온 웃기 힘든 삶을 살아왔다.

공시생들은 노량진을 벗어나면 뭔가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지만 그 곳을 벗어나 취업을 하게 된다고 해도 그들 앞에는 또 다른 현실이 놓여있다. 그래서 이런 전망을 이미 보여주고 있는 이 드라마 속에서 공시생들의 노력이란 때론 허망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어쩌면 훗날 저 마다의 이유로 혼술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달라질 것이라 여겼던 미래가 사실은 그 현실의 연장이라는 걸 알게 되고는.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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