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일기’, 감동만큼이나 재미와 상상력도 보강되었으면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지난 2월 설 특집으로 파일럿이 방영된 이후, MBC <미래일기>는 여러 곳에서 언급이 되곤 했다. 계속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라는 정규 편성에 대한 희망부터, 특집으로 한 차례 방영하기엔 좋으나 정규 편성을 하기에는 보완해야 할 점이 너무 많은 프로그램이라는 지적까지. 8개월 만에 정규 편성으로 돌아온 <미래일기>의 두 번째 시간 여행을 앞두고,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들이 첫 시간 여행을 평가해봤다. 파일럿에서 지적된 문제들은 잘 해결이 됐을까?



◆ 감동만큼이나 웃음도 공존했으면

<미래일기>는 노인이 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한 출연자들의 심경에서 출발한다. 박미선은 “잘 늙었네, 미국 할머니 같아.” 라는 긍정적인 반응인 반면 김동현은 걱정했던 대로 이마가 많이 벗어졌다며 낙담을 했다. 그걸 보는 대다수가 한번쯤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어떤 노인이 될까? 나도 저렇게 굵은 주름이 생길까? 세월을 비껴갈 자가 없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가져온 변화를 선선히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 설마 하며 반신반의들을 하겠지. 그러나 불과 몇 년 전의 사진을 꺼내보라.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얼굴인 것을.



하지만 모습은 달라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어머니는 어머니고 아들은 아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상민의 어머니는 노인으로 분장한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아들에게 혹시라도 누가 될까 봐 그 노인이 이상민의 험담을 늘어놓으며 괜한 시비를 걸어오자 꾹꾹 눌러 참아냈다. 싫은 내색조차 않고자 애쓰는 인내 신공이 감탄스러웠는데 ‘참아야 하느니라’를 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느라 문제의 노인이 아들이란 사실을 눈치 챌 겨를이 없으셨지 싶었다. 아들 이상민이 풍파를 겪는 동안 뒤에서 숨죽여 아파했을 어머니의 절실함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솔직히 파일럿 때만 해도 <미래일기>가 출연자마다 엇비슷하리라 예상되는 감동을 어떻게 제각기 다르게 엮어갈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2회까지 진행된 현재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 다행이다. 다만 한 가지, 모름지기 예능 프로그램은 웃음과 감동이 공존했을 때 좋은 반응을 얻는 법. 긴 행보를 위해서는 웃음 보강이 큰 숙제다.

정석희 soyow59@daum.net



◆ 미래가 없는 시대의 미래일기

<미래일기>의 시제는 미래라기보다 과거다. 미래로 간 시간여행자들은 그 시간의 삶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옛날을 돌아본다. 파일럿 방영 당시에도 에피소드마다 추억의 사진이 공통적으로 등장하더니, 정규 1,2회 방송에서도 출연자의 전성기 시절 영상 모음집이 자주 등장한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미리 살아봄으로써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려는 의도라기에는 이 프로그램의 주된 정서가 지나치게 복고에 가깝다. 60세가 된 이상민이 자신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아간 모습에서 파일럿 방송의 80세 안정환이 동네 초등학교를 찾았던 장면이 겹쳐지는 것은 단적인 사례다. <미래일기>가 상상하는 미래적 풍경이란 그렇게나 좁은 추억 속의 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정규방송에 와서 한층 강해졌다. 애초 파일럿 방송이 호평 받았던 것은 독거노인 안정환과 인공로봇 귀요미의 대화로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족형태를 제시하거나 노년이 된 강성연이 남편과 함께 마지막 영정사진을 찍듯 기념촬영을 하며 ‘웰다잉’의 화두를 성찰하게 했던 장면들처럼 복고코드 가운데에서도 미래의 삶을 상상케 만드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규방송에 와서는 ‘생의 마지막 하루’를 남긴 이상민과 엄마와의 만남, 김동현 모자의 생일 기념 데이트 등 감동적인 가족코드가 더 강해지면서 복고적 성격도 더불어 배가되었다. 유일하게 미래시제처럼 느껴진 에피소드는 77세의 독거노인 박미선이 복지관 당구장에서 평균 연령 80세 이상 여성커뮤니티의 ‘유쾌한 실버라이프’에 동참할 때였다. <미래일기>가 기획의도대로 정말 ‘미래지향적 프로젝트’가 되려면, 당구장 화면을 지켜보던 안정환마저 ‘태어나서 저런 장면 처음 본다’고 감탄할 정도로 참신하고 진화한 풍경들을 더 자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김선영 herland@naver.com



◆ 미래를 오늘을 돌아볼 도구로만 사용하지는 말기를

나이 먹는다는 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느리고 무거워진 몸은 점점 말을 듣지 않고, 얼굴 위에 앉은 주름은 세월의 축적이라기보단 찬란했던 젊음의 부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나이 든 채로 살아가야 하는 세월도 늘어나는 법, 나이 먹는 것을 안타깝고 불행한 일처럼 여기는 인식이 이대로 계속 지속된다면 그만큼 더 많은 인구가 자신을 불행하다 여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미래일기>가 파일럿 때 등장한 여행자들이 빛나 보였던 순간들은 초로의 안정환이 굴하지 않고 초등학생들과 축구를 즐기는 장면이나 늙어서도 자신이 입고 싶은 옷차림으로 살겠다 외치던 제시처럼 ‘나이 먹어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늠하고 시도해보는 장면들이었다. 나이 먹는 것을 꼭 형벌처럼 여길 필요는 없음을, 노년의 삶에도 즐거운 순간들이 많을 수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장면들 말이다.



그러나 정규편성 된 <미래일기>는 내일의 전망을 오늘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하는데 더 집중한다. 김동현과 그의 어머니는 살아온 날들과 오늘의 모습을 돌아보는 데 하루를 보냈다. 그나마 근사하게 나이 먹은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고 당구와 차차차를 배우며 노년의 가능성들을 타진하던 박미선은, 이봉원을 만난 뒤 부부가 살아온 세월을 반추하기 시작했다. 생애 마지막 날이라는 콘셉트로 하루 종일 자신의 인생을 회고조로 돌아보는데 집중한 이상민의 시간여행은 더더욱 과거지향적이었는데, 마지막에 늦둥이 아버지로의 일상을 미리 체험해 보는 장면이 없었다면 하루 종일 뻔한 그림만 나올 뻔 했다. 점차 노인 인구는 증가하고 기대 수명은 늘어나는 시대에, 현재의 소중함과 과거의 아름다움을 되돌아 보는 도구로만 소비하기엔 미래는 너무 귀하지 않은가?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보다 더 다양하고 쾌활한 상상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