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남녀’가 비극을 희극으로 만드는 방식

[엔터미디어=정덕현] 짠한데 웃기다? 아마도 최근의 트렌드는 바로 이런 희비극이 아닐까.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이화신(조정석)이 그 대표적인 희비극의 주인공이다. 그가 처한 상황은 실로 짠하다. 그런데 그렇게 짠한 상황에서 그가 하는 지질한 행동들을 보면 웃음이 터진다. tvN 월화드라마 <혼술남녀>의 황진이(황우슬혜)라는 인물이 그렇다.

그녀는 노량진 학원가에서 강사로 일하는 것에 그다지 큰 꿈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대신 괜찮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그녀의 꿈이지만, 그 남자가 자기 마음 같지가 않다. 덜컥 임신 먼저 하고 결혼하는 것까지 꿈꾸는 그녀지만 번번이 그녀의 꿈은 좌절된다. 그것은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 학원에 박하나(박하선)을 소개한 건 그녀지만, 그녀는 박하나에게 끌리는 진정석(하석진) 때문에 어쩌다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 인물이 됐다.

하도 남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없기에 메시지로 홧김에 헤어지자고 했더니 덜컥 날아온 것이 동그라미 두 개란다. 결국 이별통보를 받은 그녀는 학원장인 김원해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그것 때문에 자기가 차였나보라며 눈물을 흘린다. 학원생들의 평가서에서 김원해가 “발음이 열라 구리다”라는 의견을 읽어주자 ‘발음이 구려서’ “남친한테 까였나 봐요”라며 울고, 새로 산 신발에 아껴쓰라며 왜 그리 돈을 펑펑 쓰냐고 김원해가 말하자 “돈을 펑펑 써서 까였나 봐요”라며 울음을 터트린다.

그녀는 이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클럽에 놀러가고 거기서 그날 밤 남자친구를 사귀겠다고 나서지만 역시 굴욕을 당한다. 예전 학원 수강생들이 알아보자 조신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고, 박하나가 걱정돼 나타난 진정석을 유혹해보려 하지만 “정신 나갔냐”는 대꾸를 듣고는 창피해 도망치듯 클럽을 빠져나간다. 짠한 상황이지만 한 발 물러나 이걸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웃음이 빵빵 터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연예인 성대모사를 하는 학원강사인 민진웅은 이번엔 얼굴에 스타킹을 쓰고 드라마 [W]에서 얼굴을 빼앗겨버린 오성무(김의성)를 흉내낸다. 학원장 김원해는 어머니 상 당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냐고 지청구를 날리지만 민진웅을 이렇게 해서라도 빨리 벗어나려 한다는 뜻을 밝힌다.

그저 웃기는 캐릭터로만 보였던 민진웅이 실제로는 아내와 이혼하고 치매를 앓는 어머니의 병수발을 하루도 빼지 않고 해왔던 사실은 시청자들을 짠하게 만들었다. 또한 어딘지 코믹한 캐릭터로만 보였던 학원장 김원해가 민진웅 어머니의 상가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새우는 대목은 의외의 담담한 감동을 선사했다.



짠한 캐릭터로 웃음을 주고, 웃기는 캐릭터가 짠해지는 이 방식은 <혼술남녀>라는 드라마가 희비극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누구 하나 짠하지 않은 인물이 없다. 그것은 모든 걸 다 갖춘 듯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혼술하는 것이 즐겁다고 계속 주장하는 진정석도 마찬가지다. 어찌 혼술이 늘 즐겁기만 하겠는가. 그건 어쩌면 우리가 얼마나 외로운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혼술남녀>만의 희비극을 통한 메시지가 아닐까.

사는 게 너무나 힘들다 보니 그 비극을 공감대로 끌어와 심지어 웃음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은 지금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매료시키고 있다. 웃고 싶으나 현실은 웃을 수 없고, 그렇다고 현실의 고통을 느끼며 눈물 흘리기는 싫은 그 감정이 이 <혼술남녀>라는 희비극에는 녹아들어 있다. 비극의 공감도 웃음으로 털어내고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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