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지니어스’의 제작진이 만든 더 악마 같은 쇼, ‘소사이어티 게임’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드라마 분야에서 이미 1년 내내 10주년 기념을 거창하게 하고 있던 tvN이, 어쩐 일로 주 전공인 예능 분야에서는 잠잠하다 싶었다. <더 지니어스>의 정종연 PD가 제작한 <소사이어티 게임>은 역대 tvN이 제작한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거대한 규모를 과시한다. 초거대 원형 세트에서 스물 두 명의 참가자들이 2주간 합숙하며 민주정 구조인 높동과 독재정 구조인 마동으로 나누어 체제 경쟁을 한다는 내용의 <소사이어티 게임>은 그 줄거리만 놓고 보면 과연 10주년 특별 기획으로 삼을 만큼 야심이 거대하다. 과연 내용물도 10주년 특별 기획에 걸맞았을까.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가 첫 회의 속내를 살펴보았다.



◆ <소사이어티 게임>이란 사회를 둘러싼 또다른 사회, 현실

새로이 출발한 tvN <소사이어티 게임> 제작진들의 전작 <더 지니어스>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마 서바이벌이라는 작은 경쟁 사회 속에서 참가자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어떤 조합으로 어떻게 살아남는 지였을 게다. 게임은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만드는 장치였을 게고. 그 사람의 본연의 모습을 알고 싶으면 화투를 같이 쳐보거나 운전을 시켜보라는 말도 있으니까.



<소사이어티 게임>은 이제 내놓고 인간들의 사회 활동을 들여다본다. 만나는 순간부터 바로 나이, 사는 지역, 학벌, 능력치에 따라 친밀도가 형성되기도 하고 경쟁 상태로 규정짓는 장면이 흥미로웠는데 도움이 될 사람과 해가 될 사람, 더 나아가 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을 찾느라 재빠르게 움직이는 눈길들이 서글프기도 했다. 그 와중에 첫날부터 분란을 조장하는 사람, 이간질에 나서는 사람이 생기는 상황이 어찌나 우습던지. 하긴 그게 바로 사회이지 뭐.

이 프로그램은 시작부터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리더가 통치하는 방식의 ‘마동’과 다수의 의견, 즉 투표로 리더를 정하는 ‘높동’. 어느 사회가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까? 나라면 어느 쪽을 택할까? 누굴 리더로 뽑을까? 나는 누구와 동맹을 맺을 것인가. 시청자들은 결정의 순간마다 함께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리더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최고치 레벨의 고민이 찾아온다. 탈락자, 희생자를 결정해야만 한다. 결정에 앞서 참가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소사이어티 게임>이라는 사회를 둘러싼 또 다른 사회,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로그램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한시반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석희 soyow59@daum.net



◆ 애초에 유지 존속이 불가능한 악마의 설계

“당신이 속한 집단에서 단 한 명의 희생자가 필요하다면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라면 나의 친구도 나의 적도 아닌, 그가 희생당한다는 사실에 아무도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을 그 누군가를 선택하겠습니다.” 성우 양지운의 묵직한 목소리를 빌린 내레이션은 절반만 옳다. 우수한 개인의 생존이 목표라면 몰라도, 어떤 사회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가를 보겠다는 취지라면 그 핀트가 심각하게 나갔으니까. 재능을 발휘해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윤태진은 자신을 지지해 줄 제 편을 만들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로 다수결을 통해 높동의 첫 탈락자로 뽑혔다. 그가 마동과의 대결을 앞두고 혼자 묵묵히 링토스를 연습했던 헌신 같은 건 감안되지 못했다.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공동체의 잘못에 대한 성찰도, 다수결의 함정을 보완할 만한 원칙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소사이어티 게임>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소사이어티 게임>은 건강한 사회라면 응당 목표로 삼을 만한 공동체의 유지 존속 번영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프로그램이 설계한 환경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높동과 독재정을 상징하는 마동이 끊임없이 체제 경쟁을 해야 하는 전시 상황, 심지어는 각각 11명인 동 주민들 중 마지막 단계까지 살아서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3명 뿐이고 나머지는 아무런 보상 없이 떠나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다.

사회 구조 자체가 적자생존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으니,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거나 대안을 찾는 일, 출생이나 이민 등으로 새롭게 체제에 편입되는 이들에 대한 계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평등의 규칙 같은 사회의 필수 요소들은 쇼에 반영되기 어렵다. <더 지니어스> 제작진이 만든 새로운 <더 지니어스>라고 한다면, 훌륭한 쇼다. 하지만 여기에 <소사이어티 게임>이란 타이틀을 다는 건 그냥 양두구육이다.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체제도, 리더도 아닌 ‘날 것’에 집착하는 게임

<소사이어티 게임>은 그동안 <슈퍼스타K>,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더 지니어스> 등으로 이어져 온 CJ표 서바이벌 예능의 끝판왕 격이다. 예시된 프로그램은 모두 본게임인 서바이벌의 긴장감 못지않게 게임 뒤 인간의 생생한 갈등을 집요하게 포착해 리얼리티쇼의 재미를 강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로는 아예 후자가 본게임을 압도했다. 각 쇼의 어떤 시즌은 오로지 ‘악마의 편집’, ‘악녀대결’, ‘친목질’ 등으로만 기억되기도 한다.

<소사이어티 게임>은 이 리얼리티쇼로서의 갈등을 아예 본경기장으로 끌고 온 프로그램이다. 연출자 역시 ‘<더 지니어스>의 카메라 밖 정치를 더 자세히 가져와 사람들의 리얼한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첫 방송을 바친 <소사이어티 게임>은 과연 앞선 서바이벌 예능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극대화된 리얼리티쇼의 재미를 선사했다. 민주주의와 독재를 상징하는 각기 다른 두 체제를 통해 리더의 자질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탐구한다는 설정은 무척 흥미롭지만 결국 쇼의 최종 목표는 인간들의 소위 ‘날 것’의 표정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데 있다. 일반인이 다수인 출연자 선정부터 카메라를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는 원형세트까지, 전부 이 목표에 충실하다. 기록적인 폭염 속 야외취침과 극도로 제한된 식재료 등 ‘짜증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열악한 환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본성 폭로’를 위해 작위적으로 세팅된 상황 속의 모습이 정말 리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1회에서 이 쇼가 지닌 불편함의 핵심을 말해준 한 장면을 꼽으라면 ‘머슬퀸’ 최설화가 공개된 장소에 임시로 만들어진 샤워실에 들어갔을 때 하나 같이 집중하는 남성 출연자들의 표정을 잡아낸 순간일 것이다. 한 남성이 침을 삼키는 모습은 친절하게 자막까지 붙어 클로즈업 됐다. 그가 어떤 장면에서 이런 표정을 지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조악한 환경 속에서 한 여성의 일상적 행동은 볼거리로 전시됐고, 그를 지켜보는 남성들의 모습은 본능인 것처럼 전달됐다. 여성의 대상화와 같이 특정 문화의 산물마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으로 그려내는 것이야말로 이 쇼에서 가장 위험한 ‘날 것’의 순간이다.

김선영 herland@naver.com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