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대로’, 강연이 예능이란 이름으로 절찬리 방송되는 현실이라니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새 예능 프로그램 <말하는대로>는 두 가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첫 번째는 이제는 나름의 산업이 된 청춘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문화에 대해서, 두 번째는 오늘날 예능이 아무리 장르적 융합과 재미의 범주에 한계가 없다지만, 스탠딩코미디도 없는 이 땅에서 강연이 왜 하필 예능으로 분류되는지(하려고 하는지)에 관해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말하는대로>는 용기 있는 자들이 ‘말할 꺼리(?)’를 가지고 ‘말할 거리(street)’에 선다. 말할 거리가 있으면 어디든 찾아가서 자기만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에서 ‘말’로 하는 버스킹 프로그램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5회분까지 방송을 보면 무대가 아니더라도, 돈을 미리 받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자기 공연을 펼치는 버스킹답게 프로 강사가 아닌 의외의 인물들이 인지도 높은 방송인들과 섞인다. 그동안 70대 소설가 박범신에서 개그맨 이수근, 샤이니의 키, 무명 배우 허성태, 응급의학과 의사, 초선 국회의원, 젊은 정치인, 섹스칼럼니스트, 정상에서 조금 멀어진 랩퍼 등등이 버스커로서 나섰다.

포맷의 대가 JTBC가 강연을 색다른 포맷으로 소화해 내놓았지만 다양한 분야의 그 누가 나오든, <말하는대로>의 버스커들이 말하는 소재와 결론은 비슷하다. 길던 짧던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굴곡진 삶과 거기서 얻은 살아가는 태도에 관해서 말한다. 이들이 “용기 내어 전하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는 그동안 숱하게 진행된 자기계발, 힐링, 청춘을 키워드로 한 강연의 틀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다.

오해하지 말자. 이들의 말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시청률도 나쁘지 않다. 지극히 예능이란 장르적 특성을 조각하고 들여다보는 예능 칼럼니스트에서 ‘정서적 위로’가 재미가 되는 세상이 씁쓸하단 뜻이다. 바야흐로 강연의 시대, 청춘 소비자들은 쇼핑하듯 강연을 즐기고 영감과 용기와 지식을 주사한다. <말하는대로>의 강연들도 대부분 ‘나도 힘든 시기, 이렇게 힘든 일이 있었어. 하지만 나답게 무엇으로 이겨내려고 해’ 등 자신을 찾고 자존감을 높이자는 내용이다.



인문학에서 얻는 영감과 창의력 이야기를 안 하는 건 고맙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찾고 알아가는 힘을 길러준다기보다 공감과 위로라는 말로 포장된 중독성 있는 ‘자기계발’, ‘힐링’ 자극제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종의 스팀팩이다. 그래서 <말하는대로>의 강연이 예능이란 이름으로 절찬리 방송되는 현실이 우선 안타깝게 느껴진다. 오늘날 시대상을 반영한 예능 버전인 것 같아서.

물론, 여성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 손아람 작가의 강연도 있었다. 시청자들에게 현재 이슈가 되는 논쟁을 TV에서 꺼낸 의미는 충분히 있었다. 예능이라는 대중적인 장르를 통해 논쟁적 이슈들까지 다루는 폭 넓고 특별한 프로그램이 되고자 하는 포부는 읽혔지만 사회적 의미를 남기기엔 한계가 명확했다. <말하는대로>가 추구하는 수평적인 토론이나 대화는 벌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버스킹 형식의 강연은 논쟁거리를 다루기엔 거리가 먼 강연 형식인데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든 큰 틀에서 감동과 웃음을 버무린 ‘예능’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쇼가 기묘하게 보인다. 예능이 당의정의 껍질인지, 강연이 그 껍질인지 헷갈린다. 강연이나 논쟁이 시청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라면 굳이 예능적인 형식을 띨 필요가 없다. 그런데 버스킹이란 포맷을 짜고, 각자가 얼마나 모금했는지 경쟁 아닌 경쟁을 한다. 그리고 리액션이 뛰어난 MC인 유희열과 하하는 감동 다음 웃음을 샌드위치 만들 듯 붙인다. 감정의 고조를 이용하는 건 전문 강사들의 툴이다.



논쟁이나 심도 깊은 인생 이야기가 꼭 무언가 보완이 필요한 콘텐츠는 아니다. 강연이 예능의 또 다른 차원의 재미라면, 왜 웃음을 위한 예능적 장치들, 예능쇼에 가까운 장치들을 배치했는지 모르겠다. 보다 선명하고, 보다 직접적으로 ‘말’에 집중하고, 그 주제를 부각한다면 재미도 더 명확해지고 커지지 않을까. 지금 이와 같은 형식으로는 유명인들의 1인 토크쇼 이상의 가치를 얻긴 힘들어 보인다.

보들레르의 시를 인용한 조승연의 버스킹은 <말하는대로>의 프리젠테이션 혹은 변호 같았다. 그는 오글거림, 닭살이 좋은 말의 홍수 속에서 나오는 일종의 방어기제일 뿐 사실은 다른 말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시적 전율이라고 했다. 그렇다. 어떻든 자극이란 말이다. 말초적이든, 정서적인 접근이든 예능에서 보다 큰 자극은 필수다. 그런 점에서 예능과 자존감 관련한 강연의 결합을 이해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렇다면 왜, 자기계발, 힐링, 청춘 강연이 6년 넘도록 단순한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예능으로까지 들어오게 됐을까? 여기에 대한 답을 해줄 버스커를 만나고 싶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