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화신’, 조정석만큼 섬세한 공효진의 하드캐리

[엔터미디어=정덕현] 두 남자 사이에서 대놓고 간을 보는 여자. 여타의 멜로드라마라면 이런 여자 캐릭터는 비난받기 일쑤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공효진)는 다르다. 그녀는 내놓고 이화신(조정석)과 고정원(고경표)에게 자신의 마음이 두 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이화신이 양다리를 제안(?)했고 고정원도 그걸 수락함으로써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이 두 남자 사이에서 대놓고 양다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캐릭터. 어떻게 이 드라마는 표나리라는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었을까.

사실 드라마의 앞부분을 보지 않고 세 사람이 한 집에서 동거하는 이 기묘한 상황부터 보게 된 시청자라면 이 장면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고 나아가 그 관계를 허용하는 표나리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를 처음부터 들여다본 시청자라면 다르다. 그들이 어쩌다 그런 복잡 미묘한 관계가 되었는가를 누구나 수긍하게 된다. 이건 이 드라마를 쓴 서숙향 작가가 관계가 어쩌다 이렇게 흘러왔는가를 얼마나 섬세하게 다뤘는지를 말해준다.

이화신을 짝사랑하지만 늘 퇴짜만 맞고 구박받던 표나리가 고정원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차츰 이화신의 질투를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이화신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피는 과정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졌으며, 뒤늦게 이화신의 사랑을 확인한 표나리가 이미 고정원과 가까워짐으로써 두 사람의 우정을 위해 둘 다 포기하려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도 담겨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화신과 고정원이 지금의 동거 상황까지를 만들어낸 것.



그 속에서 표나리는 두 사람에게 공평하게 대하려 노력한다. 그것이 양다리에 있어서 최소한의 예의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저 스스로는 두 사람을 비교하며 어느 쪽이 나은가를 가늠해본다. 여기서 표나리의 미묘하고도 섬세한 내면이 드러난다. 즉 자상하고 배려심 많고 돈도 많은 데다 젠틀하고 성숙해 보이는 고정원이 사실상 모든 면에서 이화신보다 나아보이는 게 사실이고 정반대로 이화신은 투덜대고 자기 위주인데다 툭 하면 싸우기 일쑤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이화신 쪽으로 기울어가는 것. 그걸 증명하는 건 다름 아닌 ‘질투’다.

밤마다 고정원의 집을 무단으로 찾아오는 금수정(박환희)을 그가 집까지 바래다주는 걸 알게 된 표나리는 그러나 이렇다 할 마음의 동요를 갖지 않는다. 질투의 마음도 없고 어떤 면에서는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자신의 양다리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덜어졌다는 것. 하지만 이화신이 자신의 어머니와 식사를 하자고 애원했음에도 표나리가 고정원의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은 사실을 확인하고 “이제 관두자”며 집을 나가버리자 그녀는 마음이 쓰인다. 부랴부랴 방송국을 찾은 표나리는 마침 이화신에게 키스하는 홍혜원(서지혜)을 목격하며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어찌 보면 간 보는 여자 캐릭터로 지탄받을 수도 있고, 또 생각과 마음이 달리 움직여 두 남자를 괴롭게 만드는 그녀가 민폐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표나리의 갈팡질팡은 그런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감정에 대한 공감대가 더 크다. 생각으로는 고정원이 여러 모로 더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마음은 이화신을 향해 가는 그 심리가 이해된다는 것.

<질투의 화신>은 질투가 사랑을 증명한다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러니 사랑을 사랑으로 표현하는 연기보다 이렇게 질투를 하고 화를 내고 지질하게 굴며 아이처럼 투정부리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연기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서 조정석이라는 연기자를 새롭게 보게 된 이유다.

하지만 두 남자 사이에서 생각은 고정원을 향해 가지만 마음은 이화신을 향해 기울어지는 그 복잡 미묘한 표나리의 감정을 연기하는 공효진 역시 그 연기가 조정석만큼 섬세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하는 감정은 다를 수 있다. 질투는 그래서 두 감정 사이에서 사랑을 확인시키는 증표가 된다. 그러고 보면 질투로 사랑을 표현해낸 조정석만큼, 생각과 마음이 갈라지는 그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공효진 역시 이 작품의 하드캐리였던 것이 분명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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