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 기억나지 않는다는 자들을 반성시키는 유일한 방법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자백>은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과 넷펙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됐다. MBC에서 <피디수첩>을 만들다 해직된 최승호 PD의 감독변신과,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소개됐다. 그런데 이러한 소개는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반감시킨다. 최승호 PD가 뛰어난 저널리스트인 것이야 알지만, 그가 만든 고발용 다큐멘터리가 반드시 재미와 작품성을 갖춘 영화일 것이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아마 전주국제영화제 수상도 감독의 선의를 알아봐주거나 괘씸한 정권에 한방 먹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영화의 소재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라면 <한겨레> 등의 보도를 통해 전말이 알려져 있으며,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면 최승호 PD가 속한 <뉴스타파>의 보도를 검색해보면 될 터이다. 굳이 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상영관까지 가서 뻔한 내용을 확인해야 될 이유가 있을까.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합리적인 소비자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 뻔할 것이라는 예상이 무색해지는 놀라운 흡입력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영화가 시작된 지 단 3분 만에 싹 가신다. 진짜다. 법정에서 유가려씨가 겁먹은 목소리로 증언하는 것을 듣는 순간, 영화에 대해 품었던 온갖 선입견들이 싹 달아난다. 생생한 육성을 듣는 것은 문자로 적힌 것을 읽는 것과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문자로 적힌 메시지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저 목소리 안에 담겨있다. 가늘게 떨며 울먹이는 소리, 질문과 대답사이의 지연, 머뭇거림, 번복, 어쩔 수 없다는 낙담. 아니, 당시 재판부는 저 목소리를 듣고도, 심지어 목소리의 주체인 어린 여성의 불안한 표정을 다 보고도, 그 대답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단 말인가?



저 어린 여성이 6개월간 국정원 직원들만 있는 종합합동신문센터에서 감시카메라로 인해 샤워도 할 수 없는 독방에 갇힌 채 온갖 회유와 협박을 당했다고 생각해보라. 어느 날은 때리고 겁을 주면서 “너 돌려보내겠다. 너나 오빠에게 우리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너는 여기서 못 나간다.” 등의 협박을 하고, 또 어느 날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면 도와줄 수가 없지 않느냐.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오빠와 살게 해주겠다. 간첩이라고 다 중형을 받는 게 아니다. 오빠는 잠깐 형기를 살다 나오면 된다. 잠깐은 힘들겠지만 결국 나중에는 우리한테 고맙다고 할 것이다. 결국 네가 오빠를 도와주는 것이다”는 말로 회유했다고 생각해보라. 무슨 자백인들 얻어내지 못했을까.

한번 회유에 넘어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답해주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라고 하니 “번복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거짓 진술한 죄가 간첩죄보다 더 크다”는 말로 더욱 무섭게 협박했다고 하니, 당시 유가려씨가 느낀 공포와 절망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도 못하겠다. “아 꼼짝없이 걸려들었구나.” 유가려씨는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그의 허위 자백을 근거로 유우성씨는 간첩죄로 기소된다.

다행히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국정원은 또다시 출입경 기록 등의 증거를 조작하여 유우성씨가 북한을 드나들었다는 허위사실을 꾸며냈다. 당시 조중동과 종편에서는 연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하며 박원순 시장을 겨냥한 여론몰이에 들어갔다. 또한 이 사건은 당시 본격화되었던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이로 인한 국정원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국면전환 용으로도 쓰였다. 국정원의 고발로 유우성씨가 구속수사를 받는 사이 유가려씨는 중국으로 추방되었다. 한국영화를 보며 남한 생활에 대한 동경을 키워왔다는 유가려씨는 오빠와 함께 살고 싶어서 남한 행을 택했지만, 오빠를 만나 보지도 못하고 추방당했다.



영화 <자백>은 국정원이 조작한 증거들이 얼마나 악의적이고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 중국을 오가며 조목조목 짚어낸다. 검찰이 확인하려고만 했으면 얼마든지 위조를 알아낼 수 있었지만, 검찰은 조작된 증거들의 그대로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게 하고도 간첩죄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는다. 현직 국정원장 남재준이 대국민 사과를 하였고, 직접 증거를 조작했던 국정원 실무자는 처벌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국정원이 환골탈태해야 된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제도적이고 구체적인 개혁방안은 없었으며, 이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검찰은 유우성씨에게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이탈주민법과 여권법 위반 등 여러 가지 죄목으로 유우성씨를 계속 기소하였다. 간첩조작으로 드러난 것에 대한 보복용이자 물타기용이었다.

최승호 감독은 당시 검사들에게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사과 한 마디를 요구한다. 그리고 허위자백으로 유우성씨를 체포했던 당시 국정원장 원세훈에게도 인터뷰를 요구한다. 감독이 우산을 탁 쳤을 때 드러나는 원세훈의 표정은 놓쳐서는 안 될 한 컷이다. 영화 <늑대의 유혹>에서 우산을 들어 올리자 드러나는 강동원의 해맑은 미소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비열한 웃음이 그 안에 있다.



◆ 중앙합동신문센터, 그곳에선 무슨 일이

영화 <자백>은 유우성씨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감독은 유가려씨를 감금한 채 거짓자백을 강요하던 중앙합동신문센터라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취재한다. 탈북자들을 조사하여 간첩을 가려낸다는 그곳은 외부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다. “KGB 같다”고 말해지는 그곳은 기자는 물론 경찰도 들어갈 수 없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국가기밀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2011년에 실제로 그곳에서 조사를 받던 사람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명백한 변사 사건이었지만, 관할 경찰의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탈북자가 간첩죄를 자백한 후 자살했다는 중앙합동신문센터의 말을 그대로 믿고, 경찰은 시신처리 업무를 했을 뿐이다. 그의 신원이 누구인지, 자살은 맞는지, 어떻게 하다가 자살이 일어났는지 조사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을 찾아 죽음을 알리는 일조차 하지 않았다. 무연고 시신으로 근처에 매장한 것이 전부이다.

최승호 감독은 죽은 자의 신원을 탐문하고, 그를 안다는 사람을 만나 그가 어떻게 남한에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가 머물렀던 중국에 가서 지인들을 수소문한 끝에 북한에 남겨진 그의 어린 딸과 어렵게 통화에 성공한다. 북한을 떠나 중국에 온 뒤로 그는 북한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중국에 머물다가 남한으로 왔으며,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한다. 딸에게 아버지에 대한 몇 가지를 묻던 감독이 아버지의 죽음을 딸에게 알려주자,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무섭다.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끊는다. 딸의 통화에서 흐르던 몇 초간의 정적. 거기엔 몇 년간 소식이 없던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모르는 이의 통화로 전해 듣게 된 딸의 망연자실함과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나라도 도의상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한 감독의 착잡함 등이 교차한다. 영화는 이 순간이 담고 있는 무게를 가공 없이 전달한다.



◆ 40년간 한결같은 조작질

유우성 사건에서 출발한 <자백>은 시야를 옆으로 돌려, 비슷한 시기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있어난 변사사건을 통해, 이러한 조작이 유우성씨 가족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시야를 종으로 넓힌다. 국정원이 잔혹한 고문과 허위자백으로 간첩을 만들어온 것은 오래된 일이다. 상징적이게도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을 사과하던 박근혜 대통령 옆에는 김기춘 비서실장 있었다.

김기춘은 유신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의 대공수사국장으로, 당시 벌어졌던 무수한 간첩조작 사건의 총지휘자였다. 대표적으로 1975년 학원침투간첩단 사건이 있었다. 재일교포들 중 남한으로 유학을 왔던 사람들을 간첩으로 몬 것이다. 이철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가족까지 고통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혀까지 깨물었지만, 거짓자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겐 사형선고가 내려졌고, 19년간 옥살이를 하는 동안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40년이 지난 2015년에 열린 재심법정에서 그는 무죄판결을 받는다. 당시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었던 이들 중 재심을 청구한 사람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아예 재심청구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7년간 옥살이 끝에 일본으로 돌아간 김승효는 극심한 고문 탓인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 이후 사람도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쇠락해진 정신 상태를 보이던 그가 한국에서 온 감독을 맞아 40년 만에 한국어로 말을 한다. 마치 방언처럼 터져 나온 그의 한국어는 “한국, 나쁜 나라입니다.”였다. 얼마나 통한에 사무쳤으면, 40년 만에 영혼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한국어 한마디가 “한국, 나쁜 나라”였을까.

이처럼 피해자는 지금도 고통 속에서 겨우 숨 쉬고 있는데, 가해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최승호 감독이 김기춘에게 간첩조작사건들이 재심에서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는데 대한 심경을 묻자,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만 돌아왔다. 심지어 이철의 알리바이를 조작하는데 협조해달라고 주일 대사관에 자신이 보낸 친필 쪽지를 보여주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황급히 자리를 뜬다.



이들은 반성할 줄을 모르고, 반성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들이 40년간 꾸준히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간첩으로 조작되었다가 무죄로 판명된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열거해 보여준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사건의 연대기가 빼곡하게 지나간다. 무려 90여건이다. 그 와중에 유독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만 간첩조작사건이 없었다. 간첩조작 사건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만들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실이다.

부정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 간첩은 북한이라는 외부의 적을 환기시키기 위한 용도로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간첩은 국정원이라는 초법적인 기구가 엄청난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즉 정권을 떠받히기 위하여, 또한 자기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국정원은 간첩을 만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희생들이 양산되었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반공 극우세력들에게 장악된 대한민국의 권력은 이처럼 무고한 희생자들을 땔감으로 삼아 돌린 화차였다.



<자백>은 단순히 탐사보도에 충실했다는 저널리즘적 가치뿐만 아니라, 영화적인 만듦새가 뛰어나다는 뜻밖의 가치를 지닌다.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에 스릴러적인 구성은 관객의 흥미를 자아내며, 깔끔하고 재치 있는 편집은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와 긴 여운을 남긴다. 가령 우산 뒤에서 웃고 있던 원세훈의 얼굴이나 전화기 너머에서 전해지던 먹먹한 긴장은 좀처럼 잊힐 것 같지 않다. 오래토록 뇌리에 남아 분노와 우울을 자아낼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저들을 반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이다. 그들의 권력을 빼앗는 것이다. 수십 년간 간첩을 조작해온 국정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야만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과 같다. 민주정부는 간첩조작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국정원, 해체가 답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자백>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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