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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끼줍쇼’ 이경규·강호동, 이것은 민폐인가 소통인가
기사입력 :[ 2016-10-27 13:20 ]


숟가락 두 개만 달랑 든 이경규·강호동의 무모한 예능 ‘한끼 줍쇼’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이것은 소통일까, 민폐일까. 이경규와 강호동에게 숟가락 하나씩만 달랑 들려 밥을 한 끼 얻어먹고 오라고 시키는 JTBC 예능 <한끼 줍쇼>는 그 미묘한 경계 위에 있다. 분명히 당대를 살아가는 서민들과 나누는 대화는 정겨운데, 밥 한 끼만 얻어먹을 수 있겠느냐고 매달리며 상대를 부담스럽게 할 땐 요즘 같은 세상에 저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진다. 이 처음 보는 희한한 예능을 [TV삼분지계]가 훑어봤다. 정석희 평론가는 전반적인 총평을, 이승한 평론가는 서로 달라도 이렇게 다르기 어려운 이경규와 강호동 사이 호흡에 대한 평가를, 김선영 평론가는 ‘리얼리티’를 대하는 제작진의 태도에 대한 비판을 위주로 글을 풀었다.



◆ 두 MC와 프로그램을 구원한 성수동 부부

사오십 대가 그렇다. 남의 밥상에 숟가락을 얻는다는 게 영 쉽지 않은 나이다. 혹시 불편해 하지는 않을까? 거절하면 어쩌지? 누군가에게 그저 밥 한 끼 같이 하자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운, 조심스러워 해야 옳을 그런 나이 아닌가. 하물며 거저 달라고 해야 하다니. 그것도 덜렁 빈손으로. 한 마디로 말해 얻어먹어야 하는 거다. 돈 많은 연예인들이 왜 민폐를 끼치느냐는 시청자들의 날선 반응들도 이해가 가고 시절이 하수상한 마당에 별 쓸모없는 프로그램이나 만들고 있다는 질타가 이어질 법도 한 일.



<한끼줍쇼>는 새로운 도약이 절실히 필요한 이경규, 강호동에게는 단순한 고난극복 이상의 의미가 있다. 소통과 공감. 소통을 통해 밥 한 끼를 줄 상대를 구해야 하고 밥을 함께 먹는 장면을 통해 이 프로그램의 취지가 공감을 얻어야 하니까. 따라서 숱한 역경, ‘그런데요?’와 ‘괜찮습니다’ 라는 답을 뒤로 하고 드디어 밥상을 차려준 성수동 부부. 두 MC에게는 구세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밥 먹기를 거절한 주민들을 인심이 사납다느니 정이 메마른 동네라느니 하며 비난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만약에 우리 집 초인종이 울렸다고 가정해볼 때 선뜻 문을 열어줄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려나? 진짜 라면도 즉석밥도 없어서, 마침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있어서, 심지어 대판 싸워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두 MC도 문을 안 열어줄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2회가 끝난 지금 ‘싸우면서 끝까지 가는 게 바로 사랑’이라는 성수동 부부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한 수 배웠네 그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중요한 건 도착지가 아니라 여정 자체다

극단적인 효율과 기민한 태세 전환을 모토로 살아온 이경규와, 분량 확보와 소통 코드에 집착하는 강호동, <한끼 줍쇼>는 얼핏 잘 안 맞는 두 사람을 억지로 모아둔 쇼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합이 썩 나쁘지 않다. 복귀 후 강호동은 기존의 감동-명언-소통 코드가 작동하지 않아 헤맸고, 그렇다고 JTBC <아는 형님>에서처럼 본인이 앞장서서 가학적으로 굴기 시작하면 볼썽사나워지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기존 스타일을 유지하되 분위기가 지나치게 루즈해지지 않도록 고삐를 잡아줄 파트너가 절실했던 셈이다.



이경규 또한 자꾸만 더 어르신으로 보였던 것이 사실이라, 자기를 잘 알면서도 너무 떠받들어 주지는 않을 만한 파트너가 필요하던 차였다. 서로를 잘 알고 체급도 비슷해 각자 함부로 대할 수 없지만 스타일은 정반대인 두 사람을 파트너로 붙여주자, 서로가 서로를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기묘하게 상대의 단점을 메워주는 화학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끝내 어느 집에서도 초대받지 못한 1회와 마음씨 좋은 성수동 부부의 허락을 받아 저녁 식사를 한 2회 중 어느 쪽이 조금 더 프로그램의 본질에 가까울까? 제작진이 생각한 그림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프로그램 자체의 매력은 오히려 전자에서 더 강하게 드러났다. 배수의 진을 친답시고 남은 돈을 다 탕진한 뒤 바쁘게 돌아다녔던 2회와 달리,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던 1회에선 두 MC가 한 끼 얻어먹을 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여정 위에 망원동이라는 시공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더 많이 투영됐다. 이경규가 들으면 식겁할 이야기겠지만, 이 쇼에서 중요한 건 밥을 얻어먹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밥 한 끼 같이 할 사람을 찾는 여정 자체일 것이다. 기왕 길 위에 나오신 김에, 조금만 더 발품을 파시기를.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쌩리얼’에 대한 과욕이 만들어낸 민폐의 극치

보통 리얼 예능의 ‘리얼’에 대한 태도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출연진을 극한 상황으로 밀어붙여 분노, 슬픔, 짜증 등 원초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풍경처럼 관조하면서 일상적 표정을 포착하는 것이다. 둘 다 뻔한 방송용 ‘뽀샵질’ 화면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이 낳은 것이겠지만, 자칫하면 전자는 가학, 후자는 지루한 방관이 되기 싶다. ‘생리얼예능’이라는 동어반복적 수사의 ‘식큐멘터리’ <한끼줍쇼>는 두 성격이 뒤섞여있다. 저녁 한 끼를 통해 우리 시대의 삶을 들여다보겠다는 의도와 대도시 골목골목을 관조적으로 담아내는 화면은 얼핏 성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전 섭외도 없이 한 끼를 구걸하다 거절당하는 ‘굴욕’을 반복하는 진행자들이나 카메라 뒤에서 그들을 대책 없이 따라다녀야 하는 스태프들의 입장에서 보면 과도한 감정, 육체노동 강요다.



무엇보다 불편한 것은 일반 시민의 삶을 예능을 위한 그림으로 쓰겠다는 안이한 태도다. 만약 저명한 사회인사나 유명 연예인들의 집이라면 제작진은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 그렇게 무작정 벨을 누를 수 있었을까. 애초에 일반 시민의 삶을, 아무런 꾸밈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리얼의 정수’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가령 첫 회에 진행자들이 제일 먼저 방문한 망원동 부동산에서 립스틱만이라도 바르겠다는 사장과 그 모습까지도 ‘훈훈한 웃음’으로 담아내는 카메라는 이러한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 역시 사회에 속해서 살아가는 한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래서 일정한 ‘꾸밈’과 가림막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 대부분이다. 하물며 불특정다수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방송용 카메라 앞이라면 더욱 그렇다. 제작진은 시대의 삶을 고찰하기 전에 과연 ‘생리얼’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부터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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