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왕 루이’, 보면 볼수록 우리를 흐뭇하게 만드는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는 황금그룹의 후계자 쇼핑왕 루이(서인국)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왕루이가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황금그룹의 최일순(김영옥) 회장은 점쟁이에 따르면 사주의 살이 껴서 자식들을 먼저 보낸 불운한 여인이다. 그녀는 결국 유일한 혈육으로 손자 루이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살 때문에 루이가 다칠까 염려되어 사랑하는 손자를 파리로 멀리 떠나보낸다.

최일순 회장은 손자 루이를 파리에 보내놓고도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김호준(엄효섭) 집사를 붙여두고 손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한다. 할머니가 만든 온실 속에 살아가는 재벌가의 후계자 루이에게는 친구도 없고 연인도 없다. 친구들에게는 따돌림의 대상이다. 늘 집사가 옆에 있어 이성과 사랑을 쌓아가는 방법도 배우지 못했다. 그런 루이의 유일한 낙이자 친구는 바로 쇼핑이다. 루이는 스마트폰으로 명품들을 쇼핑하고, 한정판에 열을 올리며, 새로운 물건을 살 때만 활력이 넘친다. 심지어 루이는 강원도 산골소녀 고복실(남지현)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오지코리아를 보며 새로운 스타일의 홈쇼핑으로 착각할 정도다.

이처럼 온실 속 쇼퍼홀릭으로 살아가던 루이에게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 날벼락은 부러울 것 없는 재벌가 도련님 루이의 삶을 알거지 왕루이의 삶으로 바꿔놓는다. 할머니의 병이 위독하다는 말에 한국으로 돌아온 루이는 황금그룹 사장 백선구(김규철)의 계략으로 사고를 당한다. 지독한 워커홀릭인 백선구는 최회장이 루이에게 그룹을 물려줄 생각이라는 걸 알자 그만 이성을 잃는다. 자신처럼 회사에 몸 바쳐온 사람만이 그룹을 운영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편 기억을 잃은 루이는 동생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 산골소녀 복실과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말 안 듣고 물건 사들이는 데만 도사인 똥강아지 왕루이의 삶이 그것이다. 루이 때문에 속이 터지면서도 복실은 루이를 다독이고 루이와 살아간다. 둘이 함께 산 이유는 복실의 동생이 늘 입고 다니던 짝퉁 트레이닝복을 루이가 입고 있어서다. 복실은 루이의 기억이 돌아오면 연락 끊긴 동생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루이와 복실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며 차츰차츰 사랑의 감정을 쌓아간다.

<쇼핑왕 루이>는 모든 걸 클릭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는 2016년에 등장한 희한한 복고풍의 사랑동화다. 기억을 잃고 천진난만한 소년이 된 루이와 휴대폰도 없이 산 산골소녀 복실의 사랑은 지금의 현재와 동떨어진 두 청춘남녀의 관계를 설득시키기 위한 설정일 것이다.

커튼 하나로 장막을 친 채 한 집에 살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두 사람이 사랑의 감정을 쉽게 깨닫지는 못해서다. 루이는 주인에게 유기견이 의지하듯 복실에게 기댄다. 강원도에서 늙고 병든 할머니를 돌보는 데 익숙한 복실에게 루이는 그저 돌봄의 대상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감정에 변화가 일어난다. 루이는 복실을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복실은 루이를 돌봄의 대상이 아닌 쓸쓸한 도시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실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한없이 무서웠던 나의 밤을 루이가 지켜주었다.” (고복실)

모든 것들이 ‘빠름빠름’인 이 시대에 두 주인공의 느릿느릿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는 희한하게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쇼핑왕 루이>를 보면 잊지는 않았지만 자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의 특징 한 가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랑은 한 순간의 뜨거운 불꽃이기도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쌓은 기억을 땔감 삼아 만들어진 따스한 온기일 때도 있다.

그렇기에 루이와 복실이 첫 키스를 나누는 공간이 헌 책방 거리라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 그 공간에서 두 사람은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가 함께했던 시간들을 기억하며, 그 기억을 통해 둘 사이의 사랑을 확인한다.

마침 헌책방 거리에서 루이가 잠시 읽었던 책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건 어쩌면 루이가 잃어버린 재벌가 도련님 쇼핑왕 시절의 시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은 각자 추억으로 기억하지만 루이에겐 기억조차 없던 진짜 사랑의 시간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루이는 복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쇼퍼홀릭의 삶으로는 알지 못했던 진짜 사랑의 시간들을 깨닫는다.

“복실, 난 잃어버린 기억도 찾고 싶지만 새로 시작된 지금도 행복해. 따뜻하고 즐거워.” (루이)

그리고 어느새 이 동화 같은 사랑이야기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속 과자 마들렌의 역할처럼 우리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과 공명한다. 우리 모두 사랑 앞에서 수줍은 아이였을 때, 쉽게 부서지는 과자처럼 여린 감정이었을 때, 너무 달콤해서 어느새 마음이 멍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누군가를 좋아했을 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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