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1위 ‘별난 가족’, 참 나쁜 드라마의 전형적인 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한때는 9시 뉴스 전에 방영하는 KBS1 일일연속극이 드라마의 중심인 적이 있었다. 1980년대부터 큰 인기를 누렸던 이 시간대의 일일연속극은 1990년대에도 여전히 <서울 뚝배기>나 <바람은 불어도>, <정 때문에>로 주말드라마나 미니시리즈 못지않은 인기와 화제를 이어갔다. KBS1 일일연속극은 보수적이고 통속적인 홈드라마지만 휴머니즘이란 미덕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어르신들이 밥 먹을 때나 잠깐 틀어놓는 드라마로 그 위상이 추락한 지 오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1 일일연속극은 주간 기준 1위에서 2위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자랑한다. 주시청자의 콘크리트 지지도가 결코 하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방영 중인 <별난 가족> 또한 꾸준히 평일 일간시청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희한한 드라마다. <별난 가족>은 농촌에서 오디 농사를 짓던 강단이(이시아)가 대기업 봉주르홈쇼핑에 입사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사실 다양하기보다 누구나 짐작 가능한 일들의 연속이다. 삼각관계가 등장하고, 사랑과 배신이 이어지고, 젊은 남녀의 결혼을 두고 집안끼리 신경전을 벌인다.

그럼에도 <별난 가족>은 유달리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 아마 근래의 일일드라마 중 가장 최악의 노선을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물론 그건 이 드라마의 성의 없음 탓도 있다. <별난 가족>은 콘크리트 시청률을 믿고 이야기를 끌고나가지만 정작 드라마의 완성도나 연기는 최악으로 손꼽을 수준이다. 남녀 주인공을 비롯한 젊은 배우들의 연기는 캐릭터의 감정은 물론 대사의 톤조차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다. 그저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본인의 대사를 읊어대는 수준에 머무른다.

<별난 가족>의 이야기 역시 모든 일일드라마의 식상함을 다 모아놓았지만 심지어 이런 종류의 드라마에서 느껴지는 말초적 자극조차 없다. 드라마 속 인물의 계략이 그다지 짜임새가 없어서다. 즉흥적이고 그때그때 다르다.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인물의 행동이나 감정선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대부분의 일일극이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하다. 다만 <별난 가족>은 황당함과 자극을 떡밥으로 시청자와 ‘밀당’하는 능력조차 갖추지 못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인물들 각각의 잔꾀와 안하무인의 성격으로 시청자를 짧게 잡아두려 애쓴다.



드라마 속 악녀인 강삼월(길은혜)은 너무 쉽게 타인의 신분을 위조해 봉주르에 입사해 대표 쇼호스트로 성공한다. 봉주르의 부사장이지만 실질적인 실세인 정주란(김경숙)은 딸 설혜리(박연수)를 위해 회사의 모든 운영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한다. 정주란의 딸인 설혜리 또한 안하무인이기는 마찬가지다. 강삼월이 음흉하게 작전을 꾸며 짜증나는 스타일이라면 설혜리는 대놓고 설쳐 보는 이를 질리게 만든다. 다만 설혜리는 드라마에서 딱 한번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 바로 여주인공의 남자친구인 봉주르 홈쇼핑의 구윤재(팀장)의 사랑을 얻으려 애쓰고, 결혼을 위해 단식투쟁까지 불사하는 순간들이 그렇다.

남자주인공 구윤재 또한 순정남은 아니다. 강단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이 남자는 어느 순간 봉주르의 권력에 눈이 멀어 차갑고 매정한 남자로 캐릭터가 뒤바뀐다. 그러면서도 설혜리와 강단이 두 여자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반대로 드라마의 여주인공 강단이는 꼭두각시 여주인공에 가깝다. 그녀는 <별난 가족>의 자극적이지만 지극히 평면적인 사건의 흐름 속에서 멍한 표정으로 늘 끌려 다니기만 한다.

사실 <별난 가족>이 불쾌한 근본적인 이유는 허술한 완성도 탓만은 아니다. 이 드라마는 이런 종류의 일일드라마가 바닥에 깔기 마련인 휴머니즘이 없다. 아니, 있기는 하나 얄팍한 포장지로만 존재한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별난 가족>에는 사랑과 성공을 위해 약육강식만 일삼는 인물들의 으르렁거림이 난무한다. 조잡하고 불쾌한 데다 피곤하기까지 하다. 참 나쁜 드라마의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현실 속 별난 정권이 쓴 막장드라마에 비하면 <별난 가족>은 새 발의 피다. 수많은 음모와 허튼 계략, 출생의 비밀이 난무해도 현실 속 막장드라마를 따라갈 능력은 되지 않는다. 이제 일일드라마 작가들은 생계의 위협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최소 여주인공을 쥐고 흔드는 사이비종교 정도는 등장해야 대중들이 현실감 있는 막장이구나 생각할 테니까. 우리는 지금 어떤 우주의 기운이 모여 있는 땅 위에서 살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 별난 정권을 보고 싶지 않아도 눈을 뜨고 계속해서 지켜봐야 한다. 보고 싶지 않은 나쁜 드라마는 보지 않으면 그만. 가상의 드라마는 눈을 감고 외면하는 순간 사라지니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현실의 채널을 움직이는 거대한 리모컨을 쥐고 있는 존재는 권력자 아닌 국민들이다. 우리는 개, 돼지가 아니라 현실의 채널을 바꿀 권리와 의무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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