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로 보는 가족제도와 부부관계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올 하반기 들어 불륜을 진지하게 다룬 드라마들이 앞다투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동명의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한 JTBC 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그 목록 중 제일 최신작이라 할 만 한데, 아내의 불륜을 눈치 챈 남자가 과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된 건지 복기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관전 포인트가 흥미롭다. [TV삼분지계]의 세 사람은 과연 어떻게 보았을까? 기혼자, 비혼주의자, 미혼자 셋으로 이루어진 세 사람의 시선은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했는데, 모아놓고 보니 다들 비슷한 지점을 보고 있었다.



◆ 부부라는 관계에 대한 이해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저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도현우(이선균)가 인터넷 게시판에 고민 상담 글을 올린다. 어쩌면 시청자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다. 질문을 접수한 시청자는 같이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내 아내라면, 내 남편이라면 어찌 할 것인가. 호텔이 예약이 되어 있으니 진짜 바람이려나? 단순히 마음만 흔들린 걸까? 일단 마음이 갔다면, 그래도 그건 바람이잖아? 한 회 한 회 지나가는 사이 더 숱한 물음표들이 생겨나지 싶다. 또한 도처에서 갑론을박, 토론이 한 바탕 벌어질 것 같다. 이미 현우가 글을 올린 게시판 상황처럼, PD인 현우가 이끄는 불륜 프로그램 제작팀원들이 ‘모텔에 갔으면 바람이다’와 ‘결정적 액션이 없는 이상 바람이 아니다’로 열띤 공방을 벌였듯이. 흥신소 직원의 결혼 8년 차가 가장 위험하다는 말에 흠칫 긴장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사실 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의 핵심은 바람이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단단해져 간다는 인생의 동반자, 즉 ‘부부’라는 관계에 대한 이해에 주목하자. 그리고 쏟아지는 많은 이들의 조언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이해타산에서 출발하는 서로 다른 의견들. 과연 현우는 어떤 조언에 따를는지. 아울러 기대되는 건 연기자 김희원과 예지원의 변신이다. 천하에 둘도 없을 ‘바람의 신’과 그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관찰 중인 그의 아내. 앞으로의 그들의 활약이 가장 궁금하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당연한 관계’ 같은 것은 없다

KBS <공항 가는 길>에 이어 JTBC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또한 불륜을 중심소재로 다루면서도 본질은 불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말한다. 외주제작사의 프로듀서 현우(이선균)는 아내의 외도를 눈치채고 고통스러워 한다. 하필이면 지금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또 불륜에 관련된 프로그램이니, 일로 도피하려 해도 매순간 순간이 지옥이다. 이렇게 현우의 시선만 따라가면 현우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남자 같지만, 곱씹어 보면 그 스스로 자신의 불행에 투자한 지분이 크다. 맞벌이 부부이면서 가사 일을 아내 수연(송지효)이 다 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가사 일의 일부를 분담하는 걸 “아내를 돕는다”고 표현하는 현우는 과연 그의 기억처럼 “뭐가 부족해서”라고 물을 만큼 당당한 남편이었던 걸까?



현우는 갑자기 8년 전 결혼식 비디오를 다시 꺼내보며 혼자 숨 죽여 오열한다거나, 결혼기념일을 까먹은 아내의 빈자리 앞에서 혼자 만취해 절망한다. 그러나 정작 현우 자신도 형수가 축하 전화를 걸어주기 전까진 그 날이 결혼기념일인 줄 새까맣게 까먹고 있지 않았나? 서로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긴 탓에 무덤덤해지는 일이, 사실 “나이가 들면서 지방이 느슨해져 가듯이, 부부사이도 느슨해져 가는 것”이라는 걸, 현우는 동료인 권작가(권보아)가 이야기해주기 전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공항 가는 길>과 이 작품의 공통점은 이렇게 관계의 기본이 어그러진 결과로 불륜이 시작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세상에 희생과 헌신을 응당 해줘야 하는 ‘당연한 관계’ 같은 것은 없고, 그것을 잊는 순간 관계는 부서지기 시작한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뭘 잘못한 건지 모르는 남자, 무심코 소외되는 여자

올해는 유독 ‘불륜드라마’의 선전이 두드러진다. tvN <굿와이프>로 시작해 KBS <공항 가는 길>로 이어지는 수작 대열에, 아직 이른 평가이지만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도 곧 합류할 듯하다. 이 드라마 속 불륜은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모순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매개라는 점에서 막장드라마의 선정적 단골 소재와는 다르다. 더 나가 그간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온 여성의 성적, 사회적 욕망을 부각시키며 결혼제도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점도 돋보인다. 그런 면에서 세 작품은 간통죄 폐지 이후 변화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남편의 시점에서 아내의 외도를 바라보는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좀 더 흥미롭다. 주인공 현우(이선균)는 사랑스럽고 능력 있는 아내, 귀여운 아들로 이뤄진 완벽한 ‘스위트홈’의 가장임을 자부하는 남자다. “바쁜 아내 대신 쓰레기도 버려주고, 출근 전 매일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주는”, 그래서 “백점짜리는 아니어도 이 정도면 훌륭한” 남편임을 자신해왔다. 수연(송지효)의 불륜 징후를 발견했을 때 충격을 받은 것도 도저히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없어서였다. 현우는 반복해서 외친다. ‘이렇게 완벽한 가정에서 바람이라니,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간통죄 폐지 시대 불륜드라마의 문제의식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 작품에서 아내의 불륜은 단순히 어느 한 사람의 ‘잘못’으로 대표되는 가족제도 내의 문제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가족제도는 경력단절, 고용불평등, 금기시된 성적 욕망 등 사회 전체에 편재된 여성억압의 축소판일 뿐이다. 법적 장치보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손을 들어준 간통죄 위헌 판정처럼 이들 드라마는 제도를 벗어나 다층적 억압 속의 여성내면을 들여다본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서도 현우와 수연 부부의 균열은 하나의 뚜렷한 원인보다는 일상에서 ‘무심코’ 이뤄지는 성차별의 결과다. 유치원에서 아이를 찾아올 차례가 되었을 때 회사 일로 이를 까맣게 잊은 현우와 야근 중 유치원 전화를 받고 바쁘게 자리를 뜨는 수연의 대조적 모습처럼.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남자의 제한적 시점을 통해 오히려 사회전체의 여성억압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 이 작품의 탁월함이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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