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와 노무현 사이의 거리, ‘무현’의 슬픔과 위로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2000년 겨울 부산의 어느 거리. 차가운 날씨에도 거리 유세에 나선 노무현은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가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었다. 그 짧은 장면 하나만으로도 노무현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주머니에 넣었던 두 손이지만 다가오는 시민들에게 인사를 할 때는 두 손을 꼭 빼서 정중한 마음을 담았다. 당시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던 부산. 시민들이 노무현을 반가워할 리 만무했다. 지역감정을 여전히 부추기는 선거 속에서 그는 마치 적진에 고립된 적장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손을 내밀었다. 그들이 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섬겨야할 ‘왕’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이하 무현)>는 왜 하필 부산에서 출마했다 낙선한 노무현의 이야기를 담았을까. 그것은 이 영화가 노무현을 통해 진짜 ‘실패’가 무엇이고 진짜 ‘성공’이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노무현은 당시 낙선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낙선 후 3년이 지나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것 역시 실패가 아니라고 영화는 말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젊은 세대들이 노무현이 했던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실천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현>이 담고 있는 건 노무현의 그런 정치적 행보가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모습들이다. 당시 부산 거리 유세를 하다 지친 노무현이 한 다방에 들어와 여종업원에게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꼭 유세를 해야 하냐고 묻는 질문에 그녀가 그래도 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 얘기를 커다란 깨달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의 정치적 행보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건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작은 민의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서 오히려 커다란 뜻을 읽어내는 진짜 정치다.



노무현의 전속 사진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생계를 위해 계속 청와대에 남아있기로 했을 때를 회고하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모두가 ‘배신자’라고 그에게 손가락질 할 때 100명 중 단 한 사람, 노무현 대통령만이 자신을 지지해줬다는 것. 그 전속 사진사는 이제는 자신을 노무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며 매년 기일에 맞춰 사진을 찍으러 온다고 했다. 노무현은 정치적 노선이나 당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을 우선 바라봤다는 걸 이 사진사 이야기에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포장마차에서 노무현을 그리워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 때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 속에서 그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이들은 그 누가 뭘 하지도 않았는데 저마다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그 장면은 그대로 관객에게 전이된다. 거기서 느껴지는 슬픔이란 감성 팔이나 신파적 슬픔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역행이 2000년 노무현의 행보와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는데서 느껴지는 슬픔이다. 당시 노무현이 연설에 앞서 고치고 또 고친 연설문이 이토록 진중한 울림을 주고 있는 현재가 아닌가.



절묘한 시기에 개봉하며 흥행 역주행을 하고 있는 <무현>은 그래서 깊은 상실감과 허탈감 그리고 심지어는 시대의 우울을 겪는 대중들에게는 슬픔과 동시에 깊은 위로와 위안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서민들에게 다가가 농담을 건네기도 하는 아이 같은 모습의 노무현. 그는 당시에도 이미 낙선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낙담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는 집에 가서 엄마 아빠한테 2번이 좋다고 말하라는 농담에는 당장의 실패 앞에서 우리가 그럼에도 왜 기꺼이 앞으로 나가야 하는가를 이야기해준다. 당시 낙선 후 캠프 해단식에서 노무현이 말했듯이. “역사에서는 실패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길게 보면 정의가 승리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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