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와 조롱이 아닌 통찰력 있는 풍자를 다시 만나려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유머의 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보기 싫은 놈을 남들과 같이 두들겨 패기’다. 불쾌하게 들리지만 사실이 그렇다. 다들 유머의 가장 소중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풍자가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화자는 그 ‘보기 싫은 놈’이 얼마나 추하고 어리석은지 과장하고 그 과장을 통해 관객과 독자들을 선동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귀한 광대’에 대한 판타지를 품고 있다. 딸랑방울 모자와 바보의 가면을 쓰고 똑똑하고 고결한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는 더러운 진실을 온 세상에 폭로하는. 유머를 갖고 정말 이런 일을 하는 위대한 작가들, 코미디언들이 있기는 하다. 우리가 기억하고 예찬하는 사람들 역시 그런 부류이고. 채플린, 스위프트, 볼테르...

하지만 크게 보면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다. 고귀한 광대는 소수이다. 유식한 사람들은 <리어왕>의 광대를 찬미하지만 솔직히 고용주가 미쳐서 광야를 떠도는 상황까지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광대도 무슨 소리를 했을지 모르지. 대부분 광대들은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딱 평범한 수준의 용기와 통찰력만을 갖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가장 만만한 사람들을 팬다. 다들 패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전체적인 수준을 높이는 길은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 ‘SNL’의 가차 없는 정치풍자를 부러워하는데, 여기엔 세 가지가 조건이 있다. 수정헌법 1조, 무자비한 자유경쟁을 통해 선발된 인력,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자본. 대한민국 코미디언들이 그 중 어느 것도 갖고 있지 못함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당연히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걸 했다. 만만한 대상 패기. 여자들, 비만인들, 외국인들. 기타 찍소리 못할 것 같은 사람들. 옹달샘을 보라.



이명박 정권 초기, 나라는 형편없이 망해도 대한민국에 풍자문화의 꽃이 필 수도 있겠다는 장미빛 꿈을 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허망한 꿈이었다. 그런 환경은 풍자대상이 최소한의 이성적인 반응을 하는 존재여야 가능하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부분 풍자가들은 제풀에 나자빠졌고 지금은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준엄’, ‘심판’, ‘민심’ 같은 단어를 비속어와 함께 적당히 섞고 뒤에 구두점을 찍어대면 뭔가 의미 있는 소리를 하는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천박하고 일차원적인 분노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찍소리도 못하고 유튜브 농담 흉내내기에 만족했던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시사를 다루고 풍자를 하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에서 ‘최순실 코스프레’를 하는 코미디언들이 나타난다.

발전인가? 해방인가? 어림없는 소리다. 그들은 지금 지금까지 하던 일들을 이어서 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만만한 사람 패기. 몇 개월 전까지 최순실이 어떤 권력을 갖고 있었건, 지금 그 사람은 95퍼센트의 미움과 조롱을 받는 ‘아줌마’일 뿐이다. 대한민국 코미디언들은 이런 아줌마를 패는 데에 이골이 나 있다. 이런 흉내에 어떤 통찰력과 풍자가 있는가? 없다.



차라리 이전의 다른 시도를 언급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의 경우 투박한 풍자 자체보다는 대부분 힘없는 변명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자기검열에 대한 자조의 의미가 더 강한 코너였다. 이상훈은 꾸준히 시사풍자를 시도하는 코미디언인데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아무런 통찰력 없는 사실나열의 호통으로 ‘사이다’를 유발하는 지점에서 멈춘 것 같다. 개인의 노력이 있다고 해도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 노력은 정체되고 퇴보할 뿐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사이다’에 관객들이 만족하고 박수를 쳐주는 상황이라면 우린 바닥을 한 번 친 것 같다.

이 바닥을 친 상황에서 의미 있는 상승이 가능할까. 아무리 시사풍자라고 해도 화면에 뜨는 것이 기껏해야 아줌마를 놀려대는 옹달샘 멤버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지난 몇 년 동안 팔다리가 잘린 채 간신히 꿈틀거리기만 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시대에 응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타의건, 자의이건 지난 몇 년간의 그들이 겪었던 무기력한 몰락을 돌이켜보고 이에 대한 성찰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 가치 있는 무언가를 이룰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tvN,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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