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가는 길’, 한낱 불륜보다 더 은밀하고 깊숙한 감정의 공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KBS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의 여주인공 최수아(김하늘)는 캐리어를 옆에 두고 아파트 입구 앞에 서 있다. 그곳에서 고개를 들어 아파트베란다에 빨래를 널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를 바라본다. 스튜어디스라는 직업과 한 가정의 주부라는 역할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녀의 내면을 포착하는 장면이다. 특히 수아는 일 때문에 학교에 적응 못하는 딸 효은(김환희) 옆에 있지 못하는 걸 마음 아파한다.

하지만 빨래를 너는 평범한 가정주부는 예쁜 제복을 입고 출근하는 수아를 잠시나마 동경할지도 모르겠다. 승무원 제복을 입은 그녀를 보면 공항의 공기가 떠오를 테니까. 우리는 모두 공항이 주는 그 감정의 공기를 알고 있다. 그리고 팍팍하고 숨 막히는 삶 속에서 공항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곳은 국경과 국경 사이이며, 우리의 일상을 잊는 달콤한 여행을 경험하는 첫 시작이다. 혹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을 선택해야 하는 결정의 장소이기도하다.

<공항 가는 길>을 배우자 있는 남녀의 불륜을 다룬 드라마라고만 말하기는 조금 아쉽다. 이 드라마는 사실 어찌 보면 한낱 섹스보다 더 은밀하고 깊숙한 감정의 공유를 다룬다. 이 드라마는 두 남녀 사이에 불붙은 불꽃같은 사랑을 쉽게 그리지 않는다. 애정이라는 감정의 공기, 그 공기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변하고 변할 수밖에 없는 과정들을 그려낸다. 그것도 꽤나 설득력 있으면서도 조심스럽게 차근차근.

사실 이 드라마의 남녀주인공인 최수아와 서도우는 드라마에서 흔히 보아온 전형적인 불륜 남녀는 아니다. 이 두 사람은 각각의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다. 성격적으로도 배우자를 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빠지는 타입이 아니다.



수아는 발랄하고 착한 성격이지만 다소 무디고 답답할 때도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단짝 송미진(최여진)처럼 상황판단이 빠른 인물은 아니다. 혹은 수아의 남편 박진석(신성록)처럼 여자들에게 애정의 빌미를 주고 그 빌미를 적당히 가지고 놀며 남자로서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비비꼬인 성격도 아니다. 그녀는 그저 안정적인 일상을 바라는 성격이다. 남편과 부딪치기보다 아예 말문을 닫고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도 그래서다.

수아와 사랑에 빠지는 서도우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문화재 매듭장이자 늘 타인을 보듬는 유한 성격인 고은희(예수정)의 외아들인 서도우는 어머니의 마음을 빼닮았다. 그는 자신이 책임지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따스한 사랑을 베푼다. 그리고 그 사랑 속에서 행복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 남자다. 그가 자신의 친딸이 아닌 아내 김혜원(장희진)의 자식 애니(박서연)에게 친아빠 못지않은 사랑을 쏟는 건 그래서다.

이처럼 수아와 도우 모두 좋은 아내 좋은 남편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우리들 모두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아왔지 않은가? 그들 옆에 찰싹 붙어 배우자의 장점을 쏙쏙 빼먹으며 자신의 욕망은 따로 채워가는 악의 축인 배우자들을 말이다.



진석과 혜원에게 수아와 도우는 아내와 남편으로서 존재한다. 애정을 쏟는 대상이 아닌 그 역할로 중요한 대상이라는 의미다. 진석의 경우 자신의 바람기를 자유롭게 누리면서도 안정감 있는 생활을 묶어두는 말뚝으로 수아가 필요하다. 혜원에게 중요한 건 가정의 행복이 아닌 미술계에서 자신의 위치와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매듭장 고은희와 그의 아들이 주는 배경이 중요했다.

“우리가 가족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서도우)

숨 막히는 배우자들 때문에 질식 직전에 이른 이 두 사람은 도우의 딸 애니의 죽음을 통해 좀더 가까워진다. 애니의 유품을 수아가 전해주고 하는 사이에 수아와 도우는 본능적으로 서로가 공유하는 애정의 공기를 깨닫는다. 동시에 자신을 숨 막히게 만들었던 배우자의 실체에 대해서도 서서히 깨달아 간다. 아내에게는 냉정한 상사처럼 굴지만 자신의 절친과 과거 연인이었고 지금도 집적거리는 남편의 실체에 대해. 친딸에게 일말의 애정도 없고 결국 그 딸을 쓸쓸한 타지로 몰아넣은 아내의 냉정한 얼굴에 대해.

그런 상황에서 수아와 도우는 점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남자다운 도우는 자신의 감정에 올인하고 수아에게 다가간다. 특히 도우가 보여주는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타인을 배려하는 사랑이다. 그녀가 쉴 공간을 잠시 마련해주고, 그녀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그녀의 말을 차근차근 들어준다. 하지만 수아는 계속해서 끌리는 그 감정을 물리치려 애쓰고 또 애쓴다.



“감정이 감당이 안 된다고. 이게 아닌 감정이라고.” (최수아)

<공항 가는 길>은 수아의 일상의 공기가 서서히 서도우를 향해 옮겨가는 과정을 그린다. 물론 그 사이에도 딸 효은에 대한 사랑만은 변함없다. 그녀에게 딸은 여전히 중요한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를 숨 막히게 만들었던 박진석의 공기에서 벗어나자 수아는 처음으로 행복의 감정을 체험한다. 너에게 난 뭐냐는 질문에 둘 사이에 뭐라도 남아 있을 때 그런 상투적인 질문을 하는 거라고, 빈정거리던 박진석에게 벗어난 뒤에 말이다. 그리고 수아는 자신과 사랑이란 하나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 남자 서도우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유치한 질문 하나할게요. 도우씨한테 난 뭐예요?” (최수아)

“그 대답, 지금 듣고 싶어요?” (서도우)

“대답할 건 있어요?”(최수아)

“물론 언제든 대답할 수는 있는데 정말 기분 안 좋을 때 미치게 우울할 때 물어봐요. 기분 완전 업시킬 수 있으니까.”(서도우)

“이미 대답됐어요.”(최수아)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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