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앵그리맘’·‘추노’를 추천하는 심정에 대하여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수사가 진행될수록 대통령이 앞장서서 헌정질서를 유린한 정황이 적나라해지고 있고, 등 떠밀리듯 사과한 대통령의 말은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전단지만큼의 신뢰도 얻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고 예능보다 박진감 넘치는 뉴스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이 때, 무슨 작품을 추천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TV삼분지계]는 애써 이런 시국에 보면 좋을 법한 드라마들을 골라 보았다. 좋은 드라마들은 늘 당대를 반영해 왔고, 가장 엄혹한 시기에도 사회에 대한 발언들을 작품 속에 녹여내곤 했으니까. 우리가 고른 리스트가 독자 여러분에게 위안이 되고 용기가 되며 영감이 되길 바란다.



◆ <피노키오>, 힘없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힘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언론에 대한 꿈

TV를, 특히 드라마를 하급 문화라며 하찮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알고 보면 드라마는 끊임없이 또 묵묵히 사회 고발성 메시지를 던져왔다. 시절이 하 수상한 이때 곱씹어볼만한 작품을 한 편씩 추천해보기로 했는데 과연 무엇이 좋을지. “검찰은 체면보다는 실리에요. 대한민국 법조는 쪽 팔려서 못하는 일 따위는 없는 조직입니다.” 권력의 축을 건드린 대가로 끝내 살해당한 문희만(최민수) 부장검사의 자조 섞인 일갈이 가슴에 남는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 아니면 박정환(김래원) 검사의 죽음을 앞에 둔 반년여의 기록으로 역시나 권력과 기업의 결탁, 그리고 그들의 음모와 배신을 적나라하게 담은 SBS 드라마 <펀치>가 좋을까? 망설이다가 결국 언론의 지대한 영향력을 다룬 SBS 드라마 <피노키오>(2014)를 선택했다.



선택의 이유는 어쨌든 지금 우리가 기대할 곳은 안타깝게도 언론뿐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피노키오> 속에서 TV, 즉 언론은 단란했던 한 가정을 필요에 의해 파탄에 이르게 하기도 하고 또 이해타산에 따라 그 가족의 일원인 기재명(윤균상)을 영웅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돈과 권력과 언론의 야합이 얼마나 끔찍한 사태를 불러올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피노키오>. 드라마에서는 특정 방송사 한 곳만이 타락의 극치를 달리는 것으로 나왔지만 과연 현실이 그럴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언론이 참 언론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가 아니겠나. 부디 힘없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힘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방송이 많아지기를.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앵그리맘>, 반복되는 비극 끝나지 않은 저항

지난해 방영된 MBC 드라마 <앵그리맘>은 세월호 참사가 모티브인 작품이다. 주인공 조강자(김희선)가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고등학생으로 위장해 학교로 잠입한다는 만화 같은 설정 안에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정확한 통찰을 담아내 화제를 모았다. 지금 시국에 이 작품을 다시 상기하는 이유도 같다. 이 총체적 비리가 불러온 비상시국이 세월호 참사 당시와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앵그리맘>이 효과적으로 극화한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 부정부패의 종합판이자 총체적 모순의 상징이었고 이는 지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드라마는 강남의 한 명문사학 내의 학원폭력 문제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거대해지는 비리의 실체를 파헤쳐 들어가는 구조를 취한다. 사소하고 단순해보이던 사건 뒤에 대형 비리가 숨어있다는 미스터리 구도는 흔하지만, <앵그리맘>은 이를 좀 더 다층적이고 심층적으로 접근해 들어간다. 또래들의 집단 따돌림 뒤에는 조직폭력배가 있고, 그 배후에는 더 부패한 사학재벌이 존재하며, 다시 그 뒤에는 교육계와 정치권의 비리가 든든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한 폭력과 비리의 다단계 시스템은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이다. ‘까도까도 양파처럼 계속 나오는’ 비리가 그 많은 단계를 거치는 동안 어느 지점에서도 정화나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적 동조와 확산의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 가장 절망스러운 지점인 것이다.

그럼에도 한 줄기 희망은 있다. <앵그리맘>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여성들과 어린 학생들로 이뤄진 약자들의 연대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배경에도, 곁에 있는 불합리를 외면하지 않고 저항한 덕에 거대한 부패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 이화여대 시위와 끝까지 진실을 파헤친 소수의 언론이 있다. 비극은 반복되지만,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려는 진보의 노력 또한 반복된다. 그것이 역사가 주는 유일한 희망이요, 위로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추노>, 징벌에서 끝나지 않는 새 세상에 대한 꿈

“양반놈들 싹 다 죽이면 정말 우리들 세상이 온대요?” 관동 포수 출신 노비 업복(공형진)이 처음 노비당에 입당하여 가졌던 질문은 ‘그 분’(박기웅)을 만난 뒤 더 커진다. 양반들을 다 죽이고 잡아들여 자신들이 양반을 부리는 세상이 온다 한들, 그건 양반과 상놈이 자리바꿈 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 않느냐고 묻기 시작한 것이다. 좌의정(김응수)은 “희망은 희망으로 끝나야지 신념이 되면 곤란”하다고 말하지만, 노비당 중 혼자 살아남은 업복은 삶과 신념의 무게를 저울질하다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궁으로 쳐들어가 그 모든 사태를 배후 조정한 좌의정을 주살한다. 그리고 그 의지는 늘 업복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동료 노비 반짝이 아범(노승진)에게 계승된다.



지난 2010년 방영된 KBS 드라마 <추노>의 탁월함이 여기에 있다. 작중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들은 많았으나, 업복만큼 본질을 통찰한 혁명가는 없었다. 그는 배운 것 없는 노비이지만, 끊임없이 아래에 있는 누군가를 착취해 위에 있는 사람들이 부당하게 이익을 보는 세상의 구조 자체를 혁파해야 하지 않으면 결국 똑같아 질 것이란 깨달음에 스스로 도달한 것이다. 지금의 정국도 그렇다. 많은 이들이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책임소재를 물을 이들을 찾지만, 거기에서 그친다면 또 언제 이런 일이 터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경제를 위해서라면 인권이나 수단 따위는 잠시 눈 감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경제지상주의, 그를 핑계로 권력이 잘못된 길을 걸어도 지적하지 아니하고 나아가 그것이 권력의 보편적 속성이라 말해버리는 권위주의에 대한 긍정과 정치 혐오, 정경유착과 권언유착을 가능케 한 승자독식의 문화를 부수는 것이야말로 최종적인 과제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의 꿈 역시 업복의 그것처럼 “양반놈들 다 쏴죽이는” 징벌의 층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양반 상놈 구분이 없는” 새 세상에 대한 꿈이어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MBC, 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