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은 어떻게 시대의 입이 되었나

[엔터미디어=정덕현] “우병우 이러면요, 무능하고 오만한 박근혜 정부의 상징이 되어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가 무능하고 오만하다는 거예요. 그 상징이 우병우란 말이에요.” JTBC <썰전>에서 전원책 변호사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질문을 던지는 기자를 노려보는 문제의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시사 문제 같은 걸 도마 위에 올려 마음껏 썰어본다는 <썰전>의 성격을 정확히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본격 시사 프로그램 같은 데서나 나올 법한 것일 게다. <썰전>이 시사 소재를 예능적 방식(일종의 토크쇼 방식)으로 풀어낸 프로그램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어째서 이런 이야기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더 정확히 사안을 드러내는가가 놀라울 수밖에 없다. 도대체 시사 프로그램의 방식과 예능적 방식의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걸까.

테이블에 앉은 유시민과 전원책은 이 심각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단호한 어조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어떨 때는 적당하게 뒤로 물러나 예능적인 농담을 섞는다. 이번 사태를 통해 보여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거론하며, 바지대통령과 실세대통령이라고 유시민이 언급하자, 전원책이 좀 과한 표현이라며 “하필이면 바지를 즐겨 입으시는...” 하며 눙치는 장면은 웬만한 예능 토크쇼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우병우 전 수석이 검찰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에 대해서 전원책 변호사가 “그 한 장의 특종 사진이 모든 걸 다 얘기해준다.”고 말하고, 검찰의 미완적인 수사 태도가 바뀐 점이 바로 그 한 장의 사진 때문일 거라고 얘기하는 대목은 사실 정통 시사 프로그램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나오기 힘든 이야기다. 하지만 <썰전>은 예능의 특징일 수 있는 사담과 농담을 섞어 뒷얘기나 상식적인 추론을 마음껏 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 사진 한 장이 주었던 불쾌감의 원인을 명쾌하게 들을 수 있고, 그 한 장의 사진이 야기한 파장을 추론할 수 있다.



유시민은 국민들이 분노한 진짜 이유는 그런 팔짱이나 눈빛이 아니라 그의 태도와 자세 때문이라는 걸 명확히 했다. “국정농단에 대한 상당한 책임을 져야 될 전 민정수석으로서 검찰에 왔다면 온 국민이 걱정하고 있는 이 마당에 그 걱정을 자기도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하는 게 일주일 전 공직자였던 사람으로서 맞죠. 그런데 그런 마음의 자세가 안보였다는 거.”

게다가 <썰전>은 복잡할 수 있는 정치 용어 대신 대중들의 용어로 상황들을 설명하다. 유시민이 “청와대에 바지대통령 있다는 건 전 금시초문인데... 무슨 청와대 업무용 전화기를 대포폰으로 써요. 범죄조직이야 뭐야?”하고 흥분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더 정확히 지금 벌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정황을 이해할 수 있다. “국기문란... 국기파괴, 국기폭파, 국기매장.” 전원책 변호사의 지금 상황에 대한 감정적 표현이 잔뜩 들어간 그 말들을 듣고는 유시민이 “언어의 한계를 느끼시죠?”하고 묻는 대목은 지금 대중들의 답답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원책 변호사가 ‘포승줄에 묶인 안종범 수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권력 무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나온 ‘개미의 비유’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개미는 높이를 모르기 때문에 올라가도 안전하게 내려온다”는 것. 전원책 변호사는 “자기가 얼마나 권력을 갖고 있다는 걸 평소에 알고 있던 사람은 초라해진다. 이번에도 그걸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소회 역시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좀체 나오기 어려운 말들이다.

<썰전>은 이제 그 어떤 시사 프로그램보다 더 명쾌하게 당면한 상황들을 잘 설명해주는 ‘시대의 입’이 되었다. 만일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런 류의 사담 같고 농담 같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면 질타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예 틀 자체를 예능형식으로 갖고 오면서 그 동안 시사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배제됐던 사담과 농담은 중요한 시사문제의 표현 방식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대단해 보여서 어떤 아우라까지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 시사문제들은 이 틀거리 안에서 낱낱이 옷이 벗겨져 그 실체를 드러내는 중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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