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를 현란하게 안티로 돌리는 ‘안투라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그 시작은 거창하였으나 HBO <안투라지>를 리메이크한 tvN의 한국판 <안투라지>는 그리 매력적인 콘텐츠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현란한 화면이 이어질수록 시청자를 안티로 돌릴 가능성이 농후하지 않나 싶다.

우선 ‘찌찌’와 ‘불알’이 대사에 종종 등장하는 이 드라마가 여성시청자들에게 그리 어필할 것 같지는 않다. 그 어휘 때문이 아니라 그 어휘와 더불어 드라마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 탓이다. 이 드라마에서 여성들은 철저하게 주변부 인물이고 성적인 대상이다. 즉 이야기와 함께 가는 존재가 아니라 현란한 화면 안의 판타지로 존재한다. 화려한 파티의 비키니걸, 남자주인공 차영빈과 키스와 스킨십을 나누는 셀러브리티로서의 대상, 아니면 거친 남자 옆에 서 있는 지혜로운 모성 외에 다른 면은 없다.

물론 원작 자체가 남자들의 ‘까리한’ 삶에 대한 로망과 유머러스한 ‘섹드립’의 범벅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작 <안투라지>의 팬들 또한 한국판 <안투라지>를 보며 그리 감탄할 것 같지는 않다. 슬프게도 캐릭터들 자체가 원작과 같은 매력발산이 안 된다. 캐릭터들의 조합 또한 무언가 느슨하고 힘이 없다. 아무리 현란한 화면과 끝도 없이 쿵쾅대는 사운드를 틀어대도 허전함을 감출 수 없다.

서강준의 차영빈은 <안투라지>가 흘러가는 동안 그냥 아무 생각 없는 남자 연예인처럼 느껴지기 쉽다(만약 이게 이 드라마가 추구하고 있는 한국 연예계의 리얼리티라면 할 말은 없다). 물론 주인공 차영빈을 연기하는 배우 서강준이 노력하는 지점은 보인다. 원작의 주인공 빈센트의 나른하면서도 시큰둥한 매력을 모사하려 애쓰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렇다고 서강준만을 탓할 수도 없다. 주인공이 품고 있는 지난 이야기들이 워낙 얄팍해서 그 누가 연기하건 <안투라지>의 차영빈은 생각 없어 보이기 딱 좋다. 차영빈의 사촌 차준 역의 이광수는 좀 못마땅하다. 원작의 체이스는 마초스럽고 어벙한 다혈질이지만 그래서 풍기는 테스토스테론 물씬한 매력이 있다. 반면 이광수가 연기하는 차준은 불만에 찬 표정으로 씩씩거리거나 어리바리한 얼굴로 웃는 게 전부다.



좋은 연기지만 무언가 드라마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배우도 있다. 차영빈의 매니저 이호준을 연기하는 박정민의 경우가 그렇다. 박정민은 답답하고 어둡지만 신념은 있는 청춘 이호준을 실제 캐릭터보다 더 실감나게 만들어냈다. 다만 <안투라지>에서 이호준은 가뜩이나 화면은 발랄해도 희한하게 축축 쳐지는 이 드라마를 더 가라앉게 만드는 꿉꿉한 캐릭터다. 원작의 에릭은 똑같은 루저 모드라도 꿉꿉하진 않다. 내성적이고 신중해도 할 말은 하고 사는 인물이다. 한국판에서처럼 김은갑(조진웅)의 갑질에 고개를 팍 꺾는 그늘진 존재는 아니라는 거다. (한국 특유의 평등하지 않은 위아래, 갑을 문화의 리얼리티를 살리려 그랬다면 또 할 말은 없지만)

조진웅이 연기하는 김은갑은 원작의 아리골드처럼 <안투라지>를 뒤흔들기는 한다. 다만 CF 속 조진웅의 연기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조진웅은 살이 쪄도 살이 빠져도 매력 있는 배우다. 하지만 까진 인물보다 안 까진 묵직한 인물을 연기할 때 그 매력이 훨씬 살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이동휘의 거북은 <안투라지>의 터틀 아닌 <응팔>의 동룡과 더 흡사하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아쉬움은 한국판 <안투라지>가 지닌 단점들에 비하면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판 <안투라지>의 인기는 남자들의 로망과 섹드립이 범벅되어서가 아니다. 로망과 섹드립, 헐리우드에 대한 대중들의 관음증적 호기심을 감각적으로 버무려서다.

한국판 <안투라지>는 원작의 흥행요소를 모두 가져왔지만 ‘감각’만은 가져오지 못했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의 번뜩이는 댓글보다 감각이 떨어지는 장황하고 유치한 대사. 남초 커뮤니티인 ‘MLBPRAK'의 프로불페너도 따분하게 느낄 썰렁한 섹드립. 홈쇼핑방송 <쇼미 더 트렌드>보다 흡인력 없는 상황 전개.

아무리 화면이 화려한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스타일과 대사의 감각 없고 전개는 산만한 한국판 <안투라지>는 결국 그저 시시껄렁한 청춘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림을 그려낸다. 그것도 지금의 청춘이 아니다. 1990년대 압구정 로데오거리나, 신촌 인근 그 비슷한 거리에서 어슬렁대며 20대를 보낸 지금의 40대들이 가졌을 법한 청춘의 로망 같은 것들이 이야기와 대사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슬프게도 꼼므 데 가르송(소년처럼)을 꿈꾸지만 꼰대의 가슴으로 만들어진 청춘 드라마에 가슴이 뛸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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