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덕분에 연예계의 금기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주말 내내 한 곡의 노래가 화제였다. 지난 금요일 가수 이승환은 이규호와 공동 프로듀싱하고, 제주도의 이효리와 들국화의 전인권이 함께 부른 ‘길가에 버려지다’를 무료 배포했다. 이 곡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규탄과 자성에 관한 노래로 이상순을 비롯해 더클래식의 박용준, 들국화의 민재현, 이승환 밴드의 최기웅, 옥수사진관의 노경보, 전제덕 등 음악인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탄생했다.

이승환은 국내 유명 연예인 중 김제동과 함께 사회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던지는 대표적인 인사다. 그동안 SNS을 통해 날선 발언을 쏟아냈고, 주진우 기자 지원 공연 등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에도 거리낌 없이 나섰다. 최순실 게이트가 발발하자마자 소속사 건물에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으며 지난 12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하야 콘서트를 열었다. 오는 18일에는 30여 팀이 더 합류한 ‘길가에 버려지다’ 두 번째 버전을 공개할 계획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환은 별다른 활동 없이도 박근혜 정부(문체부)가 작성한 문화계 인사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영화배우 정우성과 달리 9,473명의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알아주지 않았지만 이승환의 목소리에 대중은 환호했다. 1989년도에 데뷔한 50대 가수의 시대정신이 담긴 메시지에 젊은 세대들이 동참했다. ‘길가에 버려지다’가 주말 내내 널리 퍼졌고, 정부를 규탄하는 콘서트와 발언들은 큰 관심을 모았다.

사실 민주주의 성숙도가 낮은 우리나라에서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연예인이 자기 목소리를 이 정도 강도로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 대중들은 미 대선 이후 미국 연예인들과 스포츠스타들이 정치적 발언을 적극적으로 하는 미국의 상황을 부러워하고, 그렇지 못한 우리 사회의 한계를 아쉬워하기도 한다. 많이 바뀌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연예인을 직업이 아닌 신분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깊고, 모난 돌보단 견해 없음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들에게 왜 나서지 않느냐고 채근하는 건 사실 무리한 요구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일은 맞지만, 이는 당사자에겐 부당한 불이익을 감내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한 큰일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라. 국감에서 새누리당 의원이 김제동을 언급하며 국방장관에게 혼내달라고 큰소리치던 때가 불과 한 달 전이다. 유병재, <개그콘서트>는 어버이연합에 고소를 당한 바도 있다. 그러니 배우 전혜빈이 SNS에 ‘최순실 게이트’ 관련해 소신을 담은 글 한 줄을 올렸다가 회사에서 한소리를 듣고, 생방송 때문에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사진을 SNS에 올린 신현준과 애써 거리 두려는 <연예가중계>의 대응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오랫동안 지배했던 연예계의 금기가 급속도로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들부터 예능 방송까지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분기탱천한 이승환은 할리우드 스타들에 비견될 만큼 거침이 없고, 2PM의 황찬성 등 아이돌도 목소리를 냈다. 예능 프로그램들도 정부를 희화화는 데도 거침없다. 게이트가 붉어지자마자 <무한도전><런닝맨><옥중화><막돼먹은 영애씨><개콘>등 채널과 장르를 불문하고 최순실과 박근혜 게이트에 관한 희화화와 풍자가 이어졌다. ‘비정상적인 혼’, ‘우주의 기운’과 같은 대통령의 말씀은 예능 유행어로 등극했다.

실시간 검색어에는 야당 국회의원이나 의혹이 많은 정부 인사들의 이름이 가득하고, <썰전>은 두 자릿수 시청률에 육박하며, 유시민 작가를 총리로 추대하자는 청원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는 대중이 지향하는 멋의 기준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방송인들이 사랑을 받기 위해선 정치 사회문제랑 동떨어진 섬처럼 입을 닫고 사는 게 미덕이었다면, 이제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시대정신에 동참하며 대중과 함께 살고 있음을 내세워야 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신경 쓰지 않는다며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영화계 최고 스타 정우성의 당당한 발언은 사람들에게 용기가 됐다. 단 한마디로 영화 한 편에 출연한 것보다도 더 큰 호감을 얻었다.



이승환은 <양세형의 숏터뷰>에서 “미국에선 연예인들이 트럼프 뽑지 말라고 한다. 로버트 드니로가 그런 말하면 멋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그런 말하면 선동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사실 우리 사회의 수준이었다. 누구든 사회적 발언을 자유롭게 하고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 있는 세상은 연예인들이 자구적으로 노력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관심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스타들이 그동안 조심조심하며 지낸 것은 우리가,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세상을 모른 척하고 예쁜 얼굴, 멋있는 춤사위, 최선을 다해 웃기겠다는 다짐을 내세우기보다 이 사회를 함께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스타들의 발언과 행동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역설적으로 모든 세대,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2016년 대한민국을 민주주의의 학습의 장으로 만든 박근혜 정부가 유일하게 기여한 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드림팩토리, 유튜브,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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