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왜 실력자들은 모두 좌천됐을까

[엔터미디어=이만수의 누가 뭐래도] “너 수술실에서 왜 서전한테 마스크 씌우는 줄 알아? 주둥이 치우라고. 주둥이 치우고 실력으로 말하라고. 제 목숨 맡기고 수술대 위에 올라가는 환자한테 주절주절 변명 늘어놓지 마. 이유 대지 말고 핑계 대지 마. 서전은 실전이야. 아까 수술방에서는 니가 못한 거야. 알았냐?”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김사부(한석규)가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강동주(유연석)에게 비수처럼 꽂힌다. 자신은 전국 수석으로 보드패스를 한 실력자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런 타이틀이 산속에 자리한 돌담병원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라는 걸 그는 조금씩 알아차린다.

거대병원이 갖고 있는 전공과가 나뉘어져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 따위는 이 곳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의사도 부족하고 의료기기도 두드려야 켜질 정도로 조악하다. 과의 구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외과과장이지만 응급수술까지 하는 걸 보고 “어느 쪽이 메인이냐”고 묻는 강동주의 질문에 김사부는 “사람 살리는 게 주 종목”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런 돌담병원의 시스템은 ‘주먹구구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견 규모나 체계로 보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 ‘주먹구구식’의 시스템과 김사부 같은 과가 무색해지는 전방위적인 의사의 판타지가 시청자들에게는 강하게 다가오는 걸까. 그것은 어쩌면 거대병원 같은 첨단의 의료시스템이라는 것이 갖고 있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우리들은 안다. 병원에서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 기술이나 실력 때문이 아니라 그 시스템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거나 아니면 배제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때로는 의료과실조차 법에 의해 두둔되어 억울한 죽음에도 아야 소리 못하는 게 그 병원 시스템의 공고함이다. 어쩌면 그 시스템은 의료시스템이 아니라 자본의 시스템으로 변질된 것일 수 있다.



거대병원에서 어떻게든 성공하려는 강동주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영달을 위해 무리한 수술을 하다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좌천되어 돌담병원에 내려오지만 그는 여전히 거대병원으로 돌아갈 기회만 노리고 있다. 외과과장은 그에게 병원장과의 술자리에 참석하라고 권한다. 그렇게 잘 보여 거대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순간 응급실로 들어온 환자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이것은 두 시스템의 부딪침을 보여준다. 거대병원의 시스템은 병원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성공하려면 실력보다 그의 눈에 들어야 한다. 하지만 돌담병원은 환자가 있으면 누구든 전공과 따위는 상관없이 치료를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한 번도 화상환자를 치료해보지 않은 강동주가 윤서정(서현진)의 지시대로 처치를 하는 것처럼. 과연 당신이 환자라면 어떤 시스템을 가진 병원에 가기를 원하는가.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병원이란 현실의 축소판이다. 실력이 아니라 인맥이 성공의 기준이 되고, 대중이 우선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이 우선인 그런 현실이 주는 절망감. 어쩌면 이렇게 지금의 대중들이 현 시국에서 느끼는 상실감의 근본적인 이유들이 이 병원 시스템 안에서도 똑같이 보이는 걸까. 실력으로 말하라는 김사부의 일침이 그 어느 때보다 속 시원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이만수 leems@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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