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시크릿 가든’, 우리는 청와대의 두 번째 길라임을 보았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지난 2010년 11월 13일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매력적인 여주인공이 태어난다. 그녀의 이름은 길라임(하지원), 당당한 스턴트우먼이지만 내면의 여리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여주인공이었다. 까칠한 성격의 로열백화점 사장 김주원(현빈)과 터프하지만 여린 감성의 길라임이 보여준 시공과 성별을 넘나드는 로맨스는 당시 어마어마 정도로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후 6년이 지난 2016년 11월 15일 JTBC 뉴스룸을 통해 또 한 명의 길라임이 등장한다. 과거 길라임을 연기한 배우는 하지원이었다. 6년 만에 돌아온 두 번째 길라임을 연기한 인물은 유능한 배우는 아니었다. 배우라 하기에는 대본으로 적어준 말들을 따박따박 읽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게 종종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어설픈 연기를 포장하기 위해 많은 미디어와 정치 세력이 동원되었다. 한 마디로 “형광등 백 개 아우라”를 달아주려 안간힘을 썼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들은 청와대가 수많은 비밀에 둘러싸인 ‘시크릿가든’이며 그곳의 주인이 ‘길라임’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녀가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대통령이란 직함 아닌 숨겨진 코드명 길라임으로 살아온 비밀들이 드러난 건 이제 겨우 한 달 남짓이니까.

2016년 청와대 버전 <시크릿가든>이 로맨틱코미디는 아니었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두 번째 길라임 또한 강한 여주인공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군인으로 기억되는 한 남자의 그늘을 통해 원작의 길라임처럼 강한 여주인공을 드러내려 할 때는 많았다. 물론 그녀가 생각하는 ‘강하다’의 의미는 고집스럽고 뻔뻔하다는 의미인 것 같지만 말이다.



2016년 청와대 버전 <시크릿가든>의 길라임이 그리 멋진 여주인공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대역인 건 똑같았지만 멋진 장면을 위해 몸을 불사르는 스턴트우먼이 아니었다. 오히려 뉴욕타임즈 만평의 카툰에 가까웠다. 두 번째 길라임은 사이버펑크SF의 주인공이 아닌 사이비종교막장극의 로봇 같은 역할이었다. 두 번째 길라임에게는 원작의 여주인공이 보여준 진정한 눈물은 없었다. 원작의 여주인공이 지닌 인간적인 면모 또한 없었다.

만약 그녀가 계속해서 사이비코미디막장극의 여주인공 두 번째 길라임의 역할에 만족한다면 그에 불만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놀림감이 되어도 자신이 여전히 대단하다고 착각하며 살 수 있다.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이다. 하지만 두 번째 길라임은 사이비코미디막장극 드라마 속 인물인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직함을 달고 있는 인물이다. 과연 2016년 겨울 주변 사람들을 통해 민얼굴을 드러낸 그녀를 국민들은 믿고 따를 수 있을까?



광화문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함께 길을 걷는다. 다정한 부부나 연인이 함께 나서기도 한다. 파업 노동자들이 함께하기도 한다. 양복 차림의 평범한 샐러리맨도 함께 한다.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 “대한민국 청소년 만세!”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라!”를 큰 목소리로 외쳐 어른들의 박수를 받는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물론 엄마의 손에 이끌려온 아이들도 함께한다. 가끔은 주인과 함께 거리에 나온 애완견이 함께 이 길을 걷는다. 각기 다른 지역, 각기 다른 나이, 각기 다른 삶의 가치관을 지닌 이들이 모두 함께 광화문으로 나왔다. 그리고 여전히 비밀을 유지하고 있는 2016년의 시크릿 가든 청와대를 향해 걷는다.

그들은 사생활 보호를 좋아하는 개인 박근혜가 길라임으로 사는 것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물론 배우 현빈과 하지원,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열혈팬들은 이조차 용납 못할 것 같기는 하다. 하여튼 그녀가 모든 걸 내려놓고 길라임 놀이를 하건 영혼의 파트너와 영혼 체인지 놀이를 하건 상관은 없다. 혼자만의 히키코모리 놀이는 사람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다. 다만 그런 이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우리는 1970년대 독재국가의 국민들이나 두 번째 길라임이 여주인공을 맡은 드라마의 엑스트라가 아니다. 2016년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JT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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